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온' 사과하러 가서도 허언 뱉더니… 적국 수괴 앞에서 우리 군인을 ‘인부’ 취급
  • ▲ 지난 20일 백두산 천지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내외.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20일 백두산 천지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내외.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농담이라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나라 지키는 사람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국방장관이 ‘농담’이라며 ‘나라 지키는 사람들’을 아랫 것들 취급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의 안내로 백두산 천지를 찾았던 지난 20일, 국내 언론에 황당한 발언이 전해졌다. 당시 상황은 이랬다. 문 대통령 내외가 김정은과 함께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가면서 담소를 나눌 때였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어제 오늘 받은 환대를 생각하면, 서울에 오시면 보답을 해 겠다”고 말했다. 이때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끼어들어 “서울 답방 오시면 한라산으로 모셔야 되겠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자 옆에 있던 송영무 국방장관이 거들었다.

    “한라산 정상에 헬기장을 만들겠다. 우리 해병대 1개 연대를 동원해서 만들겠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 ‘농담’을 듣고 웃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웃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국방장관이라는 사람이 적국의 수괴를 접대하기 위해 ‘국가전략기동군’ 병력을 대규모로 동원해, 산 정상에 헬기장을 만든다는 '농담같지 않은 농담'은 충격적이었다. 어이없는 그의 발언은, 취임 이후 계속된 송영무 장관의 말실수를 떠올리게 했다.  

    말을 뱉어놓고 ‘농담’이라며 뭉개버리려는 송영무 장관의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장관 임명식이 있던 2017년 7월 13일, 그는 “늦지 않으려 버스 전용차선을 타고 왔다”고 말했다. 비난이 일자 “농담”이었다고 했다. 판문점에서 북한군 병사가 귀순한 뒤 공동경비구역(JSA) 장병들을 위로하는 오찬에서는 “식사 전 이야기와 미니스커트는 짧을수록 좋다”는 말을 공개석상에서 했다. 지난 7월 9일에는 군내 성폭력 근절과 관련해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보면 여성들이 행동거지라든가 말하는 것, 이런 것을 조심해야 한다”면서 “여자들 일생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좀 있는데 이걸 깨닫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 발언은 국민들로부터 큰 반발을 샀다.

    ‘마린온’ 유가족에 사과하러 가서도 말싸움

  • ▲ 자신이 국회에서 한 失言에 대해 '마린온'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사과하러 간 송영무 국방장관. 그는 유족들이 항의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TV조선 관련보도 화면캡쳐.
    ▲ 자신이 국회에서 한 失言에 대해 '마린온'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사과하러 간 송영무 국방장관. 그는 유족들이 항의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TV조선 관련보도 화면캡쳐.

    그가 한 실언의 하이라이트는 해병대용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추락사고 관련 발언이었다. 지난 7월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송영무 장관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추락으로 순직한 장병 유가족들이 왜 분노하느냐”는 질문에 “아마도 의전 등이 흡족하지 못해 짜증이 나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에 유가족은 물론 국민들까지 거세게 비판했다. 그러자 송영무 장관은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를 한다며 빈소를 찾았다. 유가족들이 “가족을 잃은 우리가 의전 때문에 짜증내는 줄 아냐”고 항의하자, 그는 오히려 “제가 그렇게 몰상식해 보이냐”며 인상을 썼다. 이를 두고 "송영무 장관이 평소 해병대를 어떻게 보는지를 알려주는 증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해병대가 마당쇠인가?

    노무현 정부 시절 ‘대양해군’을 외치던 송영무 장관에게 해병대는 그저 “숫자도 작으면서 장성 수만 많은 계륵 부대” 아니면 “해군이 필요할 때 불러서 작업이나 시키는 마당쇠”로 보이는 걸까. 그래서 그가 말실수에서 보여준 것처럼, 혹시라도 해병대를 하찮게 여기는 것일까.

    2만 8,000명 규모의 해병대는 전원이 자원한 부대다. 그래서 힘든 교육훈련을 받고 격오지에서 근무해도, 육군에 비해 낙후된 시설과 장비를 갖고 생활해도 자부심을 갖는다. 특히 제주도와 해병대는 ‘특수 관계’다. 제주도민들은 6.25전쟁 당시 남녀를 불문하고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사실을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런 제주도의 꼭대기에 그런 해병대를 대규모로 동원해 김정은을 위해 막노동을 시키겠다고 했다. 대한민국 해병대가 ‘조선인민군 돌격대’인가.

    지난 3월 8일 국방부가 내놓은 “군대 안에서 병사들을 동원한 작업을 금지하기로 했다”는 ‘2018~2022 군인복지 기본계획’이 해병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송영무 장관 눈에는 해병대가 ‘군인’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설마, 과거 김일성과 김정일이 가장 무서워 했다는 해병대를 김정은 앞에서 의도적으로 깔아뭉갠 것일까. 그건 아니었으리라고 믿겠다.

    송영무 장관은 이번에도 “농담이었다”며 실언(失言) 논란을 피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언론 보도도 그런 식이다. 그러나 그동안 있었던 그의 실언을 살펴보면 해병대를 깔보는 것 같은 뉘앙스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송영무 장관이 이미 경질된 상태라는 점이다. 지난 19일 국회 국방위원회는 정경두 합참의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보고서를 채택했다. 물러날 사람이 허언을 뱉고 가니, 더 황당하다. 정경두 신임 국방장관은 취임 이후 모군(母軍)인 공군뿐만 아니라 해병대와 육군, 해군까지도 존중할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