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교육 개혁의 과제들③- 목표 없이 관념어 '잔치' 된 우리 교육법
  • 한일 교육기본법의 비교를 중심으로 본 교육 목적과 목표의 모호성

    한때 잃어버린 20년이라느니 하며 침체에 빠졌던 일본 경제가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여 일자리에서도 완전고용을 구가하고 있다. 반면, 지난 30여 년의 한국경제를 돌아보면, 그 이전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대기업에 대한 반기업 정서가 심화하는 가운데, 한때 세계적으로 부러움을 샀던 기업가 정신은 고갈되고, 청년 실업의 만연 등 쇠퇴의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다소 결론을 내리기에는 비약이 있겠지만 나는 이런 역전된 분위기의 밑바탕에 한일 양국이 공교육에 대해 취하고 있는 관점의 차이가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공교육은 이전의 교육법을 폐지하고 1997. 12. 13일 교육기본법을 제정하면서 방향을 틀었다. 이때 원래의 교육법에서 강조되었던 ‘근대국가’의 이미지가 교육기본법에서는 사라졌다. 소위 ‘민주화’라는 것이 국가를 부정하자는 것인지, 이렇게 된 것이 법 제정 시에 의도된 것인지 또는 실수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한국이 근대국가로서 추구하고자 하는 자유 민주국가, 공화정의 이상을 공교육이 지지하는 것은 당연할 텐데, 어쩐 일인지 교육기본법의 내용을 보면, 지향하고자 하는 국가상이 무엇이고 이를 위해 어떤 시민이 되어야 하는지의 개념은 사라지고, 교육이라는 ‘권리’를 어떤 식으로 분배할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 교육기본법의 중심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를 도외시하는 현상이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오히려 한국 특유의 현상으로 보인다.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이냐를 담은 일본의 교육기본법

    이런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교육기본법을 비교해보았다. 한국에서와같이 일본에도 교육기본법이 있는데, 아마도 법 제정 시 일본의 법령 명칭을 참고한 결과인 듯 하다. 같은 명칭의 법률임에도 그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의 교육기본법은 교육을 통해서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이냐에 관한 내용이다. 

    우선 교육기본법의 법의 제정 목적(제1조)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법 제정의 목적을 보면, 한국은 “이 법은 교육에 관한 국민의 권리·의무 및 국가·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정하고 교육제도와 그 운영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여, 교육을 당사자 간의 권리 의무를 정하는 일종의 사회적 계약 관점을 취한 데 비해, 일본은 국가발전과 국민의 복지향상이라는 이중 목적의 조화를 상정하되, 무게 중심은 국가에 두어 공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본의 교육기본법은, 법 제정의 목적을 서술하는 전문(前文)에서 “우리 일본 국민은 꾸준한 노력으로 쌓아 온 민주적이고 문화적인 국가를 더욱 발전시킴과 더불어 세계 평화와 인류 복지 향상에 공헌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고 진리와 정의를 희구하고 공공의 정신을 존중하는 풍부한 인간성과 창조성을 갖춘 인간의 육성을 기함과 동시에, 전통을 계승하고 새로운 문화 창조를 지향하는 교육을 추진한다. 

    여기에 우리는 일본 헌법의 정신에 따라 나라의 미래를 개척하는 교육의 기본을 확립하고, 그 진흥을 위하여 이 법을 제정한다”라며 민주적인 근대 선진국가의 건설을 지향하며, 특히 헌법과의 일치성을 강조한다. 이렇게 일본이 교육을 통해 헌법이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근대국가 완성을 추구한다는 법 제정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교육과 관련된 국민의 권리 의무, 공공단체의 책임을 정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결국 한국 공교육은 국가발전의 방향이나 헌법 정신과는 별 관련 없이 교육 당사자 간의 권리와 의무를 정하는 차원을 중요하게 본 것이다. 

  • 교육 목표가 빠져 있는 한국의 교육기본법

    이런 차이는 교육 목적과 목표를 규정한 부분에서부터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한국의 교육기본법에는 교육 목적과 목표가 없다. 교육의 목적과 목표는 공교육에 대한 권리, 의무보다 차원이 다른 중요한 조항인데도, 한국의 교육기본법에서는 교육의 목적과 목표를 두루뭉술하게 교육이념으로 축약하여 제시한다. 

