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마다 다른 해군함정 명명법…국민 존경받는 위인, 광역지자체, 중소도시 등 사용
  • 지난 9월 14일 대우조선해양에서 열린 3,000톤급 잠수함 '도산 안창호'함 진수식.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9월 14일 대우조선해양에서 열린 3,000톤급 잠수함 '도산 안창호'함 진수식.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 해군의 잠수함은 보통 해군에서 추앙받는 위인들의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 9월 14일 진수식을 가진 신형 3000톤 급 잠수함의 이름은 ‘도산 안창호’함이다. 이처럼 해군 위인이 아닌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신형 함정이 취역한 1990년대 후반부터다.  

    한국 해군의 구축함·잠수함 명명법

    24일 해군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당초 한국군은 구축함과 호위함에는 광역지자체, 초계함에는 중소 도시 이름, 소해함에는 유명한 읍의 이름, 상륙함에는 유명한 산의 봉우리, 군수 지원함에는 잘 알려진 호수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1990년대 우리나라가 자체 제작한 군함들이 등장하면서 명명법에 변화가 생겼다. 신형 구축함과 잠수함에 역사적 위인과 독립 운동가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다.

    해군은 새 명명법에 따라 1998년 취역한 KD-1급 구축함에 ‘광개토대왕’함, ‘을지문덕’함, ‘양만춘’함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어서 건조·취역한 KD-2급 구축함에는 ‘충무공 이순신’함, ‘문무대왕’함, ‘대조영’함이, 이지스 구축함(KD-3)에는 ‘세종대왕’함, ‘율곡 이이’함, ‘서애 유성룡’함 등의 이름을 붙였다.

    잠수함은 1993년 6월 취역한 1200톤급 ‘장보고’ 함과 2007년 12월 취역한 1800톤급 ‘손원일’ 함의 명명법이 다르다. 해군은 ‘장보고’급 잠수함에는 통일 신라 시대부터 조선까지 해상에서 이름을 날린 해군 장수들의 이름을 붙였다. ‘장보고’함, ‘이천’함, ‘최무선’함, ‘박위’함, ‘이종무’함, ‘정운’함, ‘이순신’함(注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싸웠던 동명 이인의 수군 장수), ‘나대용’함, ‘이억기’함이 나온 이유다.

    ‘손원일’급 잠수함의 경우 1번함과 2번함은 한국 해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손원일 제독과 고려 말 왜구 격퇴로 명성을 날렸던 정지 장군의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나 3번함부터는 독립운동을 했던 애국지사들의 이름을 사용했다. 2009년 12월에 취역한 ‘안중근’함을 시작으로 ‘김좌진’함, ‘윤봉길’함, ‘유관순’함, ‘홍범도’함, ‘이범석’함, ‘신돌석’함이 등장했다. 이 가운데 2015년 7월 진수식을 가진 ‘유관순’함은 해군 7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여성 이름을 사용해 화제가 됐다. 그리고 지난 9월 진수식을 가진 3000톤급 잠수함에 ‘도산 안창호’라는 이름이 붙음으로써 앞으로 이 잠수함은 ‘도산 안창호’급으로 불리게 됐다.

    군함의 명칭은 건조가 끝나고 진수식이 임박했을 때 해군 내부 회의를 거쳐 결정한다. 함정이 하나의 부대인 해군은 ‘부대명칭 개정규정’에 따라 함정 이름을 짓는다. 장성급이 주재하는 해군 내부 회의를 거쳐 함명 및 선체번호 제정안을 작성한 뒤 해군참모총장의 승인을 받아 진수식 때 이를 공개한다.
  • 한국 해군의 신형 호위함 '광주함'. 앞으로 한국 해군 전력의 '몸통'이 될 '급'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 해군의 신형 호위함 '광주함'. 앞으로 한국 해군 전력의 '몸통'이 될 '급'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정 이름을 짓는 것은 해군의 고유 권한이지만 국민들이 “○○○라는 이름을 군함에 붙여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2016년 12월 경북 청도군은 해군본부를 찾아 “이운룡 장군의 이름을 군함에 붙여달라”는 청원서를 전달했다. 청도군 측은 이운룡 장군 덕분에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이끌던 전라수군과 원균의 경상수군이 연합함대를 구성했고, 옥포 해전에서는 선봉장으로 활약해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학익진’을 처음 구상한 것도 이운룡 장군이라며 해군 함정에 그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도군의 청원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해군이 함정 명명을 할 때 참고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국 해군의 나머지 함정 명명법

    구축함과 잠수함 이외의 함정들은 명명하는 원칙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호위함에는 여전히 서울·부산·대전 등 광역지자체 이름이 붙고, 초계함에도 중소 도시 이름이 붙는다. 다만 1980년대부터 취역, 지금도 운용 중인 울산급 초계함과 포항급 초계함, 그리고 2011년 4월 진수식을 가진 신형 초계함 ‘울산-Ⅰ급(일명 인천급) 배치 1’과 ‘울산-Ⅰ급 배치 2’의 이름이 헷갈릴 수 있다.

