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료 정산만 해도 집주소까지 노출... 경직된 법이 北엘리트 탈북 막아"
  • 북한인권정보센터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북한인권법 개선을 위한 정책 세미나'를 개최했다. 태영호 전 주영(駐英)북한공사가 발언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 북한인권정보센터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북한인권법 개선을 위한 정책 세미나'를 개최했다. 태영호 전 주영(駐英)북한공사가 발언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국내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제도적 허점으로 보험 가입, 금융거래 등에 제약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태영호 전 주영(駐英)북한공사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북한인권정보센터 주최로 열린 '북한인권법 개선을 위한 정책 세미나'에서 "탈북 이후 북한 당국이 저를 공개적으로 협박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응당한 신변 안전을 보장 받아야 하지만, 법적 구조를 보면 허술한 점이 많다"고 지적하며 정부와 국회의 제도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태 전 공사는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신분이었던 2016년 8월 가족과 함께 한국에 망명했다. '공사'는 당시 현학봉 주영(駐英)북한대사에 이은 대사관 서열 2위 직급으로, 탈북 외교관 중에서는 최고위급 인사이다. 북한은 태 공사에 대해 "가만두지 않겠다"며 공개적으로 협박하기도 했다.

    ◇태영호 "생계 위해 스스로 신변 위협 자초"

    지난 5월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원을 사직한 태 전 공사는 현재 안보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개인 활동으로 생계 유지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태 전 공사는 강연 비용 등을 정산할 때 개인정보를 사실상 전부 공개해야 하기 때문에 신변 노출에 취약하다는 문제점을 제기했다.

    태 전 공사는 "한국 세금 규정 상 집주소와 계좌번호, 주민등록번호 같은 정보를 다 오픈하게 돼 있다. 한 달에만 여러 단체에서 강연하는데 내 신변을 스스로 노출시키는 셈"이라며 "공식 재단 같은 경우 대리인을 통한 자금이체도 불가하다. 대테러방지법을 만든 교수를 찾아가서 물었지만 법적으로 실명제이기 때문에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내 동선이나 개인 정보를 모두 알게 된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신변 경호팀은 개인 신원자료 공개를 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금융거래 시 경찰청에서 임명한 신변보호 담당자가 재정 업무를 대리할 수 있는 조항을 북한인권법에 추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태 전 공사는 탈북민에 대한 신변 위협에 대한 보호대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최근 좌파 성향 대학생들이 결성한 '태영호·박상학 체포 대학생 결사대'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태 전 공사는 "영국 같은 경우, 반(反)테러법에 당장 적용되는 반면 한국은 공개적으로 개인에 테러를 하겠다고 하는 단체에 아무런 제재가 없다"며 "탈북민에 대한 신변 위협이 가해졌을 경우 경찰이 물리적으로 제재하는 법이 추가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대학생들은 지난 8월 소셜미디어를 바탕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태 전 공사와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에 대한 무차별적 허위사실 유포와 공갈협박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들은 약 10일간의 활동을 미친 뒤 단체 기념사진까지 촬영하며 "반헌법, 반민족, 반통일 분단 적폐인 태영호와 박상학의 만행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활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신변 노출 없이는 '보험 가입'도 어렵다

    보험과 관련한 지적도 나왔다. 태 전 공사는 "병원 치료를 받은 뒤 보험사에 비용을 청구했는데, 회사에서 의료진단기록지를 요청해 다 보냈다. 탈북민이기 때문에 2017년 이전 의료진단기록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랬더니 그 나이 되도록 병원에 안 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묻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17년 이전 기록이 있는지 없는지 집주소 반경 50km 안에 있는 모든 병원에 공문을 발송한다고 해서 거절하니까 결국 지불이 안 됐다. 보험 계약도 해지했다. 다른 회사를 알아보니 이전 회사 가입여부와 해지 이유를 물어서 결국 보험을 들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목숨이 달린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신원을 정확히 밝혀야만 하는 셈이다.

    태 전 공사는 "이러한 문제는 국가가 법률적으로 해결해, 보험 가입도 경찰이나 대리인이 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뼈 있는 말을 남겼다.

    "향후 통일을 위해선 김정은 체제를 받들고 있는 엘리트층이 이탈해 대한민국에 와야 한다. 그들이 한국에서 신변 위협을 느끼지 않고 통일을 위한 활동을 하기 위해선 실질적 법 조항이 마련·개선돼야 하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돼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