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끼'들 사이 금융권 '위장명함' 핫 아이템으로... 명함 도용,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 ▲ 서울 시내 한 유흥가의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연합뉴스
    ▲ 서울 시내 한 유흥가의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연합뉴스
    #30대 회사원 A씨는 최근 아내와 크게 다퉜다. 유흥업소 상호가 새겨진 명함 한 장 때문이었다. 해당 명함은 얼핏보면 '정상적' 시중은행 명함처럼 보였지만 은행 이름 밑에 아주 작은 글씨로 유흥업소 상호가 찍혀 있었다. 유흥업소를 가지 않았던 A씨는 억울한 마음에 기억을 더듬었고, 지난 밤 중구 시청역 인근을 지나다 한 남성이 자신에게 B은행의 지점장이라며 명함을 건넸던 사실을 떠올렸다. 명함에는 이름과 함께 B은행 지점장이라는 직책이 새겨져 있었다. 결국 유흥업소 웨이터가 B은행의 지점장이라고 소개하며 A씨에게 명함을 줬고, A씨는 별다른 의심없이 주머니에 명함을 넣었던 것이다.

    최근 유흥업소에서 금융권이나 일부 대기업의 명함을 베껴 홍보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낯뜨거운' 유흥업소 명함은 쉽게 버려지지만 대기업 명함을 모방한 '얌전한' 홍보용 명함은 고객들이 잘 버리지 않는다는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유흥업소 대기업 '위장 명함' 사용 급증

    A씨에게 해당 명함을 받아 실제 B은행의 명함과 비교해봤다. 유흥업소의 명함은 정중앙에 B은행의 로고가 그대로 차용돼 새겨졌고 밑에는 작은 글씨로 유흥주점의 이름이 들어갔다. 또 좌측 상단에 B은행의 영문명칭이 적혀있다. 우측상단에는 B금융그룹, 좌측 하단에 이름, 우측하단에 주소가 새겨졌다. 주소는 해당 유흥업소의 주소다.

    반면 B은행의 명함은 좌측상단에 B은행 로고가 새겨져 있고 우측상단에 B금융그룹, 하단에 이름과 주소 등이 적혀있다. 2개의 명함을 자세히 비교하면 차이가 드러나지만, 얼핏 봐선 유흥업소 명함이라기 보다는 B은행 명함이라고 느낄 법 했다. 사람들이 명함의 디자인을 세세하게 기억하지 않고, 명함의 디자인이 자주 바뀐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 유흥업소 영업맨, 일명 '삐끼'들은 왜 대기업 명함을 사용할까. 명함에 새겨진 전화번호로 연락해 B은행의 명함을 모방한 이유를 물어봤다. 전화를 받은 C씨는 "명함에서 술집 분위기를 내지 않기 위한 아이디어"라며 "요즘 경기가 안 좋다보니 유흥업계도 상황이 좋지 않은데, 버려지는 명함 대신 보관할 수 있는 명함이 있어야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술집 명함처럼 보이지 않아서 와이프나 여자친구에게 쉽게 걸리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유흥업계 종사자도 "요즘 유흥업소에서 대기업 명함을 모방하는 사례가 많다. 대기업 명함은 사람들이 잘 버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명함 도용은 위법 행위…브랜드 이미지 무너질 수도

    문제는 명함을 도용하는 행위가 부정경쟁 방지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법제처에 따르면 ‘국내에 널리 인식된 타인의 성명, 상호, 상표, 상품의 용기·포장 등을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을 사용하거나 이러한 것을 사용한 상품을 판매·반포(頒布) 또는 수입·수출해 타인의 상품과 혼동하게 하는 행위’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위반하는 행위다. 

    안창현 법무법인 '대율' 변호사는 “유흥주점 영업을 하는데 B은행 명함을 쓴다는 것은 법률적으로 부정경쟁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어 보인다”며 “다만 B은행의 브랜드 가치에 지대한 손해가 있었는가에 대한 부분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업계에선 연간 최소 수억원에서 최대 수백억원을 브랜드 이미지 비용으로 사용하면서 수십년간 쌓아 올린 기업의 이미지가 흠집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매년 수십, 수백억원을 쓰고 있다"며 "유흥업소 명함 도용이라는 사소한 일이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금융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B은행의 명함이 유흥업소에 사용되면 집안에 있는 와이프들이 B은행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질 수도 있을 듯하다"며 "이런 부정적 인식이 쌓이면 결국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