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옥탑방 체험으로 되는 것인가?
  • 16세기의 철학자이자 작가 몽테뉴는 판단력, 이해력, 상상력을 인간 정신의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보았다. 이들 능력 중에서 판단력은 그가 사물을 관찰하여 지식을 쌓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몽테뉴는 이성의 능력을 과신하지 않고, 지식은 늘 객관적인 관찰에서 얻어진 사실에 기초해서 쌓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실에 근거를 둔 지식을 쌓다 보면 어느덧 사물 간의 관계를 통찰할 수 있는 이해력이 커지게 된다. 상상력은 판단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때 남들이 늘 행하는 방식이 아닌 독창적인 측면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하므로 인간 정신의 영역을 넓힌다. 

    몽테뉴는 사물을 관찰하여 판단을 내릴 때, 우선 한 가지 측면만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판단했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결론을 내린 낡은 문제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선택한 방법으로 새로운 판단을 모색했다. 각각의 사물이 지닌 수많은 부분과 면(面) 중에서 몽테뉴는 하나를 선택하여 때로는 그 겉을 핥기도 하고 때로는 어루만져보기도 하고 때로는 뼈까지 씹어 보기도 하되, 가능한 한 넓게가 아니라 깊게 찌른다. 

    사물에는 아직 검토되지 않는 많은 측면이 있고, 또 자신의 검토가 완전한 것도 아니므로 이런 과정을 통해 내린 판단을 내리되, 자신이 사물의 실체를 완벽하게 밝힌 것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그의 이런 태도는 대륙의 관념론보다는 영국식 경험론 전통과 맥이 닿아있다. 반면에 관념론은 데카르트에서 연상되듯이 난롯가에 앉아 자신의 추론을 끝없이 이어나가 진리의 바벨탑을 높이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기 때문에 공허하다. 한국인이 판단을 내리는 성향은 어느 쪽이냐 하면 관념론에 가깝다.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검토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념의 잣대에 맞추어 초지일관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간다. 이런 성향은 정치가들의 이미지 관리에 자주 이용된다.  
  • ◆ 450년 사람 몽테뉴라면 '박원순 옥탑방'을 어떻게 바라볼까?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관저를 떠나 한 달간 옥탑방에서 근무한다고 하는데, 대통령은 이 더운 날에 그런 결정을 한 시장을 격려한다며 선풍기를 선물로 보냈다는 보도가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까? 관념론적 판단에 따르자면, “이 더운 여름에 서민의 생활을 잘 이해하기 위해 옥탑방 체험을 하겠다는 마음이 가상하다”라며 조선 시대 청백리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이 보냈다는 선풍기를 조립하며 기뻐하는 장면이 겹쳐지며 ‘선풍기 하나에 기뻐하는 우리 시장님’이라는 이미지가 새겨질 것이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시원한 자신의 집무실을 마다하고 자진해서 옥탑방에서 근무하겠다는 ‘가상한’ 결심을 한 서울 시장님에 대해 더할 나위 없는 친근감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450년 전의 옛날 사람이지만 몽테뉴라면 판단을 내리기 전에 다각도로 문제를 분석해볼 것이다. 서울 시장이 관저가 재난으로 파괴된 것도 아닌데, 새로 옥탑방을 만들었다면 이는 세금을 추가로 쓴 것이다. 혹시 근무는 관저에서 하고, 잠만 옥탑방에서 자는 것인가? 아니면 보좌관들을 수시로 만나서 회의도 해야 할 텐데, 옥탑방 옆에 대형 회의실을 만들었는가? 그렇다면 법에도 안 맞는 이런 지출을 하는 것은 낭비이고 불법일 텐데, 이런 비정상적인 지출을 감행한 목적은 무엇일까? 몽테뉴라면 시민들을 상대로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한 쇼로 잠정 결론을 내릴 것이다. 만약 쇼라면 시민을 무엇으로 보는 것인가? 이는 시민을 얄팍한 쇼에도 쉽게 넘어가는 미성숙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아, 나를 포함한 불쌍한 서울 시민들이여. 우리가 이런 취급을 받고 살고 있다니. 

    이런 방식은 경험론 전통과는 거리가 멀고 대체로 관념론적이다. 자신의 업적을, 사실을 바탕으로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환한 웃음’이나 ‘옥탑방’ 같은 이미지로 치장하는 것이다. 시장이라는 막중한 업무의 실질적인 내용보다도 “나는 서민의 삶을 중히 여긴다”는 명분이 훨씬 중요한 사람들이다. 서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옥탑방 체험으로 되는 것인가? 이런 것보다는 서민들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서울시 안팎에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국내외 기업들을 유치하는 일에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더 실질적일 것이다. 
  • ◆역대 최장 재임…실질적인 업적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역대 최장 재임 기록을 세웠다. 그 세월 동안 이룬 주요 업적 중에는 시민의 삶 자체보다는 이미지 쪽에 관한 것이 많다. 서울시립대학교 등록금 50% 삭감(일명 반값 등록금)은 서민의 삶을 위한다는 이미지 이면에 시장질서가 아닌, 인위적인 가격 책정을 명령으로 관철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맥쿼리 코리아로부터 서울 지하철 9호선 운임 결정권을 회수한 것은 기업체와의 계약을 중도에 파기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런 일의 심각한 영향은 장차 한국에 투자하려는 외국 기업들의 잠재적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의 주요 치적으로 내세운 두 가지 모두 자유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일일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아이로니컬한 모습이다. 심야버스(일명 올빼미버스) 운행 개시나 서울 경전철 우이신설선 개통은 택시라는 대체 수단이 있으므로 시민 편익과 비용의 문제일 것이다. 도심 양봉, 도시 텃밭 운영은 뉴욕시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와 경쟁하는 서울 같은 대도시의 주요 사업으로 보기는 어렵고 농촌 지역 소도시에서나 어울리는 일로 보인다. 

