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등보다 무서운 '제노포비아'

스리랑카인 과실 책임 묻되, 무분별 '외국인 혐오'는 자제를... 중요한 건 방재 시스템 점검

김동우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10.11 16:33:48
▲ 지난 7일 경기도 고양시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고양시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에서 발생한 화재의 원인으로 스리랑카인 A씨가 날린 ‘풍등’이 지목되면서 제노포비아(Xenophobia, 외국인 혐오) 발언이 난무하고 있다. 제주도 예멘 난민사태 등으로 외국인에 대한 적대적 이미지가 형성된 상황에서 다시, 외국인에 의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사고를 낸 스리랑카인 A씨를 반드시 추방하라“는 글과 ”A씨의 국적보다는 대한송유관공사의 안전관리·방재시스템이 더 큰 문제“라는 글로 여론이 맞서고 있다. 

10일 경찰에 따르면 고양경찰서는 지난 7일 발생한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 화재 사고와 관련해 중실화 혐의로 스리랑카인 A씨를 체포했다. 

◆고양 저유소 화재 원인, 스리랑카인이 날린 풍등

A씨는 화재 발생 당일 오전 10시 32분쯤 저유소 인근의 강매터널 공사장에서 소형 열기구인 풍등을 날려 저유소 잔디밭에 불을 낸 혐의를 받고 있다. 잔디밭에 붙은 불씨는 유증 환기구를 통해 유입돼 저유소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혐의를 대부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CCTV를 통해 A씨가 풍등을 날리는 장면을 확인했다. 폭발로 휘발유 탱크 상부가 날아가고 탱크에 저장된 휘발유 440만리터 가운데 절반이 넘는 260만리터가 불에 타 43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A씨는 지난 2015년 5월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입국한 스리랑카인이다. 불법체류자 신분이 아니지만 A씨의 국적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외국인 혐오 여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포털사이트 댓글에는 “이번 기회로 스리랑카인들을 모두 추방하라”, “화재로 발생한 재산피해를 모두 배상하게 해야한다”, “범죄자를 옹호해서는 안된다” 등의 글이 올라온 상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A씨를 사형시켜달라”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방재시스템 문제...풍등 아니어도 언젠간 불났다”

반면 A씨에 대한 동정여론도 이어지고 있다. A씨가 고의로 방화를 한 것도 아니고 풍등 하나에 화재가 날 정도면 처음부터 대한송유관공사의 안전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 네티즌은 “과연 스리랑카인만의 잘못인가. 희생양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며 ”풍등이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불이 날 시설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도 “스리랑카인은 가벼운 처벌로 끝내고 저유소 관련자를 엄중처벌해야한다”며 “저유소가 풍등 하나에 폭발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간다. 처음부터 안전관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경찰이 A씨에게 중실화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노영희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화재발생을 예상할 수 있었다는데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 중실화죄”라며 “A씨가 그런 판단을 할 수 있었느냐가 애매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도 “우연에 우연이 수없이 중첩된 실수에 벌금부과는 하더라도 구속영장은 지나친 것 같다”고 말했다. 

“안전관리 부실이 더 큰 문제”

이번 사고로 국가시설에 대한 안전관리 체계를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한송유관공사는 화재 발생 후 18분동안이나 사고를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화재가 발생한 저유소 인근에는 CCTV가 45대나 설치돼 있었지만 모니터링 전담 인력이 없었고 휘발유 탱크 외부에도 화재 감지 장치 등 사고를 막아줄 장치도 전혀 설치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송유관공사 관계자는 “탱크 관리 매뉴얼 등 안전관리 실태를 전반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라며 “고양 저유소 사고를 계기로 전국적인 안전점검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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