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앱' 보편화돼 승차거부 구별 못해… "서울시, 현실 모르고 탁상행정" 지적
  • ▲ 서울 시내에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다. ⓒ뉴시스
    ▲ 서울 시내에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다. ⓒ뉴시스
    서울시가 자치구에 위임했던 ‘승차거부 택시’의 처벌권한 환수 방침을 밝혔다. 처벌을 강화해서 승차거부를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최근 카카오택시 등 택시 어플리케이션(앱)이 보편화하면서 승차거부가 빈차 표시등을 꺼놓는 '콜 거부' 방식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운송 수요·공급 개선이라는 택시업계의 구조적 문제 해결, 택시 앱 보완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10일 서울시는 보도자료를 내고 120다산콜 등으로 접수되는 민원신고 건과 택시 운송사업자에 대한 처분권한을 자치구로부터 연내 모두 환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120다산콜 등으로 승차거부 민원이 접수되면 각 자치구로 전달되고 구에서 관련 내용을 자체적으로 조사한 후 처분을 내렸다. 승차거부 기사가 많은 운송사업자의 경우에도 1차 처분(사업일부정지 60일)은 자치구에 위임하고 2차(감차 명령)와 3차(사업면허 취소) 처분을 서울시가 내렸다. 

    서울시는 처벌권한을 환수하면 승차거부 택시 근절에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는 “자치구에 위임됐던 승차거부 처분권한을 서울시가 완전히 환수해 신속하고 엄중하게 처분함으로써 승차거부를 반복하는 택시기사와 운송사업자는 퇴출된다는 경각심을 주겠다”고 했다. 

    실상은 ‘승차거부’ 아닌 카카오택시 ‘콜거부’

    그러나 서울시의 발표를 두고 시민들은 실효성이 없는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카카오택시 등을 비롯한 택시 앱이 보편화하면서 최근 승차거부는 택시기사들의 승객 골라태우기로 진화한 상태다. 승차거부를 증명하려면 기사가 목적지를 물은 뒤 승객을 탑승시키지 않았다는 근거가 필요한데, '콜 거부'로는 이를 증명할 수 없다. 

    이를 악용해 일부 택시기사들은 처음부터 빈차 표시등을 켜지 않고 '카카오택시'로 들어오는 콜만 받으면서 장거리 승객만 골라태우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콜을 일부러 받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없고 승객입장에서도 직접적으로 승차거부를 당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민원신고를 하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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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icbear
    익명을 요구한 택시기사 A씨는 “요즘 누가 대놓고 승차거부를 하겠나. 빈차 표시등 꺼놓고 콜 넘기면서 장거리만 골라태우는 기사들이 대부분”이라며 “얌체짓을 하는 기사들 때문에 정직하게 운행을 하는 나 같은 기사들까지 욕을 먹고 있다”고 비난했다.

    종각역 근처에서 근무한다는 시민 B씨는 “회사 회식이 끝나고 늦은 시간에 종로에서 택시를 잡으려면 빈차 표시등을 켠 택시는 보이지도 않고 택시 앱으로 불러도 도저히 잡히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 “목적지 표시제한 어렵다...반발 심해”

    카카오택시를 서비스하는 카카오모빌리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에 등록된 택시 25만여대 가운데 96%에 이르는 24만여대의 택시가 카카오택시 앱을 이용 중이다. '카카오택시' 이외에도 점유율이 낮은 다른 택시 앱 등을 포함하면 사실상 거의 모든 택시가 모바일 앱을 통한 콜을 받고있는 셈이다. 

    시민들은 "애초부터 택시 앱에 목적지가 표시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업무상 택시를 많이 이용한다는 시민 C씨는 “택시를 타고 내릴 때 쯤 되면 택시기사가 다시 콜을 받는 데, 승객이 타고 있음에도 바로 앞에서 콜을 고르는 모습을 많이봤다”며 “앱으로 택시를 부를 때 목적지를 함께 적도록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비판했다. 

    카카오택시의 스마트호출 기능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스마트호출은 요금을 1000원 더 부담하면 배차율을 높여주는 방식인데, 스마트호출을 이용하는 승객만 골라태우는 기사들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업계 반발이 심해 규제가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에서는 카카오택시 개발단계부터 목적지 표시를 하지 말라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카카오 측이랑 협조가 잘 되지 않았다”며 “카카오는 기사들이 탈퇴를 하는 등 영업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목적지 표시제한에 반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운송 수요·공급 맞출 방안 찾아야”...“택시 앱 시정 필요”

    전문가들은 지역과 시간대별로 운송 수요와 공급을 맞출 방안을 찾아야한다고 조언했다. 손의영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지금 문제가 야간에는 개인택시가 안 나온다는 것"이라며 "사납금이나 요금을 조정해서 운송 수요를 줄이고 공급을 늘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또 “서울시는 항상 단속·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말만 하고 있는데, 단속을 강화하려면 사람을 써야 하기 때문에 돈도 많이 드는 데다 제대로 이뤄지기도 어렵다”며 “최근 택시 앱에서 목적지를 보고 승객을 골라태우는 경우가 많다. 탁상행정보다는 실효성이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 앱에 대한 시정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기정 서울연구원 교통시스템연구실 연구위원은 “택시 앱 개발단계부터 해당 사항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며 “서울시와 당국에서 먼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런 게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서울시에서 주도적으로 강제배차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며 “콜을 받고 이동하는 거리도 있기 때문에 수수료를 조정하면서 강제배차를 유도하는 방향이 현실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