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미투 인정' 교수에 정직 3개월 처분… 교수 복귀 앞두고 학생들 '파면' 촉구
  • ▲ A씨가 지난 3월 19일 '한국외대 대나무숲'에 제보한 글의 일부.ⓒ한국외대 대나무숲
    ▲ A씨가 지난 3월 19일 '한국외대 대나무숲'에 제보한 글의 일부.ⓒ한국외대 대나무숲
    제자에 대한 상습 성추행 의혹을 받고 스스로 사의를 표명한 서정민(52)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과 교수가, 학교로부터 정직 3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서정민 교수가 학생들에게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부탁하다가 학내 성평등센터로부터 제지를 당한 사실이 확인돼 논란이 예상된다.

    성추문 발생 직후 폭로 사실을 시인하고 사의를 밝힌 교수를, 학교가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리면서 역설적으로 구제해 준 것이나 다름 없다는 비판도 있다. 서정민 교수는 이르면 내년 봄학기부터 다시 강단에 서게 된다.

    책임 인정하고 사직서 낸 교수… 징계위 꾸린 학교

    지난 3월 페이스북 페이지 '한국외대 대나무숲'에는 "S(서정민) 교수로부터 수년 간 상습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 A씨의 제보가 게시됐다. A씨에 따르면, 지난 2008년 한국외대 박사과정 논문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학계 선배 서정민 교수의 상습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이 이뤄졌다. A씨는 “그럴 때마다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며 심경을 밝혔다.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서 교수는 입장문을 내고 "성숙하지 못한 언행으로 제보자의 마음에 상처와 고통을 입힌 것에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이 시간부로 교수직을 포함한 모든 직책에서 사퇴하고 반성하는 삶을 살겠다"고 했다.

    외대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서 교수의 사직서가 총장을 거쳐 이사장 승인 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외대 성평등센터가 '징계위원회 회부' 결정을 내렸다. 학교 측은 서 교수의 사표 수리를 보류하고 자체 징계위 및 조사위를 꾸려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다른 외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5~6월 당시 "서 교수가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다"는 소문이 학계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소문은 외대가 지난 5일 서 교수에 대한 정직 3개월 징계 처분을 공식 발표하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그에 대한 징계는 지난 6월 27일 이미 확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제자들에게 '탄원서' 요청…  학내 성평등센터 지적 받아

    문제는 징계위가 열리기 전, 서 교수가 제자들을 상대로 선처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부탁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성추행 의혹이 일자 즉각적인 사과 및 교수직 사퇴 의사를 밝힌 것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복수(複數) 학생들의 제보에 따르면, 당시 서 교수가 제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A와 깊이 사귀는 사이였는데, 안 좋게 헤어져서 앙심을 품고 본인(서정민)에게 나쁘게 말하고 있다"며 "불명예스럽게 끝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식의 탄원서를 부탁하거나, 지도 학생들에게 논문 얘기를 꺼내고 탄원서를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대생은 "서 교수가 직접적으로 '쓰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지만, 논문 지도를 받는 학생들의 경우 지도교수가 탄원서를 부탁하면 현실적으로 거부하기 어렵다"고 했다.

    탄원서의 주요 내용은 '평소 서정민 교수의 행실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서정민 교수는, 학생들에게 탄원서를 부탁하며 학과 대표 B씨의 이메일을 적시하고 "탄원서를 B씨에게 보내라"고 말한 사실도 확인됐다. B씨는 "내가 학과 대표여서 (서 교수가) 탄원서를 내게 모아 한번에 제출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 교수의 '탄원서'에 반발한 학생들은 'A씨에 대한 2차 가해 및 사실상의 탄원서 강요'로 판단, 5월8일 교내 성평등센터에 이의를 제기했다. 학생들 제보에 따르면, 당시 외대 성평등센터 관계자는 서 교수에게 문자를 보내 "학생들이 불편해 하니 (탄원서를) 중지하라"고 전달했다.

    서 교수로부터 상황을 전해 들은 학과 대표 B씨는 10일 "탄원서를 제출하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공지하기에 이른다. 외대 성평등센터 관계자는 "학생들의 이의제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진행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다"며 "그런(2차 가해 내지 탄원서 강요) 내용이 있어서 징계위에 참고하라고 보냈다"고 답했다.

