臨政은 ‘국민 영토 주권’ 없는 정치결사체… 1948년 건국은 초유의 자유민주 혁명
  • 곧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을 맞는다. 우리의 역사에 4.19혁명처럼 ‘혁명’이란 이름이 붙은 사변이 없지않지만 ‘대한민국 건국’ 만큼의 혁명이 어디 있을까. 우리가 ‘혁명’을 정치권력의 교체를 포함한 기존 정치질서의 근본적 변화와 함께 새로운 이념에 기초한 새 정치체제의 탄생을 의미한다고 정의한다면 대한민국의 건국은 세계사적으로 여타 국가들의 혁명과 비교해 볼 때 혁명으로 부르는 데 아무런 손색이 없을 것이다. 2차 대전후 건국을 위해 투쟁했던 크루드, 체첸, 아일랜드, 아랍 등 수많은 소수민족이 지금도 이룩하지 못한 독립과 국민의 자유평등을 대한민국은 성취했고 이제 세계 10위권 경제로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은 왕조국가체제로 복귀하지않고 실체적인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법치주의에 바탕을 둔 새로운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을 의미하는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였다는 점에서 하나의 혁명이었다. 그것은 1948년 8월 15일, 자유와 민주란 개념도 없었던 한반도의 해방공간에 다당제하의 3권분립이 보장되는 국가가 출범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반만년 역사를 통한 한반도 초유의 자유민주주의 혁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의 혁명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건국을 혁명의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한 연구는 없었다.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학)는 자신의 저서 ‘대한민국의 건국혁명 1, 2’에서 “그동안 한국현대사를 해방, 분단, 통일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하려는 역사관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역사관으로 한국현대사를 보면 ‘건국’은 부차적으로 밀려나거나 이들에 가려지는 ‘일식(日蝕) 현상’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면서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건국일이며, 그러한 건국은 혁명이었다고 규정했다. 

    임정도 ‘건국강령’에서 국가 건설과정 임을 밝혀

    이제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을 대대적으로 기념해야 할 당위는 건국이 갖는 혁명적 의미에 있다 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전혀 딴 판으로 흐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건국일을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일이라고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역사 왜곡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치학적, 국제정치학적, 역사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고 있다. 1941년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표한 ‘대한민국건국강령(大韓民國建國綱領)’에서 아직 ‘복국(復國)’조차 되지 않았다고 발표한 사실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그같은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건국강령은 국가 건설과정을 ‘독립 선포→정부 수립→국토 수복→건국’으로 밝힘으로써 임시정부가 건국을 위한 과정이자 기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임시정부는 국제적으로 ‘국가’로 승인받지 못했기 때문에 김구 주석 등 요인들은 해방과 함께 국가나 정부 아닌 개인 자격으로 환국했다. 하지만 1948년 건립된 대한민국은 유엔 등 국제사회로부터 국가로서 외교적으로 인정을 받고, 근대 국제정치질서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참여할 수 있는 역사적 거보(巨步)를 내딛었다. 

    국가 구성의 필수 요소를 설명하는 유용한 준거로 ‘국가들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몬테비데오 협약(Montevideo Convention)’이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이 협약 제1조는 “국제법의 인격체로서의 국가의 자격요건으로 ⑴상주하는 인구(a permanent population) ⑵명확한 영토(a defined territory) ⑶(실효적인) 정부(government), ⑷다른 국가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capacity to enter into relations with other states)”을 갖추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상주하는 인구’는 국민, ‘정부’란 ‘영토에 거주하는 인구에 대해 실효적 통제를 할 수 있는, 혹은 영토에 거주하는 인구가 준수할 법률을 제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거국적인 중앙통치조직체’를 뜻한다. ‘다른 국가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란 대외적 독립성과 자주외교권, 즉 주권을 뜻한다. 따라서 국가의 건립이란 국민, 국토, 정부, 주권 등 네 가지 필수 요소를 갖춘 정치결사가 출현하는 것을 뜻한다.

    임정은 해방과 함께 사실상 해체된 기구 

    하지만 일제침략 시기인 1919년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위의 어떤 요소도 갖추지 못했다. 따라서 그 어떤 다른 국가로부터도 국가의 정부로 승인받지 못했다. ‘임시정부’는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이 건국을 준비하기 위해 만든 정치결사였다. 이런 준비 단체의 설립을 건국이라고 하겠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비웃음만 살 뿐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까지도 ‘1919년 건국’을 말했다며 대한민국이 건국한 해는 1919년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1919년 이승만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이 일왕에게 ‘건국 통보문’을 보내고 “우리는 (일본이) 대한민국이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주권국가임을 공식 인정해 주기를 바라며 이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조약상의 약속들은 무효로 간주될 것이다”, “1919년 4월 23일 한국이 완전히 조직된 자주통치국가가 됐음을 당신, 그러니까 일왕에게 공식적으로 통보하라는 한국민의 명령을 받았다”고 한 사실을 지적한다. 