    (한국 교육기본법의 제2조 교육이념)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에 비해 일본의 교육기본법에는 다음과 같이 교육 목적과 교육 목표로 구체화 되어 있다. 

    (일본 교육기본법의 제1장, 교육 목적과 이념)
    제1조 교육 목적
    교육은 인격의 완성을 목표로 평화롭고 민주적인 국가 및 사회의 형성자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춘, 심신이 건강한 국민의 육성을 기하도록 이루어져야 한다. 

    제2조 교육 목표
    교육은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학문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다음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이루어져야 한다. 
    1. 폭넓은 지식과 교양을 익히고 진리를 요구하는 태도를 기르고, 풍부한 정조(情操)(註, 정서, 다양한 교양과 미학적 소양을 말함)와 도덕심을 배양하는 동시에 건강한 신체를 기르는 것
    2.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 능력을 높이고 창조성을 함양시키고, 자주와 자율의 정신을 기르는 것과 동시에, 직업 및 생활과의 관련을 중시하고 근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
    3. 정의와 책임, 남녀평등, 자타의 경애와 협력을 중시하고, 공공의 정신에 따라 주체적으로 사회의 형성에 참여하고 그 발전에 기여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
    4. 생명을 존중하고 자연을 소중히 하고 환경 보전에 기여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
    5.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고 그들을 키워온 우리나라와 향토를 사랑하고, 타국을 존중하고 국제 사회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

    외관상의 차이를 보면, 교육의 목적과 목표를 기술하는 데 있어서, 양적으로는 일본이 약 7배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내용 상으로는 한국의 교육기본법에는 교육 목표가 빠져 있다. 대신 한국 교육기본법의 교육이념 조항에 몇 개의 키워드들 - 홍익인간, 인격도야, 자주적 생활능력, 민주시민, 인간다운 삶, 인류공영 – 로 교육 목적을 제시하고 있는데, 너무 함축된 단어의 나열이어서 구체적으로 한국의 공교육이 무엇을 목표로 하고자 하는 것인지 모호하다. 

    특히 한국의 교육계에 금과옥조로 따라다니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인 것을 알겠지만, 이를 통해 한국의 공교육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헌법 정신을 어떻게 계승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홍익인간은 환웅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하여 세상에 보내졌다는 것인데, 나름대로 자신의 직업을 갖고 분업, 협동하며 살아야 할 근대 시민을 키우는 목적을 가져야 할 공교육의 이념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모든 시민을 인간사회를 이롭게 하는 지도자로 키운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은 지나치게 이상론적이어서 실천적이지 않으며, 우리 헌법이 홍익인간의 이념을 토대로 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는데, 교육기본법의 출발을 홍익인간 이념에서부터 시작한다면 공교육은 헌법 테두리 밖에 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너무 추상적인 한국의 교육이념

    일본은 교육기본법에는 관념적인 단어를 넣지 않았다. 대신 교육 목표만 보아도 교육을 통해 어떤 근대국가를 만들고자 하며, 어떤 근대 시민으로 키우려는지 이미지가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특히 열심히 진리와 교양을 추구해야 한다는 교육의 수월성, 직업 및 생활과의 관련을 중시하고 근로를 존중하는 독립된 직업인의 정신, 공공의 정신 등 자유국가 시민으로서 시장경제를 영위하는 데 요구되는 정의 규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의 교육기본법에는 “열심히 연마하여 독립된 개인으로서 직업을 갖고, 사회의 일원이 되어 타인들과 분업과 협업을 할 때는 시장에서 요구되는 정의의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근대 시민으로서의 지향점이 빠져 있다. 간략한 이념만으로도 교육의 목적과 목표가 명확하게 드러난다면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기본법의 교육이념은 너무 축약되어 있고 추상적이라 공교육의 당사자마다 해석의 차이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위태롭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한국의 공교육은 교육부 장관만 바뀌어도 공교육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예로서 미국과 한국 교육부의 사명과 비전을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비교해 보았다. 

    미국 연방정부의 교육청은 자신의 사명을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우리의 사명은, 교육의 수월성(秀越性)을 촉진하고 평등한 교육기회를 보장함으로써 학생으로 하여금 성취를 촉진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간략한 사명문에서 미국의 교육청은 교육의 수월성, 평등한 교육기회, 글로벌 경쟁력을 추구한다는 등의 키워드를 볼 수 있다. 