    서 교수가 성평등센터 조사 과정에서 성추행 의혹을 인정했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조사위에서 (서 교수의 성추행) 의혹을 인정했기 때문에 징계 회부 결정을 한 것은 맞지만, 서 교수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인정했다고 내 입으로 말하긴 어렵다"고 했다. 그는 "서 교수의 사표가 수리돼 아예 나가지 않는 한, 계속 얼굴을 봐야 할 관계이기 때문에 입장이 난처하다"고 털어놨다.

    외대 성평등센터에 이의를 제기한 학생들은 16일 서 교수의 중징계를 요청하는 탄원서와 진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피해자 A씨는 “서로 사귀는 사이”라고 한 서교수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A씨는 “내가 정말 서 교수와 사귀던 사이였다면 지난 3월 그의 성추행을 폭로할 때 밝힌 사건들이 연인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느냐, 그랬다면 그가 그때 왜 바로 사과를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A씨는 당시 '한국외대 대나무숲'에 제보한 글을 통해, 서 교수가 자신의 몸을 강제로 만지거나,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로 자신을 성희롱을 했다고 주장했다. 

    본지는 서 교수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노코멘트하겠다"는 답변을 들었고, 이후 수 차례 연락을 시도해봤지만 닿지 않았다.

    "서 교수가 학교에 기여한 면도 적지 않다"

    서 교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발적으로 서 교수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작성했다고 밝힌 학과 대표 B씨는 "(서 교수의 성추행 의혹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맞지만, 교수님이 학교에 공헌한 것에 대해서는 (징계위가) 참작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탄원서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탄원서에 대해 정의롭지 못하다거나 반감이 있었던 학생도 있지만, 서 교수가 학교나 학과에 기여한 부분을 스스로 판단한 학생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 외대생은 "권위적인 느낌은 없었지만 가끔 여학생들을 상대로 가벼운 성적 농담을 하긴 했다. 하지만 스킨십은 따로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서 (상습 성추행) 의혹이 나왔을 때 많은 학생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 학생은 "학생들이 서 교수에게 (취업) 추천서나 어떤 곳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빨리 처리를 해주는 편이었다"면서 "수혜를 받은 사람들은 서 교수가 학교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료 교수 C씨는 "학생들에게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을 많이 받았다"며 "서 교수가 도덕적인 면에서 큰 문제가 없었고 수업을 잘 해왔기 때문에 그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한 학생들이 더러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C 교수는 "(성추행을) 학생들에게 안 하고 과거에 A씨에게만 했다고 해서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직 3개월 징계는) 학교 측에서 관대하게 처리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10년 전 피해자 A씨는 왜 목소리를 내지 못했나

    여성들이 '미투 운동'을 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지적받는 것은 "왜 그때 바로 신고하지 않고 이제 와서 말하느냐"는 것이다. A씨는 지난 2000년 한국외대 아랍어통번역학 박사과정에 입학하면서 국내 최초의 여성 아랍어통번역학 박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는 1986년부터 아랍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벌어진 2008년은 그가 학문을 시작한 지 23년째 되던 해였다.

    A씨는 "당시 박사 학위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버티고 버텨서 꿈을 향해 갈 것인지, 서 교수를 고발하고 꿈을 포기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었다"며 "당시 어떤 목소리를 냈다면 학위를 받지도 못하고 학계에서 조용히 사라졌을 것이다.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무시하고 도망치는 것 뿐이었다"고 말했다.

    A씨는 "당시에는 문자가 왔다는 표시만 봐도 평정심을 잃었기에 받는 대로 다 지웠다. 할 수만 있으면 전부 복원하고 싶다"며 "(3월에) 제보할 때도 모든 걸 각오했다.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그가 스스로 사퇴를 하기는커녕, 나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5월 19일 <조선일보>가 '학교 떠나겠다던 '미투'교수, 잠잠해지자 막후에서 여론戰'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A 교수(서 교수)가 '성추행이 아닌 순수한 감정이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피해를 당했다는 A씨는 "본인만 순수한 감정이면 성희롱과 성추행이 용납되는 것이냐"며 극도로 분노했다.

    동료 강사 D씨는 "부끄러운 말이지만, 학계라는 곳이 사회에는 감놔라 배놔라 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잣대가 느슨하다"며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학계에서 공론화시키고 논의해야 하는데, 중동 학계에서는 다 아는 사람이라 쉬쉬하며 넘어가는 분위기"라고 했다.

