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력 1만, 집단체조 5만 동원… 순항미사일, 대전차미사일 등 '한국' 겨냥 무기 과시
  • ▲ 지난 9일 北정권 수립 70주년 기념일 열병식에 등장한 미사일. 도색과 크기 등으로 볼 때 지대함 미사일로 추정된다. ⓒ연합-EP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9일 北정권 수립 70주년 기념일 열병식에 등장한 미사일. 도색과 크기 등으로 볼 때 지대함 미사일로 추정된다. ⓒ연합-EP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정은 정권이 지난 9일 평양에서 정권 수립 70주년 열병식을 열었다. 한국과 미국, 일본 언론들은 “이번 열병식에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나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등이 등장하지 않았다”면서 이번 열병식이 ‘로우 키(Low key: 조용하고 은밀하게 진행)’로 진행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1만 명 이상의 병력, 5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주민들의 집단 체조 등을 보면 축소되거나 조용한 행사라 부르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이번 열병식에는 일부 개량을 거친 장비들, 순항미사일로 추정되는 무기들이 눈에 띠었다. 외형의 큰 변화가 없이 열병식에 나온 탓에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뿐이다.

    탄도 미사일 없지만 ‘주체 무기’로 채워져

    지난 9일 열병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무기는 캐니스터(수납함)에 든 채로 궤도차량이 싣고 나온 미사일이었다. 10m가 채 안 되는 길이의 캐니스터와 궤도차량은 마치 中인민해방군 해군 육전대처럼 파란색과 흰색 위장무늬로 칠해져 있었다. 그 형태와 위장무늬, 운반차량 등으로 볼 때 육상에서 해상을 향해 발사하는 지대함 미사일의 일종으로 추정됐다.

    가장 가능성 있는 모델은 中인민해방군이 사용하는 C-802 지대함 순항미사일. ‘중국판 하푼 미사일’이라 불리는 C-802는 1989년 실전배치된 무기로, 사거리 120~180km에 마하 0.9의 아음속으로 적을 공격한다. 용도는 한국 해병대의 ‘하푼 지대함 미사일’처럼 적 해군의 상륙 전력이나 수상함정을 공격하는 것이다. 국내외 민간 군사연구가들은 북한이 C-802를 처음 시험 발사한 것이 2011년 10월과 11월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중국은 과거 이란에 C-802 대함 미사일을 판매한 바 있다. 이란은 이를 개량해 2006년 시험 발사를 했다.

    신형 대전차 미사일은 구형 무기가 된 경량 보병전투차 BTR-80의 차체를 개량해 6륜 차륜형으로 만든 뒤 그 위에다 캐니스터를 장착했다. 캐니스터의 형태로 보면 舊소련제 대전차 미사일 9K111 파곳을 장착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북한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4,500여 기의 파곳 미사일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파곳’을 살짝 개량한 미사일을 ‘주체식 미사일’이라 주장하며 ‘불새 2’라 부른다. 지난 몇 년 사이에는 이를 더 개량한 ‘불새 3’을 만들어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하마스’에 수출하려다 적발되기도 했다.
  • ▲ '선군-915' 전차. 구형 T-72처럼 보이지만 개량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연합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선군-915' 전차. 구형 T-72처럼 보이지만 개량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연합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한은 또한 열병식에서 ‘불새 5’로 추정되는 대공미사일도 선보였다. 북한은 1970년대 말 舊소련에서 수입한 S-300 초기형을 개조해 ‘불새 5’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콜드 런치’로 발사되는 ‘불새 5’는 최대 사거리가 200km라고 한다. 2017년 5월 27일 함경남도 선덕에 있는 미사일 시험장을 찾은 김정은은 ‘불새 5’의 대량생산을 지시했다. 한미 연합공군 전력을 두려워하는 북한 입장에서 S-300 수준의 대공미사일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선군-915’ 전차도 나왔다. 북한이 2005년부터 제2기계 공업국 류경수 전차공장에서 생산 중인 ‘선군-915’ 전차는 지금까지 최소한 1,000대 이상이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얼핏 보면 구형 T-72 전차와 비슷해 보이지만 항속거리가 500km로 늘었고, 포탑 또한 125mm 활강포를 탑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포탑 위에는 9K38(나토코드 SA-18) 휴대용 대공미사일(MANPADS) 연장 발사기를 탑재해놓고 있다. 이밖에 152mm 구경 자주포, 기존의 차대를 고친 듯한 170mm 자주포도 등장했다. 이 가운데 152mm 자주포는 기존의 것을 개량, 사거리를 키운 것으로 보였다.

    등장 무기 변화의 의미… “주적은 한국”

    지난 2월까지 북한 열병식에 ‘화성-12’나 ‘화성-14’, ‘북극성’ 등의 탄도미사일이 나온 것은 “우리의 적은 미제와 일제”라고 풀이할 수 있었다.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이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모두 전장 종심이 짧은 한국을 겨냥하기에는 비용 대 효율면에서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9일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등장한, 소위 ‘주체식 무기’들은 재래식 전력으로 모두 한국군에 맞서기 위해 생산한 무기들이었다. 국내 일각에서 주장하는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긴장 완화와 비핵화 달성”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종전선언’과 ‘美北평화협정’ 체결 단계를 지나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되면, 이 무기들은 남쪽을 겨냥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일본 언론이 지난 9일 열병식을 보고 ‘로우 키’라고 표현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당장 북한의 재래식 전력에 위협을 받는 한국 언론들 입장에서는 탄도미사일이 안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로우 키’라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