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대통령 업적 다시 봐야"… 9일 하루에만 '이승만 재조명' 세미나 2건 잇달아
  • 9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이승만 대통령을 재조명하는 세미나가 개최됐다.ⓒ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9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이승만 대통령을 재조명하는 세미나가 개최됐다.ⓒ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업적 재평가를 주제로 한 학술회의와 시민 대상 강연이 9일 오전과 오후, 잇달아 서울에서 열렸다.

    이날 오전 10시에는 강효상 의원실 주최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의 재조명’을 주제로 건국 70주년 기념 세미나가 개최됐다.

    연사로 초청된 신철식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장은 "자유의 가치를 처음 뿌리내린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를 균형있게 바라 볼 것"을 강조했다. 특히 신철식 회장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재평가할 것을 주문했다.

    세미나에는 강효상 의원과 신철식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장을 비롯해 이승만 대통령 며느리 조혜자 여사, 정종섭, 윤상직, 신상진, 임이자, 윤종필, 김광림 의원 등이 자리했다.

    강효상 의원은 개회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닦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토대 위에서 대한민국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강 의원은 이승만 대통령의 과(過)만 부각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그분의 투철한 애국심과 숭고한 건국정신을 국민들에게 올바르게 알려야 한다”고 했다.


    “이승만은 독재자가 아니다” 

    신철식 회장은 ‘건국 역사 제대로 알기 아! 이승만’이란 제목이 붙은 특별 강연을 통해 “다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이승만 대통령도 공과(功過)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 과(過)가 독재자, 미제의 앞잡이, 3.15부정선거 당사자라고 낙인찍을 만큼 크지는 않다”고 했다.

    특히 신철식 회장은 “이승만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니다”라며, 공식처럼 여겨지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좌파 학계의 견해를 정면 반박했다. 대미 관계 및 3.15 부정선거와 관련해서도 그는 기존 학계의 평가를 전면 부정했다. 신 회장의 관련 주장은 이렇다.

    “이승만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니다. 이 대통령은 독재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인 부정축재, 언론탄압, 정치탄압을 하지 않았다.이 대통령은 미제 앞잡이도 아니다. 그는 친미(親美)도 반미(反美)도 아닌 용미(用美)주의자였다. 마지막으로 이 대통령은 3.15 부정선거 당사자가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조병옥 박사가 2월 초 서거해 이 대통령의 연임은 기정사실이었다. 3.15 부정선거는 이기붕 씨를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한 부통령 부정 선거였다.”


    농지개혁부터 교육개혁까지, 업적 재평가 필요 

    신 회장은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자유민주주의 정치제도 도입 ▲농지개혁 ▲교육혁명 ▲한미동맹 ▲경제 부흥 기반 구축 등으로 정리했다. 

    신 회장은 자유당의 독주와 부패, 말년 노령화로 인한 총기(聰氣) 상실 등 이 대통령에게도 과(過)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이러한 과가 공(功)을 덮을 정도로 결코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국시로 확립한 점, 농지개혁, 교육혁명, 한미동맹, 산업부흥계획을 통해 ‘한강의 기적’의 토대를 구축한 점, 공산권 침략을 저지하고 국가 발전 백년 대계를 확립한 점 등을 대체불가능한 이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을 “우리 역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대를 밝힌 희망의 불빛”이라고 평가하면서, 공과에 대한 균형 잡힌 재조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 이승만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1920년 존영사진.ⓒ뉴데일리 DB
    ▲ 이승만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1920년 존영사진.ⓒ뉴데일리 DB

    6.25가 없었다면 이승만의 '한강 기적' 가능했다

    이날 오후 4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2동 2층에서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건국대통령 이승만 바로 알기' 강좌가 열렸다. 강사를 맡은 김용삼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기획실장(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1950년 6.25만 없었다면 이승만 시대에 ‘한강의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런 주장의 근거로 1948년 12월 한국이 미국과 체결한 한미원조협정(ECA)을 제시했다.

    ECA 협정을 통해 미국에서 식량, 비료, 석유, 원자재, 공업시설, 기술원조 등이 제공됐고, 각 부처별로 산업부흥 5개년 계획, 5개년 물동 계획, 농림증산 3개년 계획, 석탄생산 5개년 계획, 전력증강계획 등을 수립했기 때문에, 이 대통령 집권 당시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다는 것이 김용삼 실장의 논리다.

    김 실장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1945년 10월 귀국 직후부터 당시 우리 상황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개발할 수 있는 분야가 광업임을 깨닫고, “국가발전은 광업에서부터”라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중석을 설립해 중석의 해외 수출로 외화를 획득했고 물류의 뼈대가 되는 철도 건설도 서둘렀다.

    김 실장은 “교육분야 개혁,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전후 복구 등도 당대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결정적 기틀이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