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반 선반 7일 출항… "성분 분석하면 산지 드러나… 석탄 모두 때기 전에 샘플채취 시급"
  • ▲ 지난 7일 포항을 급하게 떠난 벨리즈 선적 소형화물선 '진룽' 호. ⓒ마린트래픽 검색결과 캡쳐.
    ▲ 지난 7일 포항을 급하게 떠난 벨리즈 선적 소형화물선 '진룽' 호. ⓒ마린트래픽 검색결과 캡쳐.
    북한산 석탄을 한국에 싣고 왔다는 의심을 받은 벨리즈 선적 화물선 ‘진룽’호가 예정보다 하루 이른 7일, 황급하게 포항을 떠났다. 한국 정부는 “진룽호가 싣고 온 석탄은 러시아산임을 확인했고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산 석탄의 위장 반입 논란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진룽호는 싣고 온 석탄을 포항에 하역했다. 그런데 "포항에 내려진 석탄이 경주로 옮겨졌다"는 주장이 8일 제기됐다. 이날 익명을 요구한 해운 전문가는 8일 “진룽호가 싣고 들어온 석탄이 경주로 이동됐다”면서 “이 석탄의 스펙(性狀)을 확인할 수 있는 공인 인증을 하루 빨리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열랑, 불순물 비중, 수분 함유율 보면 알 수 있어”

    이 전문가는 "석탄이 러시아산이건 북한산이건 발전소나 철강기업에서 써버리면 그만"이라며 "따라서 포항에 하적된 석탄이 다 사용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문가는 “북한산 석탄이 아니라 러시아산으로 알았다”고 한 한국전력 자회사 남동발전 측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발전소와 철강기업들이 석탄을 구매할 때의 일반적인 절차를 근거로 이같이 주장했다.

    한국전력은 본사는 물론 남동발전 등 5개 발전 자회사에는 ‘원료 구매팀’이 각각 존재한다. 이들이 연료용으로 쓸 유연탄이나 석유제품 등을 구매할 때는 샘플을 검사한 공인 인증 보고서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스펙’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보통은 ‘SGS’라는 인증업체에 의뢰를 맡긴다고 한다. 1878년 스위스에서 곡물검사소로 시작한 SGS는 현재 전 세계에 2,400여 개 사무소와 9만 5,0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인증업체로 국내에서는 서울과 강릉, 울산, 대구, 포항, 광주, 부산, 평택, 여수 등에 20여 곳의 사무소를 갖고 있다.

    이 전문가는 “석탄은 단순히 무연탄과 유연탄으로만 나뉘는 게 아니라 지역마다 열량(cal), 불순물 비중, 수분 함유율 등이 다르다”면서 “SGS와 같은 국제인증업체들이 샘플을 검사하면 이것이 어디서 나온 석탄인지 바로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 ▲ 남동발전을 비롯해 국내 주요기업들이 석탄을 공급받을 때는 SGS와 같은 국제공인인증업체 보고서를 요구한다. 사진은 SGS 그룹 한국어 소개. ⓒSGS 코리아 홈페이지.
    ▲ 남동발전을 비롯해 국내 주요기업들이 석탄을 공급받을 때는 SGS와 같은 국제공인인증업체 보고서를 요구한다. 사진은 SGS 그룹 한국어 소개. ⓒSGS 코리아 홈페이지.
    그는 또한 발전회사든 철강회사든 석탄의 가격뿐만 아니라 품질도 많이 따진다고 한다. 석탄을 땔 때 비교적 고른 열량을 내야지 생산품의 품질에도 악영향이 없고, 사용 용도에 따라 수입할 석탄의 원산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북한산 석탄과 러시아산 석탄을 착각해 수입했다는 것은 완전히 거짓말”이라는 지적이었다.

    일반적인 러시아산 석탄 운송, 소형 화물선 안 써

    이 전문가는 “한국남동발전이 수입한 석탄이 설령 러시아산이라고 해도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인 석탄 수입업체들은 러시아산 석탄을 수입할 때 용선료 등 물류비용 문제 때문에 보통 만재 배수량 2만 톤급 이상의 화물선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7일 포항을 떠난 ‘진룽’호를 비롯해 논란이 됐던 ‘리치 글로리’호나 ‘스카이 엔젤’호 등 모두 만재 배수량이 1만 톤보다 훨씬 작은 소형 화물선이다. 큰 화물선을 사용하면 비용을 더 낮출 수도 있을 텐데 왜 작은 화물선을 썼느냐는 지적이다. 혹시 대형 화물선의 경우 화물 원산지 등을 꼼꼼히 따지기 때문에 피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전문가들의 문제 제기는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나왔다. 8일 ‘펜 앤 마이크’는 “나도 북한산 석탄과 희토류 밀수 제안을 받았다”는 해외 거주 한국인 자원무역업자의 주장을 전했다. 그는 자신이 1980년대부터 자원무역을 하면서 한국전력 자회사인 남동발전과 동서발전에 해외 석탄을 납품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해외무역업자, 최근 北석탄·희토류 거래 제안받아”

    이 무역업자는 2017년 10월과 2018년 2월 해외에 있는 친북성향의 한국인 중개업자 S씨에게 북한산 무연탄과 희토류 무역을 제안 받았다며 “(북한산 광물이) 원산지 세탁을 통해 한국으로 밀수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달러 등의 돈이 아니라 현물로 지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S씨가 호남 지역 K고교 출신으로 권력층의 비호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 ▲ 하역 후 정리 중인 북한산 석탄.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하역 후 정리 중인 북한산 석탄.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무역업자 또한 인터뷰에서 “최근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산으로 알고 반입했다는 정부와 일부 기업의 주장은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의 지적과 ‘펜앤마이크’의 보도 내용 가운데 일부만 사실이라고 해도 이는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력 산하 남동발전뿐만 아니라 석탄을 중개해준 업체, 배를 빌려준 업체, 이런 문제를 알면서도 눈감아준 정부까지도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