"이승만·박정희가 김정은만도 못한가?" 기념우표 논란

우정사업본부, '정상회담 우표' 발행하며 홍보 우편물까지... 작년, '박정희 100주년' 우표는 철회

임혜진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10.12 16:42:27
▲ 2018 남북정상회담 기념우표.ⓒ우정사업본부 제공

최근 '2018 남북정상회담 기념 우표첩'을 판매한다는 계획을 밝힌 우정사업본부. 그러나 최근까지 정치적 논쟁을 이유로 '이승만·박정희 우표'에 거부 의사를 밝혔던 우정사업본부가 '김정은' 얼굴이 들어간 우표를 내놓자 이들의 이중젓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대학생포럼은 12일 성명을 내고 "우정사업본부가 평화가 아닌 남북정상을 기념하는 전례없는 우표를 발행했다"며 "수백·수천만 인권을 유린한 독재자의 웃는 얼굴을 대한민국 공식 우표에 기어코 집어넣었다. 박정희 대통령 우표 발행은 불발시키며 어떻게 김정은 얼굴이 들어간 우표를 발행하는 행태를 보일 수 있는가"라며 우정사업본부를 규탄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달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 기념우표 400만장을 발행했다. 기념우표에는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2018 1차 남북회담 당시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모습이 담겼다. 또 판문점 보도다리에서 양 정상이 대화를 나누며 걷는 모습이 포함됐다.

그러나 지난번 2000년 김대중 대통령 · 2007년 노무현 대통령 당시 정상회담과는 다르게 이번 기념우표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얼굴이 들어간 사진이 사용됐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 기념우표를 제외하고 그 외 지난 10년간 대통령 얼굴이 들어간 우표는 이번이 처음이다.

역대 대통령 얼굴 들어간 우표는 '취임 우표' 뿐

'대한민국 KOREA' 우표 명칭 아래 문재인 대통령과 나란히 서 있는 북한 김정은의 얼굴이 박힌 우표가 공개되자 여론은 들끓었다. "헌법상 여전히 대한민국 이북지역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우리 국민들을 유린하고 있는 독재자의 얼굴을 기념우표 속에 담을 수 있느냐"는 지적이 가장 거셌다.

우정사업본부는 대통령 얼굴 사진이 들어간 기념 우표를 이제껏 79건 발행했다. 이 중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발행된 대통령 얼굴 우표 20건은 모두 취임 기념우표다. 이처럼 70~80년대 다소 권위적이었던 정권 후 보이지 않았던 대통령 얼굴 기념우표를 두고 정치권에서조차 "우정사업본부의 정권 마케팅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7일자로 보도자료를 내고 "우정사업본부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당시에도 남북정상회담 기념우표를 발행했지만, 이번 2018 남북정상회담 기념우표처럼 대통령의 얼굴이 들어간 경우는 처음이다. 대통령 얼굴이 들어간 우표는 과거 독재정권의 유산"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이번 '2018 남북정상회담 기념우표첩' 판매 과정에서 '취미우표 통신판매 서비스'에 등록된 고객 3만여명에게 안내 홍보물까지 발송된 것으로 알려져 한 차례 더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통상 기념 우표 홍보는 이메일 등을 통해 진행됐다. 

우정사업본부 측은 "지난해 문 대통령 취임 우표가 인기가 있었기에 한정 수량 판매를 알리기 위한 고객관리 차원 조치였다"며 "우표첩 사전 한정예약 판매가 처음이라 우편물을 별도 발송했고, 우표를 붙이지 않는 '업무용 우편'으로 발송했다"고 해명을 내놨다.

이를 두고 신용현 의원은 "우정사업본부는 '우편사무'로 발송했기에 우편비용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사실 세금을 사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일반 우편기본요금은 330원(5g 초과 25g까지)이다. 3만여명에게 보냈다는 계산을 하면 약 990만원 상당의 비용이다.

▲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한국대학생포럼 제공

이승만·박정희가 김정은만도 못한가

그러나 우정사업본부가 비판받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이들이 정치적 사안에 따라 이중젓 잣대를 취하고 있다는 의혹이다.

2016년 4월 구미시청은 우정사업본부 측에 박정희 전 대통령 100주년 탄생 기념 우표발행을 신청했고 우정사업본부 우표발행심의위원회에서는 만장일치로 이를 결정했다. 그러나 정권교체 직후인 지난해 7월 돌연 재심의를 거쳐 우표 발행이 철회됐다.

당시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최근 시민단체, 언론, 더불어민주당 등에서 우표발행 적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상 외부 압력이 있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이제까지 발행이 확정된 우표가 재심의·취소된 최초 사례였다.

이외에도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을 맞아 우파 성향 시민단체 '프리덤칼리지'가 제작을 의뢰한 '대한민국 건국 70년 우표' 제작 요청을 거부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우정사업본부는 거절 사유로 "'건국 70년',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라는 문구가 다양한 정치적 논쟁이 있는 만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 있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정사업본부 약관에 따르면 △공공질서를 해치는 내용 △국가정책을 비방하거나 우정 사업을 방해하는 내용  △과장과 거짓이 명백한 내용  △기타 사회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내용 등이 들어간 우표 도안에 대해서 우본은 우표 발행을 거부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논란도 거세다. "박정희·이승만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인물이고, 김정은에 대해서는 비판적 정치 견해가 없다는 것이냐"는 반문이다. 우정사업본부가 정치적 힘의 논리에 따라 한 쪽의 목소리만을 수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한국대학생포럼은 이날 성명에서 "우정사업본부는 '대한민국 전 대통령의 우표'를 정권 눈치 보느라 발행하지 않고 '대한민국 우표에 들어가지 말아야 할 사람의 우표'를 발행했다"며 "북한 김정은 사진이 대한민국 공식 우표가 사용되는 부분에 있어 정치적 논쟁과 다양한 견해가 있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인가"라고 규탄했다.

이들은 "인류 최악의 집단 독재자 북한의 '정상 국가화'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대한민국 우표에 그 얼굴을 넣는 것은 너무나 몰역사적 처사"라며 "논리적이고 합당한 해명이 없다면 이것은 우정사업본부가 그저 정권의 힘에 좌지우지되어 이중성을 보이는 것으로 간주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대학생포럼은 지난해 우정사업본부의 박정희 대통령 100주년 기념 우표가 불발되자 자비 부담 발행을 결정해 그해 10월 3만부의 우표를 완판시켜 눈길을 끈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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