    과거 ‘울산’급과 ‘포항’급이 배수량 1000톤 안팎의 소형 함정이었던 반면 ‘신형 울산-Ⅰ’급은 2500톤 이상의 배수량에 후기형(배치 2)에는 미사일 수직발사기(VLS)까지 장착하고 있다. 해군은 ‘배치 1’에 인천·경기·전북·강원·충북·광주를 이름으로 붙였고, ‘대구’ 함을 포함해 8척의 ‘배치 2’에는 나머지 광역 지자체 명칭을 붙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해군은 이밖에 기뢰를 제거하는 소해함에는 ‘강진’, ‘고령’ 등 읍 이름을, 기뢰 부설함에는 6·25전쟁 당시 기뢰공격을 당했던 지역 이름을, 상륙함에는 ‘성인봉’, ‘향로봉’, ‘고준봉’ 등 유명한 산의 주요 봉우리 이름을, 군수 지원함에는 ‘대청’, ‘천지’ 등 댐 건설로 만들어진 대형 호수 이름을 붙이고 있다.

    소형 고속정의 경우 과거에는 ‘참수리’와 같은 맹금류 이름을 ‘네임쉽(급명함)’으로 쓰면서 숫자만 붙였다. 그러나 2008년 12월 취역한 미사일 고속함 ‘윤영하’급은 1번함부터 6번함까지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영웅들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7번함부터 18번함까지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해군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영웅들의 이름을 따서 붙이기로 했다.
  • 美해군뿐만 아니라 역사상 가장 많은 전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 항공모함(CV-6) '엔터프라이즈'. ⓒ美국방부 공개사진.
    ▲ 美해군뿐만 아니라 역사상 가장 많은 전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 항공모함(CV-6) '엔터프라이즈'. ⓒ美국방부 공개사진.
    나라마다 다른 해군함정 명명법

    해군 함정 명명법은 나라마다 다르다. 함정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진 美해군의 경우 지금은 전략미사일 잠수함(SSBN)에 ‘오하이오’ 등 각 주의 명칭을 붙이지만 2차 세계대전 때는 새로 건조할 주력 전함(BB)에다 주 이름을 붙였다. 생산 계획이 취소된 ‘몬타나’급을 비롯해 ‘아이오와’급, ‘콜로라도’급, ‘노스캐롤라이나’급, ‘테네시’급, ‘사우스다코타’급이 그것이다.

    美해군이 자랑하는 핵추진 항공모함은 주로 美해군 발전에 커다란 공을 세운 장군이나 대통령의 이름을 붙인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니미츠’급부터다. 美해군이 냉전 시작 때부터 1980년대까지 운용했던 ‘미드웨이’급이나 ‘포레스탈’급, ‘키티호크’급, 최초의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급 등의 이름은 미국 내 유명한 지명부터 존경받는 대통령이나 해군 발전이 큰 역할을 한 제독 이름, 또는 미국의 별명 등이 붙었다.

    美해군 함정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이름은 ‘엔터프라이즈’급이다. 美해군의 첫 ‘엔터프라이즈’는 1775년 7월 독립전쟁 당시 영국에게서 빼앗아 사용한 전투함이다. 이후 美해군은 6척의 ‘엔터프라이즈’함을 운용했다. 가장 유명한 ‘엔터프라이즈’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십 번의 적 공격을 받고도 무사했던 7대 '엔터프라이즈'함이었다.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2번함인 ‘엔터프라이즈’함은 1941년 12월 이후 태평양 전쟁에서 ‘둘리틀 특공대’의 첫 도쿄 공습, 미드웨이 해전, 솔로몬 해전, 산타 크루즈 해전, 과달카날 전투, 필리핀해 해전, 레이테만 해전, 이오지마 및 오키나와 침공작전을 수행했다. 그동안 수십 차례 적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침몰하지 않고, 함재기와 대공화기로 적기 900여 대를 격추, 적함 70여 척을 침몰시키고 190여 척에게 피해를 입혔다.

    美해군은 1960년 9월에 진수한 세계 최초의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에게 “전설을 이어 받으라”며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을 붙였다. 2012년 12월 퇴역할 때까지 핵추진 항공모함(CVN-65) ‘엔터프라이즈’함은 美해군의 상징처럼 불렸다. 그리고 신형 ‘제럴드 포그’급 3번함이 9대 ‘엔터프라이즈’ 함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美해군은 그밖에 이지스 순양함이나 이지스 구축함에는 역사적 위인, 특히 해군과 해병대 발전에 큰 공이 있는 사람들 또는 무공을 세운 전사자들의 이름을, 잠수함에는 주요 주나 도시 이름을 붙인다.

    2차 세계대전 때까지 최강이었던 英해군은 항공모함이나 강습상륙함 등 특별한 전투함을 제외하고는 함정 이름 명명에 별다른 기준을 두지 않는다. 프랑스 해군 또한 자국의 위인이나 전쟁 영웅 이름을 붙인다. 

    日해상자위대는 자국민에게 ‘군대 색채’를 보이지 않기 위해 이름도 최대한 순화해서 붙인다고 한다. 구축함부터 초계함까지 아울러 지칭하는 호위함, 그보다 작은 경비함에는 날씨·강·산·지명 등을 붙이고, 잠수함에는 지명 뒤에 조석의 변화를 나타내는 ‘시오’를 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