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탈북민 수용할 수 있다” 탈북 기자 칼럼… "北에 대한 환상" "전형적 이중성” 비판
  • ▲ 지난 5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걸어나오고 있다. ⓒ 뉴시스
    ▲ 지난 5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걸어나오고 있다. ⓒ 뉴시스

    “북한이 국제사회 등장과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해 탈북민들에 대한 처벌을 완화할 수 있다... 베트남도 1980년대 개혁개방 정책을 선포하고 외국 투자유치를 위해 ‘보트피플’을 받아들여 서구의 인정을 받았다.”

    한 탈북민 기자의 칼럼이 탈북민 사회에 격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동아일보에서 북한 이슈를 다루고 있는 탈북민 주성하 기자의 칼럼을 둘러싼 논란이다. 주 기자는 최근 '남북하나재단’의 정기간행물인 ‘동포사랑’ 8월호에 <한반도 정세 급변과 탈북민 사회>란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주 씨는 기고글에서 “6월 12일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이후 미북간,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시대가 열리는 등 한반도와 주변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며 “북한도 고립을 벗고 정상국가로 나오겠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시기에 분단의 희생양인 탈북민들은 누구보다 그 변화의 영향을 밀접하게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과 한국이 현재 북한의 기만술에 속고 있다’고 보는 일부 탈북민들의 보수적인 시각을 우려하며 “냉혹한 국제 정치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주 씨는 자신의 글에서  “3억 명의 이해관계를 대변한 미국 대통령과 5000만의 이해관계를 대변한 한국 대통령에 비해 탈북민 3만 명은 아주 작은 집단일 뿐”이라며 “탈북민의 이해관계와 미국과 한국의 이해관계가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탈북민들이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불과 한 세기 전 미국이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를 인정하는 내용의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예로 들면서 “지금의 탈북민 사회가 시대 흐름을 바꿀 힘이 없다는 현실을 빨리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경협 활성화되면 양쪽 인맥 가진 탈북민들 유리"

    그는 “자신의 국제정세 판단이 맞는지 틀렸는지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지만 현재로서 미국은 물론 한국과 중국, 러시아도 북한과 손잡는 것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부합된다고 보고 있다”면서 ‘남북평화공존’이라는 한반도 대격변의 시기에 탈북민들에게도 분명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주 씨는 공산국가로서 개혁개방에 성공한 베트남의 경제모델을 예로 들면서 “베트남이 외국 투자를 위한 서구의 인정을 받기 위해 적대적인 보트피플을 받아들인 것처럼 북한도 외자 유치와 경제개발을 위해 탈북민들에 대한 처벌을 완화하거나 한국기업에 취업한 탈북 청년들을 수용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북한이 핵 폐기를 결심한 것은 경제 발전을 위함인데, 탈북자 처형 등 인권문제가 외국의 단골 이슈로 부각 돼서 투자가 막히면 핵까지 버린 의미가 없다”면서 ‘외국 투자를 받으려면 바뀌었음을 보여달라’는 외부의 요구에 직면하면 북한도 탈북민을 받아들여 ‘우리가 이만큼 바뀌었다’고 과시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주 씨는 “남북경협이 활성화되면 남북 사이에서 인맥과 경험을 가진 탈북민이 유리하다”면서 “역사를 바꾸는 거대한 쓰나미가 한반도에 몰려오는 지금, 이 흐름에 올라타 잘 활용하는 사람은 성공할 것이고, 이 흐름에 끝까지 맞서는 사람은 격류에 쓸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탈북민들 "김정은에 대한 환상에서 나온 글" 비판 

    하지만 주 씨의 이러한 주장이 ‘김정은에 대한 잘못된 환상에서 비롯되었다’는 탈북민들의 비판도 만만치 않다. ‘까마귀가 봉황 되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주 기자의 글을 두고 탈북민들 사이에서는 “바람 따라 노 저으라는 말이냐, 낭떠러지로 끌고 가는 바람이라면 어쩔 것인가?”, “탈북민에게 비겁한 문 정부 줄서기 독려하지 말라” 등의 비판이 나왔다. 

    “11월에 있을 미국의 중간선거가 끝나면 김정은은 용도폐기 된다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정세판단”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이중성과 나약함”이라고 비평하는 탈북민도 있다.

    주 기자의 입장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일제가 만주와 대륙을 침략하고 동남아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하는 역사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며 조선 민족이 현실을 인정하고 황국 시민이 돼서 일본에 충성하자고 독려했던 구한말 친일 지식인들의 기회주의적 행태”라는 말까지 했다. 북한의 과거 행태를 봤을 때 “남북관계와 미북 관계의 전망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탄핵과 대선을 겪으면서 적지 않은 탈북민들이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등 국내 탈북사회가 좌우로 분열되면서  ‘남북평화공존’과 통일문제, 그리고 탈북민 사회의 향후 전망에 대한 의견도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