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화투 소재 그림은 조영남 아이디어... 송씨 등은 보조작가 불과"
  • '그림 대작(代作)' 논란에 휘말려 사기 혐의로 기소된 가수 겸 화가 조영남(73)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부장판사 이수영)는 지난 17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조영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또한 돈을 받고 '대작 그림'을 판 혐의로 집행유예 1년을 받았던 매니저 장OO씨에게도 동일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현대미술에서 작가가 조수나 전문 인력을 두고 미술품 제작을 보조하도록 하는 일은 널리 통용되고 있는 추세"라며 "송기창씨 등은 조영남의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한 기술적 보조자일 뿐 독립적인 작가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조영남은 대작 화가인 송기창씨와 오OO씨를 만나기 전부터 계속 화투 그림을 그려왔고 여러 작품을 전시해왔습니다. 화투를 소재로 한 여러 그림은 모두 조영남의 고유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작품들입니다. 송씨와 오씨는 조영남으로부터 보수를 받고 조영남의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한 기술적 보조자에 불과합니다. (거론된 작품들을 놓고 봤을 때) 이들이 고유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거나 예술적 관념을 지닌 전문적인 작가라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재판부는 "또한 구매자들은 다양한 이유로 작품을 구매하기 때문에 '조영남이 보조 작가를 활용해 그림을 그린 사실을 알았다면 작품을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면서 "더욱이 현대 미술 작품의 제작 관행에 비춰봤을 때 작가가 모든 구매자에게 보조 작가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고지할 의무는 없는 만큼, 이를 구매자들을 속인 범죄(기망) 행위로 간주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일부 구매자 중에는 조영남이 직접 그리지 않았다고 해도 '대작'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진술한 분도 계셨습니다. 이는 구매 동기가 반드시 친작 여부에 달려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조영남은 방송에서 이 사실을 고지한 적도 있습니다. 따라서 구매자들이 사전에 조영남이 대작 화가를 동원해 그림을 그린 사실을 알았다면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입니다."

    1심 재판부 "조영남 그림대작은 사기"

    앞서 조영남은 2011년 9월부터 2015년 1월 중순까지 송기창 등 '대작화가' 2명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지시하고 자신이 가벼운 덧칠 작업을 가미해 총 17명에게 21점을 판매한 혐의(사기)로 기소됐다.

    조영남의 소속사 대표이자 매니저 장OO씨도 2015년 9월부터 지난해 4월 초까지 총 3명에게 '대작그림' 5점을 판매한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조영남과 장씨가 대작그림을 판매해 거둔 수익은 각각 1억 5,350만원과 2,68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조영남은 대작화가들로부터 1점당 10만원 꼴로 수백점의 그림들을 사들인 뒤 갤러리에서 높은 가격으로 판매해왔다는 게 검찰의 주장.

    두 사람을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긴 검찰은 지난해 8월 열린 결심 공판에서 각각 징역 1년 6월과 징역 6월형을 구형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는 지난해 10월 18일 조영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동종 혐의로 재판을 받은 매니저 장OO씨에게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대작 화가로 조영남의 그림 제작에 참여한 두 사람(송기창·오OO)의 '숙련도'나 '관여 정도' 등을 볼 때 단순 보조작가가 아닌 독립된 작가로 봐야 한다"며 조영남의 그림이 송기창 등의 도움을 받은 뒤로 훨씬 풍부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인 점과, 대작화가들이 독립된 공간에서 능동적인 그림 작업을 해온 점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아무리 조영남이 아이디어나 소재를 제공했다하더라도 이를 표현하는 과정을 다른 사람이 담당했다면, 이런 작품을 자신의 창작물로 판매하는 것을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간주하기는 힘듭니다."

    재판부는 "그런 면에서 구매자들의 '구매 여부'나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작화가의 관여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조영남에게 피해자(미술품 구매자)들을 속일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에 경의"

    한편 조영남은 18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너무나 당연한 판결이 나온 것"이라며 "현대미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려주신 항소심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재판에선 현대미술에 대한 탁월한 식견으로 강해식 변론을 펼친 변호인의 공이 컸다"며 '조영남이 유죄라면 앤디 워홀도 사기죄로 처벌받아야 한다'는 변호인의 논리가 주효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