    서울시에 대해서는 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유난히 동성애자들에게 우호적이라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그런 사람들이 조용히 자기들끼리 그렇게 사는 것이야 뭐라 할 수 없지만, 서울시가 판을 깔아 줘서 벌이는 이상한 축제 행사에 이르면 동성애를 장려하자는 것인지 뭔지 분간이 안 가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유일하게 본정신을 유지하고 전통을 지키는 보루라 할 가정까지 망가뜨릴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이렇게 서울시가 내세운 박원순 시장의 현재까지의 업적들은 실질적이기보다는 이미지 형성에 비중을 더 둔듯하다. 아직 임기가 많이 남아 있는데 남은 기간만큼은 세계 최대 도시로서의 활력과 기능, 일자리 같은 실질적인 문제에 몰입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선전술이 지나치면 '위선'

    서울 시민이 서울 시장을 제대로 평가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실에 근거를 두고 서울 시장이 시민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판단해 보면 된다. 그러려면 실질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삼아야 하므로, 평소 실질적으로 시민의 삶에 도움을 주는 행동을 많이 했는지, 또한 그 결과 나타난 성과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측정해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서울 시장의 근무 중 일과를 측정해보아야 한다. 하루에 만난 사람들은 누구인가? 내부에서 참모들의 보고를 듣는 시간과 외부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좀 더 전문적으로 검토하려면 서울 시장과 뉴욕이나 도쿄 시장의 연간 계획의 지향성이 어떻게 비교되는지 등을 조사해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지난 일정 기간 중에 시장의 노력으로 유치한 기업체(일자리)는 어떤 것이 있는가? 도시 디자인 측면에서 더 멋있게 변화시킨 프로젝트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이런 관찰이 필요한 것이지 옥탑방 같은 이미지적 활동에 점수를 주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활동을 안 하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그래서 몽테뉴가 또 강조한 것이 이해력이다. 언론이 뭐라 하든 쉽게 현혹되지 않으려면 사물의 관계에서 오는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서민의 삶이라는 개념에서 일자리 만드는 노력으로 관계 짓는 사람은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고, 서민의 삶에서 옥탑방 체험으로 관계 짓는 사람은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 즉 쉽게 속는 사람이다. 

    정치가가 자신을 대중에 어필하는 행동을 하는 자체가 그 사람의 인생관, 가치관, 인간적 수준 같은 것을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예를 들어 박정희 대통령의 근검 정신은 잘 알려져 있는데, 그가 죽었을 때 알려진 사실 중에 집무실에 선풍기와 파리채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화장실에 물을 아끼기 위해 벽돌 한 장이 변기통 속에 들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당시 부족한 전기를 아끼기 위해 청와대 냉방을 최소한으로 줄인 결과 실내가 더워지면 창을 열었을 것이고, 그래서 부채가 필요했고, 파리가 들어오니 파리채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이런 일을 생전에 일부러 대중에 선전하지는 않았다. 
  • ◆정치가의 이미지 선전이 지나칠 때…

    정치가가 대중의 인기를 위해 어느 정도 선전을 이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공허한 행동이 된다. 주변에 이런 행동들이 만연할 때 대해 예전의 철학자들이라면 어떤 평을 했을 것인가? 인간은 공허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인식했던 데모크리토스는 늘 냉소적인 얼굴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웃는 철학자’로 불렸다. 반면에 헤라이클리토스는 같은 인간 상태에 대해 연민과 동정을 품고 있었으므로 늘 슬픈 얼굴을 하고 눈에는 항상 눈물이 가득 차 있어서 ‘우는 철학자’로 불렸다. 티몬은 그런 인간들을 너무나 혐오하여 ‘인간 혐오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디오게네스 같은 이는 아예 통 속에 은둔하여 세상과 등지고 살며 알렉산더 대왕을 비웃고, 사람들을 무가치한 존재로 여겼다. 이번 옥탑방 사건은 인간 상태를 우스꽝스럽고도 공허한 것으로 만들었다. 냉소만 할 수도 없고, 연민의 눈물을 흘릴 수도 없고, 그저 디오게네스처럼 못 본 척 은둔할 수도 없고, 이런 일은 우리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