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플라주 따라하기' 올해도 실패...시민들 “여기가 해변이에요?”
  • ▲ 2018 서울시 문화로 바캉스 축제를 하루 앞둔 9일 중구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관계자들이 인공해변을 만들고 있다. ⓒ 뉴시스
    ▲ 2018 서울시 문화로 바캉스 축제를 하루 앞둔 9일 중구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관계자들이 인공해변을 만들고 있다. ⓒ 뉴시스

    올 여름 피서철에도 어김없이 서울시내 곳곳에서 시민을 위한 바캉스 축제가 열렸다. 특히 이번에는 서울시가 시청광장에 조성한 '인공해변'이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서울시는 시청광장 한 켠에 백사장과 야자수 나무, 썬배드를 갖춘 인공해변을 조성한다며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대부분의 언론은 이를 비중있게 홍보했다. '주말 서울광장에 인공해변 조성'을 주제로 한 홍보성 기사만 수십 건에 달했다.

    서울시는 이번 이벤트를 소개하면서, 프랑스 센 강변의 여름철 관광명소인 '파리 플라주(Paris Plage)'를 벤치마킹했다고 강조했다. 파리 플라주는 여름 휴가철 센 강변에 파리시가 조성한 인공해변 이벤트다. 서울시의 '파리 플라주 따라하기'는 지난해에도 있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이맘때 한강 잠수교에 810톤의 모래를 뿌려 인공 백사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개장 하루를 앞두고 전격 취소했다. 잠수교 백사장 이벤트는, 교량 통제에 따른 시민 교통 불편 및 혼잡 심화, 호우 시 안전 대책 부실, 이벤트를 기획한 민간기업 특혜 의혹 등이 논란이 됐다. 뉴데일리는 당시 잠수교 인공 백사장 프로그램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 시민단체가 우기에 잠수교에 모래 깔고 입장료 받아?
    ☞ 여름마다 잠기는 잠수교에 '사상누각' 백사장이라니...
    ☞ ‘잠수교 백사장’ 없던 일로…시민단체 말 한마디에 오락가락한 서울시

    서울시의 서울광장 인공해변은 지난해와 비교할 때, 장소를 변경하고,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시민의 편의와 만족도 보다는 전시성 이벤트에 가까웠다는 점에서는 지난해와 다르지 않았다. 

    11일 저녁 기자가 직접 현장을 둘러본 결과, 서울광장 인공 해변은 파리 시민들의 쉼터가 된 '파리 플라주'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시원한 강변에서 여름을 즐길 수 있는 센 강변의 인공해변과 달리 서울광장 인공해변 주변에서는 청량감을 느낄 수 없었다. 인공해변 주변에 설치된 썬배드를 이용하는 시민들조차 이곳이 '서울시가 만든 인공 해변'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 10일 밤 서울 중구 시청광장에서 열린 '서울 문화로 바캉스' 행사를 찾은 시민들이 텐트안에서 문화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 뉴시스
    ▲ 10일 밤 서울 중구 시청광장에서 열린 '서울 문화로 바캉스' 행사를 찾은 시민들이 텐트안에서 문화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 뉴시스

    시민들은 다만 의자가 있길래 앉았을 뿐이라며, 이곳이 인공해변이란 기자의 설명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모래의 두께도 너무 얇아 손을 넣으면 바로 뜨겁게 데워진 맨 바닥이 닿았다. 

    서울시는 주말 도심 광장 곳곳에 바캉스 축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시민을 맞았다. ▲다양한 축제 프로그램과 어우러진 ‘휴양지 컨셉의 쉼터’, ▲ 하얀 모래와 야자수가 있는 ‘도심 해변’, ▲ 고급 캠핑용품으로 편안하고 안락하게 쉴 수 있는 ‘휴게공간’ 등이 서울시가 동원한 홍보문구다.

    시민들의 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 준 건 서울광장의 인공해변이 아니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공연이었다. 시향의 공연은 무더위에 지친 시민들의 눈과 귀를 붙잡기에 충분할만큼 수준이 높았다. 서울시가 마련한 모기장 텐트도 시민들에게 인기였다. 

    그러나 서울광장 북동편에 들어선 인공 해변은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해변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작은 모래판에는 조악한 모형 야자수와 노란색 고무오리 러버덕 쿠션 몇 개가 놓여 있었으나 실제 이곳을 해변이라고 여기고 이용하는 시민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인천에서 가져왔다는 모래는 서울시가 극찬한 하얀 백사장 모래가 아니라 흙에 가까웠고 그마저도 두께가 너무 얇았다. 손으로 파보니 딱딱한 바닥에 손끝이 긁혔다. 아이들의 여린 손가락이 걱정될 정도였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허접한 야자수 모형이 광장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과 어색하게 어울려 있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남학생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여기가 인공 해변이라는 것을 알고 왔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오히려 되물었다. “에? 여기가 해변이라고요?”

    금방 걸음마를 뗀 딸아이를 오리모양 에어쿠션에 앉혀 놓고 사진을 찍고 있는 30대 후반의 젊은 엄마 역시 그 곳이 인공 해변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나가는 안내원에게 “이곳이 인공 해변이라는 간판이나 표식이 있냐”고 물었다. 안내원은 퉁명스럽게 “자원봉사자 텐트에서 팜플렛을 참고하면 된다”고 답했다. 하지만 팜플렛에는 이곳이 인공해변이라는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인공해변 주변 썬배드를 이용 중인 시민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의자가 있으니까 그냥 앉아있는 거지요.” 휴대용 미니선풍기로 더위를 달래던 50대 중년 남성이 이렇게 답했다.

  • ▲ 인천에서 가져왔다는 15톤의 모래는 서울시가 극찬한 하얀 백사장 모래가 전혀 아니었다.ⓒ 뉴데일리DB
    ▲ 인천에서 가져왔다는 15톤의 모래는 서울시가 극찬한 하얀 백사장 모래가 전혀 아니었다.ⓒ 뉴데일리DB

    서울광장 한 가운데 인공해변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기발했지만 시민 반응은 기대 이하였다. 시민들이 서울광장을 가장 많이 찾은 시간대인 오후 8시~9시 사이, 현장의 기온은 섭씨 34도를 웃돌았고 불쾌지수는 81로 ‘매우 나쁨’ 상태였다. 식을 줄 모르는 열기와 습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배어 나왔다. 

    서울시가 인공해변 조성을 위해 쓴 예산은 1,000만원, 지난해 잠수교 퍼포먼스 때보다 예산을 대폭 줄였지만 세금 낭비라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를 위해 광화문광장에 높이 22m, 길이 300m 크기의 대규모 워터슬라이드를 설치한 뒤 폭우로 개장 하루 만에 전격 철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