    한편 한국 교육부의 홈페이지를 보면, 예전에는 있었던 교육부의 사명은 찾을 수 없고, 대신 교육부 장관의 인사말을 통해 현재 교육부의 사명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우리는 무한 경쟁교육에서 벗어나 공존과 협력교육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제는 양극화와 기회불평등으로 무너진 ‘교육의 희망 사다리’를 다시 세워야 할 때입니다. 저와 교육부 직원들은 교육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국민의 염원을 담아 새로운 대한민국의 새로운 교육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누구에게나 공평한 학습사회를 구현하고,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며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투철한 직업 의식을 가르치지 않는 공교육

    여기서 볼 수 있는 키워드는 양극화, 희망 사다리, 공평한 학습사회, 아이들의 행복 등이다. 교육부 장관의 인사말도 교육기본법에서처럼 교육을 통해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비전은 없고 교육 당사자의 ‘권리’를 찾아 주겠다는 취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교육부의 주된 역할은 마치 대학입시 제도를 미세 조정하는 일인 듯 장관이 바뀔 때마다 몇 년 후에 시행될 입시제도를 대단한 일인 양 개편하는 행사를 치른다. 이런 현상도 높은 차원에서의 교육 목적과 목표가 없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공존과 협력교육’, ‘희망 사다리’,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같은 표현이 헌법이나 교육기본법의 어느 부분과 연결되는지도 잘 모르겠다. 

    한국 공교육은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또 개인의 자아를 형성하는 나름의 직업을 갖기 위해 ‘열심히’ 연마하자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희망 사다리를 타고 높이 오를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인데, 이는 '계급투쟁'을 연상시킨다. 한국 공교육의 실질적인 목표는 어쩌면 '적당히 놀고, 절대로 특출한 성취는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한국의 공교육은 표류 중이다. 

    이래서는 세월이 더 가도 한국에서 노벨상 같은 성취가 나올 가능성은 없을 것 같고, 우리가 추구하던 근대국가의 완성은 스스로 포기하고 자폭하자는 것이 아닐까 걱정스럽다. 일이란 원래 고되고 어려운 것이지만, 직업을 갖고 자신의 일에 프로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그 개인의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다. 학생에게 투철한 직업의식을 갖게 하는 것 하나만 제대로 해도 공교육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를 달성하는 것일 텐데, 한국의 공교육에는 이런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다 잘 살게 해 주겠다는 것은 자라나는 후세를 오염시키는 마약이나 다름 없다. 

    인성교육진흥법의 문제

    교육의 목적과 목표가 없는 교육기본법이 됨으로써 한국의 공교육에는 교육을 통해 어떤 국가를 지향할 것인지의 국가 개념이 사라졌다. 교육에 관한 최상위 법인 교육법을 일거에 없애고 새로 교육기본법을 제정한 절차도 문제다. 새로움을 추구하되 늘 전통을 존중하면서 지켜야 할 가치는 보전해야 하는데, 구 중앙청 건물을 헐어버리듯이 그냥 폐기했다. 

    백년대계라는 국가의 공교육을 규정하는 최상위 법을 새로 제정하면서 당연히 헌법 정신에 맞는 법률이 되도록 각별히 노력했어야 하는데, 그런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교육 목적과 목표가 모호한 법률을 만들어 놓고, 그때그때 주무 장관이 정치적 견해에 따라 혹은 여론의 관심 영역에 따라 교육의 틀을 잡아나가면 되는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런 우려 중 하나가 ‘인성교육을 의무로 규정한 세계 최초의 법’이라는 인성교육진흥법이다. 공교육에서 ‘인성’이 중요하다는 분위기가 일더니 결국은 학생의 인성을 키운다는 목적으로 인성교육법이 제정되었다. 인성교육을 의무로 규정한 일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는데, 인성교육을 한국 공교육의 의무 영역으로 포함한 것이다. 교육의 목적과 목표가 모호하고, 자유주의 근대국가를 만들려는 헌법 정신이 실종된 채로 이루어지는 인성교육이란 또다시 해석의 문제를 낳아 결과적으로는 조선 시대의 소학이나 명심보감 같은 인성이 강조될 것 같은 걱정이 생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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