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평양 방문 3일째인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김정은의 안내를 받으며 20일 화창한 날씨 속에 백두산 천지를 방문했다.ⓒ
    ▲ 평양 방문 3일째인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김정은의 안내를 받으며 20일 화창한 날씨 속에 백두산 천지를 방문했다.ⓒ
    백두산은 고래로부터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한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이다. 

    이 영산의 절반을 김일성이 중국에 넘겨버렸다. 1962년 6·25전쟁에 참전한 보답으로 중국과 체결한 극비조약의 결과다. 우리 역사상 타민족에게 영토 자체를 떼어 준 '매국(賣國) 행위'를 한 자는 김일성이 처음일 것이다.

    조선 왕조는 중국과 무려 300년에 걸쳐 국경 분쟁을 벌였다. 그러면서도 땅은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정조 때는 중국과 비문(碑文)을 세워 우리 땅을 지켰다. 청나라 후반에 중국이 또다시 백두산 일대의 영토 문제에 시비를 걸자, 고종은 오히려 간도에 관리를 파견해 세금을 거두는 등 실효지배로 대응했다.

    현실적으로 백두산 이북 쪽 영토는 고래로 우리가 개척해 우리 민족이 살아온 곳이다. 때문에 청나라도 어쩌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1909년 막강한 힘을 가진 일제가 '간도협약'을 맺어 중국에 간도를 넘겼다.

    조상들이 피땀으로 지켜온 영토

    993년(성종 12) 거란이 고려를 침략했다. 전세(戰勢)는 매우 불리했다. 항복하자는 안과 서경 이북을 거란에 떼어주고 강화를 하자는 안을 놓고 조정이 둘로 갈라졌다. 이에 문신(文臣) 서희가 자진해서 국서를 가지고 적진에 가 적장 소손녕과 담판을 벌였다.

    거란의 소손녕은 “우리는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주장하면서 "고려가 차지한 고구려의 옛 영토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에 서희는 “고려는 곧 고구려와 같다. 우리는 그 후손으로 같은 말을 쓰고 있으니 우리가 고구려의 후신”이라고 맞받아치며, 또 한편으로 설득하여 결국 거란군을 철수시켰다.

    도리어 거란은 돌아가는 길에 여진을 정벌하여 강동 6주를 고려에 내주었다. 당시 송나라와 고려, 거란 등과의 국제정세를 잘 파악하여 거란의 양보를 얻어낸 것이다. 고려말 공민왕도 원나라에 빼앗겼던 옛 고려 영토를 회복하는 데 힘썼다. 

    이렇게 조상들이 피눈물로 지켜온 우리의 국토를 김일성은 무슨 떡고물 주무르듯, 지도에 줄을 죽 그어 하루아침에 중국에 넘겨 버렸다. 백두산은 중국에 넘겨줄 하등의 이유가 없는 명백한 우리 땅이다. 이처럼 '매국노' 김일성은 백두산 절반을 영영 되찾을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하기야 외세의 힘을 빌려 같은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눈 김일성에게 눈곱만큼의 애국심이나 역사관이 있었다면 그가 국토를 팔아먹는 매국 행위를 이처럼 거침없이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의 역사관은 중요한 것이다.

    독도를 지켜낸 이승만 대통령

    김일성은 6·25 때 전세가 불리해지자 자기가 사지(死地)로 내몰았던 이북의 인민군과 백성을 버리고 자기만 살고자 중국으로 도망갈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임금의 뒤통수까지 쫓아 왔을 때, 선조는 압록강을 넘으려고 했다. 평양까지 파죽지세로 치닫는 일본 군대에 얼마나 겁이 났겠는가. 하지만 신하들이 "압록강을 넘는 순간 종묘사직은 사라진다"며 결사로 막았다.

    6·25 때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부산까지 후퇴했다. 대구가 적의 공격권에 들어가자 무초 대사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정부를 제주도로 옮길 것을 건의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갑자기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들고 아래위로 흔들면서 “이 총으로 공산당이 내 앞까지 왔을 때 내 처를 쏘고, 적을 죽이고 나머지 한 알로 나를 쏠 것이오. 우리는 정부를 한반도 밖으로 옮길 생각이 없소. 모두 총궐기하여 싸울 것이오. 결코 도망가지 않겠소”라고 단호히 말했다. 이 이야기는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6·25 전쟁의 혼란을 틈타 일본 어선들의 한국 해안 침범이 빈번해지자,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1월 18일 평화선(이승만 라인)을 선포했다. 조선왕조 이후 우리의 수자원과 독도를 보호하기 위한 최초의 조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재직 시 대마도를 ‘우리 영토’라고 주장했고, ‘평화선’을 선포한 후 일본의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독도를 지켜냈다.

    백두산을 다른 민족에게 잘라 넘긴 김일성의 행태를 보건대 그가 만약 남한의 공산화에 성공했더라면 독도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장담하건대 아마 지금쯤 독도에는 태극기 대신 일장기가 휘날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