    이밖에도 이 전 대통령은 1948년 대통령 취임 선서, 제헌국회 개회사, 국무총리 임명안, 대법원장 임명승인안 같은 정부 문서에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표기했다. 때문에 이 전 대통령 조차 1948년 정부 수립을 ‘건국’이 아닌 ‘임시정부 계승과 재건’으로 보았다고 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또한 1948년 9월 1일에는 최초의 관보가 나왔는데, 발행일자가 ‘대한민국 30년 9월 1일’로 돼있는 것은 1919년을 대한민국 건국 원년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대한민국 제헌헌법 전문이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라고 표현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기미년인 1919년은 대한민국 ‘건립’의 해이며, 1948년은 ‘재건’의 해라고 명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제헌헌법 전문의 이 대목의 의미는 임시정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승만 박사는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기미년(1919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 임시정부의 계승이며, 이날이 29년 만의 민국의 부활일임”을 공포했다. 그런데 임시정부는 1945년 해방과 함께 사실상 해산된 기구다. 정말 임시정부 자체를 계승한 거라면 29년 만의 부활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에서 말하는 계승의 대상은 임시정부 기구가 아닌 “기미년에 독립국을 만들려 노력했던 정신”을 뜻한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 대한민국이 건국된 해라면 1948년 이후 모든 정부 기록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초대 대통령’ 또는 ‘제1대 대통령’이란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1948년 8월 15일 이후 모든 정부 문서에 이승만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 제1대 대통령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류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식 때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이라고 하지 않았나”라며 “19대 대통령을 역사적으로 올라가면 1대,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이라는 것이다. 본인도 19대 대통령을 쓰는 이상, 건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인정하면서 1919년 건국이라 얘기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해 2017년 1월 대선 후보 시절 펴낸 ‘대한민국이 묻는다’라는 저서에서 한국의 법통과 정통성이 김구→신익희→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와 관련, 양승함 전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현재 정부수립을 건국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일 것”이라면서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파, 친미제국주의자 등으로 몰아세움으로써 이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문 대통령의 이와 같은 입장은 법통과 정통성의 개념을 모호하게 이해한데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면서 김구와 신익희 선생은 시대적 영웅적 지도자이지만 법통을 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통성이 결여됐다고 해서 대통령의 법통을 잇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그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19대 대통령으로서 선대 대통령들의 법통을 모두 이어 받았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한편으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내년 2019년에 북한과 3.1운동 공동 기념행사를 하겠다고 한다. 북한은 3.1운동을 김일성 아버지 김형직이 조직했고 발원지도 서울의 탑골(파고다)공원 아닌 평양 숭덕여학교이며 당시 만 7세밖에 되지 않은 김일성이 그 운동에 적극 가담했다고 역사를 왜곡, 날조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무엇을 근거로 공동 행사를 하겠다는 것인지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1919년 건국한 국가가 1945년 해방까지 독립투쟁 벌였다? 

    전상인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문재인 정부의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 담론은 현재 대한민국의 ‘레종 데트르(raison d'être: 존재이유)’를 지지하고 강화하려는 발상이 아니라 그것을 부정하고 극복하려는 의도이기에 불안하고 불길하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아도 현 정부가 새로 발표한 역사교과서 교육과정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유엔총회 결의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왜 ‘자유’를 빼느냐며 국민적 반대가 거세지자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란 용어를 함께 사용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전 교수는 “1919년 건국설은 대한민국을 지키고 키우고 높이고자 하는 발상이 아니라 그것을 ‘디스(disrespect: 경멸)’ 혹은 ‘셀프디스(self-disrespect: 자멸)’하기 위한 목적에서 나왔을 개연성이 다분한 것”이라고 말했다.

    원로 정치학자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건국이란 인간의 출생에 비추어 생각할 수 있다며 ”태아의 전신(全身)이 노출되는 것이 출생인 것처럼 국가 구성요소들을 완비한 정치결사가 출현한 것이 건국“이란 해석을 내리고 있다. 이는 1919년은 대한민국이라는 생명체가 상해임시정부라는 모체에서 자라나기 시작하던 시기고, 모체에서 자라고 있던 태아가 완전한 생명체의 모습으로 세상밖에 나타난 1948년이 그 생명체의 생일, 즉 건국이라는 뜻이다.

    그는 1948년 8월 15일 출생한 대한민국의 생일을 바꿔버리는 건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이고, 사람으로 치면 신원불명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석춘 교수도 “1919년 상해임시정부는 1948년 건국을 이룰 정신적 출발점이었다”며 “헌법 전문에서 나오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3일 ‘문화역 서울 284’에서 열린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 참석해 “우리에게는 민주공화국 100년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며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재강조했다. 하지만 “임시정부를 민주공화국이라고 보는 것부터가 역사적 왜곡”이란 지적이 나온다. 왜냐하면 군주국 또는 귀족국의 반대 개념인 공화국이란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국가인데도 당시 일제통치체제하의 우리 국민은 주권이 박탈돼 주권행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역사적 사실을 놓고 대한민국 건국이 1919년이냐, 1948년이냐로 싸움을 벌이는 것은 소모적인 이데올로기 논쟁이며 부끄러운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주장대로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긴 일제강압통치시기인 1919년에 대한민국이 이미 건국해 있었다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1945년 8월 15일 해방될 때까지 해외에서 목숨 걸고 싸웠던 독립운동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했느냐는 물음에 봉착하게 된다. 이런 억지 주장은 더 이상 접어야 한다.

    이제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국민이 나서야 한다. 정부가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을 외면한다고 해서 국민이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이 고희(古稀)를 맞고도 고희 잔칫상하나 제대로 차리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역사에 영원한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오는 8월 15일 우리끼리라도 십시일반 뜻과 정성을 모아 광화문광장에 영광스런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축하 생일상을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