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수트, 시계, 자동차 강권하며 보험 영업시켜… 인맥 떨어지면 퇴사 "불완전 판매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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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상 다단계와 크게 다를 게 없어요. 철저한 실적 위주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일반 팀원은 별도 계약이 없으면 기본 수당도 없습니다. 돈을 버는 건 소수의 팀장급들 뿐입니다. 전역군인을 우대하는 이유는 부대에 지인이 많기 때문입니다. 인맥을 다 동원해서 계약을 따와도 남는 건 빚 뿐이었습니다.”(A 보험대리점에서 근무했던 전역군인 B씨)

    “신입이 들어오면 교육도 들어가기 전에 일단 명품 수트와 시계부터 사라고 합니다. 영업직이니까 보이는 옷차림이 중요하다고 강요하는 거죠. 신입들은 대부분 어린 취업준비생들이 많기 때문에 빚을 낼 수 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사정이 절박해집니다. 회사를 빠져나가기 힘들게 만드는 거에요.”(A 보험대리점 전 부지점장 C씨)

    일부 보험대리점 등에서 취준생이나 전역군인들을 현혹해 일종의 취업사기를 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취준생들은 "대기업 보험사에서 재무관리사로 일할 수 있다"는 취업광고에 입사를 결정했지만 실제로는 보험 영업직으로 일하게 됐다. 

    광고는 '대기업 보험사 재무관리사'…  실제는 보험 영업

    B씨는 지난해 9월, 지인의 권유로 A 보험대리점에 입사했다. 부사관 전역군인으로 사회에서 별다른 경력이 없었던 B씨는 대기업 보험사의 타이틀을 걸고 일할 수 있고 높은 연봉에 인센티브까지 받을 수 있다는 지인의 말에 A사 입사를 결정했다. 

    실제 구직사이트에 올라온 A사의 구인광고를 보면 모집분야를 재무설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담당업무 역시 금융 컨설팅과 재테크 포트폴리오 설계 등 재무관리사들이 하는 업무를 적시했다. 그러나 입사 후 B씨에게 부여된 실제 업무는 청년들의 인맥을 이용해 보험을 파는 영업직이었다. 
  • 구직사이트에 올라온 A사의 구인광고. 모집분야가 재무설계로 돼 있다. ⓒ잡코리아 홈페이지 갈무리
    ▲ 구직사이트에 올라온 A사의 구인광고. 모집분야가 재무설계로 돼 있다. ⓒ잡코리아 홈페이지 갈무리
    B씨는 “면접을 볼 때에도 재무관리쪽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면접관들도 보험을 다룬다고만 얘기하고 업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해주지 않았다”며 “보험 판매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입사서류 작성 후 교육을 받을 때였다”고 말했다. 

    A사는 '정착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신입들에게 200만원의 지원금을 빌려주고 이를 10개월 동안 갚게했다. B씨는 “정착 지원금은 신입이 입사 후 쉽게 퇴사하기 어렵게 하려는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다단계 영업...1년 간 일하며 남은 건 1000만원대 대출금

    A사는 B씨에게 자사에서 판매 중인 보험에 가입하라고 강요했다. B씨는 가입한 보험이 자신에게 입사를 권유한 지인의 실적으로 올라갔다는 것을 알게 됐다. B씨는 "지인을 입사시키면 50만원을 현금으로 지급받게 되고, 신입이 가입한 계약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A사는 B씨에게 고가의 수트와 명품 시계, 자동차 등을 구입하라고 권했다. 영업직은 외견이 중요하다는 압박에 못 이긴 B씨는 결국 대출을 받아 수트와 시계를 장만했다. 

    B씨가 A 보험대리점에 입사해 일하면서 번 돈은 한 달에 150만원 남짓이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그나마 이 수입도 자동차 리스비용과 고객 접대비, 선물비, 교통비 등으로 다 나가면서 1년 간 근무 후 남은 것은 1000만원의 대출금 뿐이었다. 

    B씨는 보험대리점들의 이러한 영업행태가 사실상 다단계와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B씨는 “대부분의 보험대리점들이 사실상 다단계처럼 운영되고 있다"면서 "밑에 팀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본부장과 지점장, 부지점장 등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신입의 인맥이 다 동나거나 실적이 나오지 않을 경우 퇴사를 권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무자격자… ‘불완전 판매’ 위험 높아

    일각에서는 이 같은 보험대리점들의 영업행태가 금융소비자들의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취업사기로 입사한 청년들의 경우 대부분이 보험설계사 자격이 없는 무자격자이기 때문에 보험의 구성이나 리스크에 대해 제대로 알기 어렵고, 이에 따라 불완전 판매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불완전 판매는 보험사 등 금융회사가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상품의 구성을 고객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파는 행위를 말한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보험국장은 “보험설계사 자격증이 없는 자가 보험을 모집하거나 판매하는 행위는 보험업법에 위반하는 행위”라며 “만약 그런 경우가 있다면 해당자와 해당자를 고용하거나 관리하고 있는 업체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인광고에도 보험 판매라고 밝히지 않고 '재무설계 또는 금융전문가'라고 적어놓고 있는 데다, 일부 대리점들은 대학에까지 버젓히 구인광고를 내걸고 있다"면서 "요즘 취업이 안되니까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들어갔다가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보험대리점들이 명칭을 임의대로 쓰는 행위도 시정조치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