    D씨는 "정직 3개월도 부적절한 징계라고 생각하지만, 기간보다도 A씨에 대한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학교 측에서 서둘러 봉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기관이 먼저 나서 성범죄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을 해야 하는데, 자정작용이 안 되는 것 같아 개탄스럽다"고 했다.

    동료 교수 E씨는 "지금 A씨가 이렇게 나서도 어려운 상황인데, 그 당시 대학원생 입장에서 교수를 상대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면 현실적으로 학위를 받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E씨는 현 상황에 대해서도 "피해자는 사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연인관계였다는 말을 흘리는 것은, 피해자를 사실상 공범으로 몰아 자기 죄를 은폐하려는 것과 같다"고 흥분했다.
  • ▲ 한국외대 총학생회 '푸름'은 5일 서정민 교수와 김원회 교수를 파면하라는 성명문을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이들은 지난 28일 외대 교무처를 찾아
    ▲ 한국외대 총학생회 '푸름'은 5일 서정민 교수와 김원회 교수를 파면하라는 성명문을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이들은 지난 28일 외대 교무처를 찾아 "징계 관련 결과를 공개하라"고 항의하기도 했다.ⓒ한국외대 총학생회 '푸름' 페이스북
    제자라서, 동료라서, 선·후배라서… 쉬쉬하는 학계

    서 교수는 중앙일보 카이로 특파원을 지내고 각종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중동 전문가로서의 명성을 공고히 한 학자다.  A씨 역시 아랍 관련 서적을 저술하고 정부 고위급 관료의 해외순방 시 수행통역을 맡을 만큼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실력파다. 그럼에도 동료들의 말처럼 중동 학계에서는 A씨의 목소리가 메아리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중동 학계에 몸 담고 있는 대부분의 교수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난색을 표했다.

    교수 F씨는 "(서 교수가) 제자이기도 하고, 후배이기도 해서 뭐라고 언급하기 어렵다"며 "둘(가해자와 피해자) 다 아는 상황이라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답변을 피했다. 교수 G씨는 "동료 입장에서 인터뷰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다른 교수 H씨는 "가슴 아픈 일"이라고 운을 떼며, "모두 가깝게 지내던 분들의 얘기라 조심스럽고 객관적 판단이 어렵지만, 판단을 내린 사람들도 충분한 근거를 갖고 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물론 제보자의 의견도 존중받아야 하며, 이후 제보자에게 불이익이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한국중동학회 회장 박재원 한국외대 교수는 "표절과 같은 '연구윤리'에 관계된 것이라면 즉각 조치를 취해야 하겠지만, 이 일에 대해서는 지금 분명하게 답하기 어렵다"며 "추후 회원들과의 논의를 통해 학회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한국이슬람학회장 윤용수 부산외대 교수 역시 "서 교수가 학회원이기는 하지만, 학회에 관련 규정과 절차가 있으니 세부 내용을 파악한 뒤 대응 방향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서 교수와 A씨는 두 단체 모두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아랍어 강사 I씨는 "중동 학계가 전부 선후배 관계로 얽혀있다 보니, 잘못된 게 있어도 해결이 안 되고 덮어버리는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 여러 관련 학회들 마찬가지로 모두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선, 개개인의 윤리의식을 사회가 요구하는 기본 수준으로 올리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목소리 내는 건 학생들… 교수들 "부끄럽다"

    결국 목소리를 낸 것은 이 학교 재학생들이다. 한국외대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푸름'은 5일 '권력형 성폭력 가해 교수를 위한 자리는 없다'는 제목의 성명문을 발표하고, 서정민 교수는 물론 서 교수와 함께 성추행 혐의로 해임 징계를 받은 OOO교수의 파면을 촉구했다.

    OOO 교수 역시 제자들의 특정 신체 부위를 만졌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해임은 정직보다 높은 징계지만, 3년이 지나면 재임용이 가능하다. 총학생회는 "정직 3개월과 해임이라는 징계 수위도 행정 편의적 인식이 낳은 결과가 아닌지 의심된다"며 "최고 수위 징계인 '파면'만이 우리 공동체가 권력형 성폭력을 묵인하고 간과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처분"이라고 강조했다.

    제보자 J씨는 "총학생회 발표문을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아 동료 교수들에게 보여줬는데 하나같이 첫 마디가 '부끄럽다'는 말이었다"며, "이런 사건이 있었고 징계를 받았다고 해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계기로 학계가 무엇이 잘못됐는지 돌아보는 자세를 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