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시작부터 몸싸움·입씨름 벌어져…동인천역 북광장 일대 아수라장
  • ▲ 8일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퀴어축제 주최측과 기독교 단체 등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대립하고 있다.  ⓒ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8일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퀴어축제 주최측과 기독교 단체 등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대립하고 있다. ⓒ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퀴어축제 반대한다” “물러가라”

    8일 오전 10시경 동인천역 4번 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퀴어축제 반대파와 찬성파의 대치 분위기가 확연히 느껴졌다.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시작되는 오전 11시가 다가오자 양측 간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분위기는 더 험악해졌다. 멱살을 잡거나 누군가를 주먹으로 가격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한 중년 남성은 보도블럭 위에 쓰러져 누웠다.

    ‘인천기독교총연합회’ 등 기독교와 보수 시민단체들은 ‘사랑하니까 반대합니다’ ‘내 자녀를 보호합시다’ 같은 문구가 적힌 종이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일부는 동인천역 북광장에 마련된 무대 앞에서 찬송가를 불렀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여·인천 연수구)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청에 퀴어축제를 열 수 있도록 허가해준 것이 동구에도 악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본다”면서 “어린 청소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퀴어축제 반대 집회에 참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행사장에서 만난 김모(55·인천 동구 화평동)씨는 “우리 나이대만 해도 괜찮지만 아직 애들은 성 정체성이 다 자라지도 않았는데, 이런 퀴어축제가 버젓이 열리게 되면 잘못된 성관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 “동구에서 퀴어축제가 처음 열리는데, 나쁜 전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막으러 나왔다”고 주장했다.

    반대파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퀴어축제 참가자들은 ‘새동인천 지하쇼핑센터’ 입구 앞에서 U자 모양으로 시민들에게 둘러싸인 채 옴짝달싹 못하는 형국이 됐다. 이들은 “집에 가라”, “불법 시위 물러가라”고 목청을 높이며 맞섰지만 숫적으로 불리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모씨(22·여)는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탄을 쏟아냈다.

    “벌써 시작돼야 할 행사가 아직도 이러고 있어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 타투 스티커 등으로 치장한 사람들은 행사가 정상적으로 시작되지 않자, 인상을 찌푸렸다. 상대측을 향해 혀를 내밀고 욕설을 퍼붓거나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기도 했다. 춤을 추며 침체된 분위기를 띄우려는 시도도 곳곳에 펼쳐졌다. 갈색 수염을 붙이고 월계관을 쓴 한 퀴어축제 참가자가 등장하자 주위에서 “걸크러쉬” “지저스” 등을 외치며 환호했다.

    경찰은 양측 사이에서 충돌을 막기 위해 방패를 들고 막아섰다. 아무도 퀴어축제 행사장에 오고 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불법 폭력 행위는 절대로 용인될 수 없습니다.”

    오후 12시 20분쯤 경찰이 확성기를 동원해 진압을 시도했지만 찬성파와 반대파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계속됐다. 이날 경찰은 행사장에 7개 중대 소속 840여명의 병력을 배치해 시위 진압에 나섰다.

    결국 현장 일대가 아수라장으로 변하면서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조직위)’가 마련한 부스행사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퀴어 축제 행사 관계자는 “기독교 단체들이 전날부터 나와 행사를 방해했다”면서 “부스 60개 정도를 설치하려고 했는데, 반대파에서 불법시위를 하는 바람에 한 개도 설치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양측 간의 거점싸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으로 확대됐다. 조직위는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2PM 행사’를 개최하려 했지만, 퀴어축제 반대 측이 길을 열어주지 않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오후 1시 40분쯤 송화로 2번길 인근 삼거리에 무지개 색으로 치장된 행사차량이 등장하자, 기독교 단체 회원들과 이들을 따르던 시민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축제 참가자들은 서로 팔짱을 끼며 대열을 가다듬으려고 애를 썼다.

    오후 4시 30분경 시작하기로 했던 거리 퍼레이드도 반대단체 회원들에게 차량이 둘러싸여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성적 다양성을 홍보하는 각종 공연도 무산됐다.

    추진위는 비밀리에 ‘남부광장’에서 퍼레이드를 열려고 했지만, 똑같이 반대단체들에게 행사차량이 둘러싸여서 움직일 수 없었다. 당초 오후 6시경 퀴어축제가 끝날 예정이지만, 찬성파와 반대파가 서로 “집에 가라”고 외치면서 늦은 시각까지 관련 소동이 이어졌다.

    퀴어축제 조직위가 밝힌 예상 참여인원은 약 2,000명이었다. 인천기독교총연합회가 중부경찰서에 집회 신고를 하면서 밝힌 참여 인원은 1,000명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퀴어축제 반대 측 인원이 3~4배 더 많아 보였다. 곳곳에 보이는 현수막도 대부분 ‘동성애자 반대’라고 적힌 것들이었다.

    앞서 조직위는 지난 2일 인천중부경찰서에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퀴어축제를 개최한다는 집회 신고서를 제출했고, 인천기독교총연합회는 지난 5일 북광장 인근에서 퀴어축제 반대집회를 하겠다고 집회 신고를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