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건국’ 대통령을 추모하며...53년 전의 기도를 가슴에 깊이 새긴다
  • 李 竹 / 時事論評家

      올해 3월 25일은 일요일이었다. 지하철 4호선 동작역(銅雀驛)에서 하차(下車)하여 8번 출구까지 가는 거리는 꽤 된다. 그날 점심때를 앞두고 8번 출구를 향해 지하(地下)를 걸으며 상상(想像)의 나래를 펴봤다. 
      “지금쯤 지상(地上)에는 차량들이 몰려서 난리가 났을 거야. 가족을 자가용에 태우고 봄나들이 겸해서 그분의 묘역을 찾은 직장인들 때문에... 내일이 그분 ‘탄신일’(誕辰日)이지만 하루 앞둔 일요일을 택해서 나오느라고 그렇지 않겠어?” 그러나...

      8번 출구에 나서는 순간 그 상상은 덧없는 몽상(夢想) 또는 주책없는 망상(妄想)이란 걸 깨닫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그럴 줄 뻔히 짐작하고도 쓸데없이 희망성(希望性) 짱구를 굴렸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분 묘역에 이르러서는 부질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은혜를 모르는 국민들이 너무도 많은 나라가 과연 잘 될까?”

      달포 전쯤에 이 나라의 ‘지방권력’을 따먹기 위한 선거가 있었다. 여러 원인과 이유와 사연이 있겠지만, 거의 몰표가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15일 6·13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당선인들과 함께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아무개 일간지의 기사는 이어진다.

      “김영삼·김대중 전(前) 대통령 묘역에 참배했지만, 이승만·박정희 전(前) 대통령 묘역은 찾지 않았다...”

      ‘슨상님’ 묘역에서 그분 묘역까지 몇 발자국이나 된다고... 그곳에 가본 국민이면 너무도 잘 안다. 엎어지면 코 찧을 거리 아닌가.

      저들의 ‘이승만 패싱’은 이번만이 아니다. 허긴 ‘패싱’ 정도면 괜찮다. ‘죽이기’를 넘어 ‘부관참시’(剖棺斬屍)에다가 ‘역사의 화장(火葬)’까지 해 오지 않았나.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과 한데 묶어서·엮어서 도매금으로 매도(罵倒)해 왔다.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의 역정(歷程)을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짖어대면서, 그분은 취급해 봤자 ‘개만도 못한’ 늙은 독재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라의 후레자식’들도 그분의 묘역을 찾곤 한다. 언제? 표(票)가 꼭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간다. 그리고는 이렇게 짖어댄다. 항상 ‘공과’(功過) 타령이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역사에 많은 굴곡이 있었고 역대 대통령들은 공과(功過)가 있었지만 안아야 할 우리의 역사이고 공과(功過)도 뛰어넘어야 할 우리의 과제이다.”

      
  • 그렇게 ‘공과’(功過)를 자주 짖어대건만, 과연 저들이 언제 한 번이라도 그분의 범접할 수 없는 ‘공’(功)을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적시해서 국민들에게 내보인 적이 있는가? 
      하물며 이 나라 건국을 끝까지 방해했거나, ‘적’[敵+赤]의 편에 서기까지 했던 반역·이적(利敵)자들을 존경·추앙(推仰)하라고 국민들을 윽박지르고 있다. 그분과 그의 노선을 반대·미워하고 재 뿌리기 했던 이유 하나만으로 그 어떤 인물도 위인(偉人) 취급을 하려한다. 
      저들이 별별 짓을 해서라도 이 나라 역사에서 지우고 싶어 하는 ‘건국’ 대통령이다. 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그분을 쉬임없이 난도질하고 역사를 화장(火葬)·분칠[化粧]해 대고 있건만, 현재 이 나라 위기 상황에서 그분의 족적(足跡)이 더욱 커가는 걸 두려워하고 있는 듯하다. 세계 최강의 양키나라를 일깨워 동맹국으로 돌려세운 담대(膽大)함과 예지력(豫知力)이 한층 돋보이지 않는가. 북녘 ‘백도혈통(百盜血統) 적돈가(赤豚家)’와 그 언저리들이 핵무기를 갖고 사기(詐欺)와 장난질과 협박을 치고, 뛔국이 저리 음흉하게 이 나라를 갖고 놀려 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이즈음 상황을 직시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적(敵)과의 어설프고 위험한 담합(談合)을 뜻하는 그 무슨 ‘종전’(終戰)을 짖어대고는 있지만, 그 때마다 그분이 생전(生前)에 처절하게 울부짖었던 “북진(北進) 통일!”이 귓전에 계속 맴돌아 섬뜩섬뜩할 것이다.

      
  • 7월 19일은 그분이 망명지 하와이에서 쓸쓸히 눈을 감으신 53년 되는 날이다. 7월 27일은 65년 전(前) 전쟁이 멎은 날이고, 그 12년 후에는 그분이 ‘동작동 국립묘지’[국립 서울 현충원]에 노구(老軀)를 눕혔다. 

      그분의 은혜를 기억·보답하는 건 접어두고라도, 그분이 돌아가신 날이라도 추억(追憶)하는 시쳇말로 ‘약삭빠르지 못한’ 국민들이 하나라도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 적었다. 

      “하나님, 저는 너무나 늙고 지쳤습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게 하소서...” 

      그분이 마지막으로 남기셨다는 기도문이다.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의 현재를 앞서 걱정하신 듯도 하다. 

      그 ‘종의 멍에’도 아마 ‘붉은 돼지’[赤豚]를 벌써부터 알아보고·내다보고 하신 말씀은 아닐런지...
    <이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