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통계 비판기사를 옹호기사로 둔갑"… 문제 불거지자 '다시보기'에서 내용 삭제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 사옥.ⓒ뉴데일리DB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 사옥.ⓒ뉴데일리DB

    KBS 메인뉴스인 '뉴스9' 진행 앵커가 기자의 정부 비판 의도가 담긴 리포트 원고를 임의로 고쳐 진행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취재 기자가 '문제점'으로 지적한 부분을 거꾸로 수정해, 반대 뉘앙스를 풍기도록 수정한 것. 문제가 불거지자 KBS는 인터넷 '다시보기'에서 해당 내용을 삭제했다. 

    KBS 공영노조는 21일 "지난 18일자 리포트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개편...'통계불신' 해소되나>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기자가 당초 통계 조사 방식의 문제를 지적한 것을 김철민 앵커가 임의로 고쳐 방송했다"고 폭로했다. 

    18일 저녁 보도된 해당 리포트는 '정부가 2020년부터 가계동향 조사용 별도 표본을 만든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김철민 앵커는 리포트를 소개하며 "통계청이 잘못된 표본을 바로잡아 이 통계를 전면개편하기로 했습니다"라며 "이렇게 해서라도 국민들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취재 기자가 당초 작성한 기사는 김철민 앵커의 이같은 멘트와 달랐다. 취재 기자가 쓴 기사 원문은 "통계청이, 국민들의 소득 분배지표가 최악으로 나타나 '소득주도성장정책 실패' 논란을 부른 '가계동향조사'를 전면 개편하기로 했습니다.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는데, 잦은 통계조사 방식 변경에 따른 논란은 피해가기 어려워 보입니다"였다.

    ☞ 취재 기자 작성 원문
    통계청이, 국민들의 소득 분배지표가 최악으로 나타나 '소득주도성장정책 실패' 논란을 부른 '가계동향조사'를 전면 개편하기로 했습니다.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는데, 잦은 통계조사 방식 변경에 따른 논란은 피해가기 어려워 보입니다.

    ☞ 수정된 앵커 멘트
    얼마 전 통계청장이 갑작스럽게 경질되면서 논란이 됐었던 '가계동향 소득조사' 라는 통계가 있었죠. 이 통계에 소득 분배수치가 악화된 것으로 나타면서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실패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졌었는데요. 통계청이 잘못된 표본을 바로잡아 이 통계를 전면개편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국민들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해당 사실을 폭로한 KBS공영노조 측은 "위 두 멘트는 그 성질상 내용이 완전히 다르다"며 "김 앵커의 멘트는 마치 표본이 잘못됐기 때문에 '가계 소득'이 나빠졌다는 것처럼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기자 "왜 바뀌었는지 알고싶다" 반발

    공영노조 측은 "앵커가 뉴스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방송한 것인지, 고의로 개인적 희망을 얘기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둘 다 부적절한 행위"라며 "앵커 멘트까지 정권에 유리하게 고쳐 방송하는 이런식으로라면 KBS가 가짜 뉴스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며 고 비판했다.

    KBS 측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리포트를 작성한 기자는 "어떤 이유로 수정된 것인지 알고 싶다"며 수정된 앵커멘트를 두고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KBS뉴스 인터넷 다시보기'에서는 문제가 된 김철민 앵커 발언 부분이 삭제돼 있다. '실제로 방송한 멘트'는 보이지 않고, 당초 취재 기자가 작성한 원고 초안, 즉 방송에 나오지 않은 멘트가 게재돼 있는 상태다.

    KBS '다시보기'에서 해당 부분 삭제

    <뉴데일리>는 KBS에 △한번 방송이 나간 리포트가 추후에 일부분이 잘려서 올라가는 일이 통상적인 일인지, △원고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앵커가 취재 기자 본인과 조율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향후 어떻게 조치할 예정인지를 질의했다. 

    KBS 측은 "이미 방송 나간 뉴스에 대해 안팎의 이의 제기가 있고 합리적이라고 판단될 경우, 홈페이지에서 수정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며 "오보에 대한 정정, 사과 방송하는 경우 등과 비슷한 차원이다"고 했다. 이어 "9시 앵커는 기자 출신이고 기자가 쓴 앵커멘트를 수정하는 것은 당연히 인정된다"며 "앵커멘트를 수정할 경우 취재기자와 상의하느냐의 여부는 앵커의 재량에 따른 문제"라고 덧붙였다.

    성창경 KBS 공영노조 위원장은 21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앵커가 원고 일부를 수정할 권한은 있지만, 이번 경우엔 뉴스 핵심이 완전 반대로 짚어진 셈 아니냐"며 "특히 리포트가 (방송에) 나간 이후 다시보기에서 특정 부분만을 삭제한 것은 이제까지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

    바른언론연대 역시 이날 통화에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며 "KBS가 정권 나발수로 전락했다는 이야기 밖에 더 되겠느냐"고 개탄했다. 연대 관계자는 "국민들이 수신료를 내고 보는 공영방송의 뉴스 진행자가 정말 모르고 실수를 한 것인지, 고의적으로 뉴스를 조작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