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쉬 차간티 감독 "구글 직원보다 감독이 더 좋아"
  • "일단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구글의 맛좋은 음식을 이젠 먹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쉽습니다. 이젠 구글 직원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감독이 더 좋아요. 저에겐 새로운 도전이고,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영화 감독은 제 꿈이었으니까요.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전 영화 감독을 택할 겁니다."

    17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서치(Searching)' 라이브 컨퍼런스에서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구글에서 일하는 것과 감독으로 일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좋으냐'는 MC 류시현의 질문에 "구글의 음식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점은 아쉽지만,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영화 감독을 택할 것"이라며 구글 직원이었을 때보다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지금이 더 좋다고 말했다.

    이날 스카이프(skype)를 통해 서울과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하는 이원 생중계로 진행된 기자회견에 주연 배우 존 조와 함께 참석한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구글에서 일할 당시 윈도우 창이나 스크린을 통해 사람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됐고, 이같은 작업을 장편 영화로도 표현해보고 싶었다"며 소셜미디어와 모바일을 소재로 한 영화 '서치'를 만들게 된 배경을 한국의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데뷔 전부터 가장 현대적인 기술력을 활용, 인간적인 감성을 담아내는 능숙한 연출력을 과시한 바 있다. 인도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아낸 아니쉬 차간티의 '구글 글래스 홍보 영상'은 단시간에 네티즌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단 하루 만에 100만 뷰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를 계기로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실제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에 스카우트 되는 이례적인 행운까지 거머쥐었다.

    그가 속했던 팀은 구글에서 개발한 상품들이 어떻게 하면 영화 제작 도구로 이용될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팀이었다. 2년간 구글 광고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업무를 진행해온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당시 영화 제작 전반에 필요한 기술적·운영적 흐름을 모두 익힌 것으로 전해졌다.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러닝타임 내내 일상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SNS나 모바일 기기로만 화면 구성이 이뤄지는 영화 '서치'를 기획하게 됐다고.
  • "우리는 매일 같이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면서 살고 있어요. 우리에겐 아주 친숙한 존재들이죠. 그런 주변 기기들을 활용해 스토리 텔링을 짜고 싶었어요. 구글이 뭔지, 윈도우즈 화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관객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거든요. 이렇게 관객들이 친숙하게 여기는 소재들을 갖고 영화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실제로 그는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아빠(존 조 분)가 단서를 찾는 모든 과정을 OS 운영체제와 SNS 화면으로만 구성하는 모험을 시도했다. 자칫하면 답답하거나 지루해 보일 수 있는 도전이었지만,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PC와 모바일 기술을 기반으로 예술적 상상력을 결합해 놀라운 완성도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전에도 PC화면을 스크린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는 있어 왔습니다. 드라마부터 단편 영화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는데요. 저는 그 중에서 잘된 부분은 차용을 하고, 여기에 저희들만의 것들을 집어넣으려 노력했어요. 영화를 만들어가는 방식에서 저희 영화가 다른 영화들보다 특화된 점들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감정적인 부분과 스릴러적인 요소들을 접목시키는 데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이번 작품에선 전통적인 기술로 영화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예컨대 지금이 '낮'이라는 시간 관념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며 "이 때문에 시계를 보여준다든가 아침의 풍광을 담은 사진을 보여주는 방식 등으로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들을 십분 활용했다"고 말했다.

    영화 '서치'에는 유독 한국계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가장 먼저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그녀의 노트북에서 단서를 모으는 아빠 '데이빗' 역은 존 조가 맡아 열연을 펼쳤다. '데이빗'의 동생이자 사라진 '마고'의 다정한 삼촌 '피터' 역 또한 한국계 미국인 배우 조셉 리가 맡았다.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홀연히 사라져버린 '마고' 역은 미셸 라. 사랑하는 가족들에게서 일찍 떠나버린 엄마 '파멜라' 역은 사라 손이 맡아 '서치 패밀리'를 완성시켰다.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애당초 존 조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기획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코리안 가족이 탄생했다"며 "저 또한 실리콘 밸리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저를 포함해)가족들이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 가정이나 친구들이 많아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그러나 정작 존 조는 "영화를 같이 해보자는 아니쉬 차간티 감독의 제안을 처음엔 거절했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처음엔 만나지 않고 전화로만 얘기했어요. 각본이나 스토리도 좋았지만 웹캠이나 컴퓨터 스크린으로만 연기를 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계속 의문이 생겼어요. 그래서 처음엔 거절했죠. 하지만 감독님께서 계속 오퍼를 주셨고 나중에 만나서 얘기해보니 의구심을 가졌던 부분들이 다 실현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유튜브 비디오가 아닌 장편 영화로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 하게 됐습니다."

    존 조는 "촬영 현장 자체가 일반적인 영화와 많이 달랐기 때문에 처음엔 어느 선까지 연기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며 "따라서 이번 영화의 경우엔 제 스스로 새로운 영화적 언어와 개념을 적립하면서 연기를 해야했다"고 밝혔다.

    "어려웠고 모든 게 다 독특했어요. 보통은 다른 배우들과 얼굴을 마주보면서 연기에 대한 반응을 보고 의논하고 또 연기를 하는데요. 이번 같은 경우엔 내가 정말 잘하고 있나 하는 의구심이 계속 들었고요. 목소리도 인이어로만 듣고 연기를 하는 게 힘들었죠.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어요."
     
    존 조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우리 영화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는 소리를 들으니 정말 기분이 좋다"면서 "할리우드 영화에서 출연진 모두가 한국계 미국인으로 구성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게다가 사랑스럽고 화목하게 가족 전체가 묘사됐기 때문에 제 스스로도 아주 만족스럽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는데요. 해외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한국계 미국인 가정을 보는, 그런 광경을 바라보는 자체가 저에겐 너무나 새로웠습니다. '서치'에 등장하는 가족은 정말 서로를 사랑하는 그런 모습들로 나와요. 이러한 한국계 미국인의 가족상을 보여줬다는 게 저에겐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할리우드 스타 존 조가 열연을 펼친 영화 '서치'는 한 가족의 삶과 실종, 그리고 이를 추리해 나가는 모든 과정을 OS 운영체제와 모바일, CCTV 화면으로만 구성한 영화다. 올해 초 개최된 제34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서치'는 만장일치로 '관객상 - BEST OF NEXT'를 수상,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지난 5월 열린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서치'는 네 차례 상영된 모든 회차가 매진되는 등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바 있다.

    8월 29일 개봉.

    [사진 및 자료 제공 = 더홀릭컴퍼니 / 소니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