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지사 첫 간담회서 일자리 관련 '상향식 패러다임' 강조... '떠넘기기' 비판도
  •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열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DB
    ▲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열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DB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민선 7기 시·도지사 17명과 '일자리'를 주제로 첫 간담회를 가졌다. 지방선거 압승으로 다수가 민주당인 지방정부와 함께 좀처럼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경제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기존과 달리 '상향식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면서 일자리 과제를 지역에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또 같은 자리에서 공개한 세부사업에 남북경제협력·사회적 경제 등 정치색이 짙은 내용도 적지 않아, '일자리'를 핑계로 국회 대신 지방정부와 여러 정책을 추진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뒤따른다.

    ◆ 지방선거 압승후 첫 시·도지사 간담회… 소통 강조

    문재인 대통령은 30일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열린 민선 7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소통이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며 "시·도지사들은 대한민국을 함께 발전시켜나갈 국정의 동반자"라고 말했다.

    이어 "시·도지사들도 어떤 방식의 회의든 대통령과 간담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 요청해달라"며 "민선 7기 시·도지사 첫 간담회 주제는 일자리"라고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이 주재한 시도지사 간담회는 취임 이후 세 번째다. 하지만 이번 시도지사 간담회에 참석하는 참석자들의 면면은 크게 변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하면서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대거 시도지사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17개 시도지사 중 민주당 소속이 아닌 인물은 원희룡 제주도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뿐이다.

    이 때문인지 문 대통령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소통도 계속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각 지자체 발전과 대한민국 발전이 따로 갈 수 없다"며 "함께 모이는 회의와 화상 회의를 번갈아 하는 것도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또한 우리 정치의 가장 중요 과제 중 하나가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비록 지방 분권 개헌은 무산됐지만, 시도지사 간담회를 보다 공식화하고 정례화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소통과 협력을 강화해나갔으면 한다"고 했다.

    ◆ "일자리 사업 패러다임 전환해야"

    이처럼 기분 좋게 시작한 시·도지사 간담회의 주제는 '일자리'였다. 민형배 청와대 자치발전비서관은 전날 사전 브리핑에서 "시도지사간담회에 있어 그간 여러 평가가 있었다"며 "적절하다는 평가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이지 못하다는 자기성찰 비판도 있어, 분기별로 1회씩 4번 개최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최될 때마다 그때그때 의제를 정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일자리로 정했다"며 "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국정 현안에 대해서 직접 논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도 이날 "최근 고용지표의 하락으로 국민 걱정이 크다"며 "지역경제도 구조조정 여파로 어려운 곳 많다"고 했다.

    이어 "일자리 창출이야말로 정부 지자체가 맞닥뜨린 최대 현안"이라며 "내년도 예산안도, 일자리에 초점이 모여 있다. 일자리 예산이 실효를 거두려면 정부와 지자체 간 강력한 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같은 자리에서 "그러나 협업은 지역 필요 여건에 맞게 추진돼야 한다"며 "정부가 반성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정부가 세부적 사안까지 기획해서 지침을 내리고 지자체가 그 틀에 맞추어서 재정을 부담하는 하향식·획일적 방안으로는 좋은 결실을 보는데 한계가 있다"며 "일자리 사업을 지역이 기획하고 주도하고 정부는 평가 지원하는 상향식, 소통적 방안으로 전환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또 "지자체가 일자리 사업 재원에 더 재량권을 가져야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업이 가능하다"며 "지역 일자리 창출을 위해 내년도 예산안에 대폭 반영돼 있는 지역 밀착형 생활 SOC 사업도 각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해달라"고도 당부했다.

    ◆ 일자리 문제 지역에 떠넘기기?

    이같은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부진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정부에 협조를 당부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 5월 10일 제1호 대통령 업무지시로 '일자리 위원회 설치 및 운영방안'이라는 제목의 서류에 서명할 정도로 일자리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일자리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지난해 2월을 기준으로 취업자 수 증가 폭이 크게 감소했고, 이에 지난 6월 26일에는 일자리 수석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진을 개편하는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자리는 최근까지 증가 폭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 일자리 문제를 둘러싼 국회와의 협치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비스발전기본법 등의 8월 국회 통과도 사실상 불발됐다. 이에 '같은 편'이 다수 포진한 지방정부와의 협업을 돌파구로 봤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자칫 정부가 안고 있는 일자리 문제의 고민을 지역에 떠넘기려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청와대는 그간 일자리 문제를 '0순위'에 두고 가장 먼저, 그리고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일자리 상황판을 집무실에 설치, 실시간으로 직접 일자리를 챙기겠다고 천명했다.

    정태호 일자리 수석 역시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누구든 만나 동맥경화를 뚫는 현장형 수석이 되겠다"며 "내 이름을 걸고 내년까지 일자리 10만 개를 만들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일자리 문제를 '지역이 주도해야 하는 문제'로 규정한 것이다.

    ◆ 더 '갸우뚱'한 세부주제

    더군다나 이날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나온 세부주제를 보면 지역 차원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정책들이 적지 않다. 이날 '일자리 선언 의제별 추진계획'을 보면 세부주제는 ▲지역 주도 혁신성장 ▲남북협력사업 ▲지역밀착형 생활 SOC ▲소상공인·자영업 지원 ▲농산어촌 활력 증진 ▲사회적 경제 ▲노사정 협력 이상 7가지였다.

    이중 남북협력사업 등은 비핵화 논의에 따라 상황이 유동적인 데다, 기본적으로 국제적인 대북제재 문제가 있어 지역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하기가 쉽지 않은 내용이다. 정부는 통일경제특구 조성을 통한 생산 유발 및 일자리 창출 유도를 염두에 두고 있으나 의원 발의 통일경제 특구법 제정안 6건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날 논의된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대책 역시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대책 사업 및 제도개선사항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내용이 담겼다. 온누리 상품권 발행 확대, 수수료 0%대 '제로페이'의 지자체 공동활용 및 활성화 협조를 당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국회 대신 지방정부를 통해 국정운영을 끌고 가려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국 대치 상황이 길어지는 야당 대신 '같은 편'이 다수 포진한 지방정부와 연계, 국정 운영에 속도를 붙이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3일 정례 브리핑에서 협치 내각 관련 질문을 받고는 "큰 흐름으로 봐서는 지금은 어려워진 게 아닌가 싶다"며 "상당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달 23일 협치 내각을 공식 제안한 지 한 달 만이다.

    ◆ 野 "중장기 성장 도모·국민 안전 확보 위한 SOC 예산은 오히려 줄어"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문재인 정부가 SOC 예산을 줄이면서 지역밀착형 생활 SOC에 집중하는 것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는 모양새다.

    자유한국당 함진규 정책위의장은 "재정을 푼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짚어봐야 할 대목"이라며 "일자리 예산 54조 원을 투입했음에도 고용과 분배지표가 계속 나빠지고 있는 게 그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함 정책위의장은 "미래 성장동력 강화를 위한 R&D 투자는 정체되고, 빠르게 노후화되고 있는 항만, 공항, 철도, 도로를 보강해 중장기 성장을 도모하고 국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SOC 예산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며 "내일을 위한 투자는 사라지고 있는데, 성장 잠재력도 갖추지 못하고 이대로 주저앉는 것은 아닌 심히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날 문재인 정부는 내년에 지역밀착형 생활 SOC에 8.7조 원 투자 계획을 밝히면서 문화·체육시설 등 편의시설 확충과 지역관광 인프라 확충 , 도시재생·어촌뉴딜 등 생활여건 개선, 스마트 영농, 복지시설 개선, 미세먼지 대응 등에 각각 할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