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영화 야외상영 부천영화제... 휴일 시민들에 '북한 체제' 선전?
  •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는 15일 저녁 9시 부천시청 앞 잔디광장에서 북한 영화 '우리집 이야기' 무료 상영회를 열었다. 늦은 시간에도 950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 정호영 기자
    ▲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는 15일 저녁 9시 부천시청 앞 잔디광장에서 북한 영화 '우리집 이야기' 무료 상영회를 열었다. 늦은 시간에도 950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 정호영 기자
    "오늘은 9월 9일. 우리 공화국 창건 기념일인데, 동네에서 제일 먼저 깃발을 띄우자" "너희들의 그 꿈을 아버지 원수님께서 지켜주고 계셔" "우리의 아버지 김정은 원수님" -북한 영화 '우리집 이야기'(2016·감독 리윤호·하영기) 中.

    부천시청 앞 잔디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 인공기가 휘날렸다. 스크린 속 북한 배우들은 인공기 아래서 환호했고, 김정은을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대사를 날렸다. 1000명에 가까운 남녀노소 관객(주최측 추산 950명)이 그 앞에 있었다. 남북 화해 무드라곤 해도,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평양 영화제 최우수작 '우리집 이야기' 어떻길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BIFAN·집행위원장 최용배)는 15일 저녁 9시, 2016년 북한 평양국제영화축전 최우수영화상 수상작 '우리집 이야기'를 한국 최초로 공개했다. 한국 국제영화제에서 일반에 북한 영화를 무료 상영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앞서 10일 BIFAN 측은 "당국으로부터 북한 영화 9편의 공개 상영을 최종 승인받았다"고 밝혔다. BIFAN은 '미지의 나라에서 온 첫 번째 영화 편지'라는 주제로 북한 영화 9편(장편 3편·단편 6편)을 영화제 기간 동안 특별 상영한다. 

    당초 15일 저녁 8시로 예정됐던 행사는 30분 늦춰졌다. 박영이 재일 다큐멘터리 감독과 전영선 건국대 교수가 30분에 걸쳐 무대인사와 간략한 영화 해설을 했다. BIFAN은 사전에 '우리집 이야기' 북한 관계자들을 초청했지만 무산됐다.

    이들은 '우리집 이야기'에 대해 "시대를 대변하는 영화"라며 "북한에는 인간의 삶에 대한 문제, 양심·도덕 등을 다룬 영화들이 있는데, 그 속에서도 대표적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소개했다. 영화는 9시부터 시작됐다.

    '우리집 이야기'의 배경은 평안남도 강선이다. 부모를 잃은 삼남매 김은정(김태금), 은향(김봄경), 은철(오현철)을 급양관리소 노동자 리정아(백설미)가 친동생처럼 보살피면서 겪는 갈등과 화합의 과정을 담았다.

    자존심이 센 은정은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 18살 이웃집 언니 정아가 삼남매의 엄마 노릇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못마땅해 번번이 갈등을 일으킨다. 그때마다 정아는 비단결 같은 마음씨로 은정에게 다가가고, 결국 은정을 비롯한 삼남매가 정아에게 마음을 열면서 한 가족이 된다는 단순한 플롯이다.

    영화 속에는 한국에서도 통용 가능한 유머 코드가 섞여 있다. 관객들은 그런 장면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배우들이 다투고 화해하며 눈물을 찍어내는 장면에서는 감정을 이입하기도 했다. 

    예컨대 소녀 가장 노릇을 하고 있는 은정에게 철 없는 동생 은향과 은철이 떼를 쓰자 신경질을 내고 집을 나가자 은향이 걱정한다. 그러자 은철이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알아서) 돌아 와"라고 하는 식의 유머다.

    그러나 영화 속에는 감동·유머 코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혀 관계 없을 것 같은 장면에서 김정은과 노동당에 대한 찬양과 미화가 뜬금없이, 곳곳에 등장한다.
  • 북한 영화 '우리집 이야기'의 한 장면.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제공
    ▲ 북한 영화 '우리집 이야기'의 한 장면.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제공
    "원수님의 위대한 은덕" 영화 곳곳에 北체제 선전... 대한민국 맞나

    장면 하나. 정아에게 부담을 주기 싫은 은정이 가출하자, 정아가 은정의 거처까지 찾아가 진심을 담아 '김정은 찬양'을 한다. 

    "우리 원수님께서 부모 없는 아이들 때문에 얼마나 마음 쓰시는지 너도 알지? 바쁘심 속에서도 아버지 원수님께서는 원아들이 잘 살고 있는지 보고싶으시어 이른 아침부터 애육원(보육원)을 찾으셨대. 아이들이 글 읽는 소리, 원아들이 커 가는 소리가 너무 대견하시어, 오랫동안, 오랫동안 마당가를 걸으셨대. 우리나라 처음 나고 우리가 얼마나 보람있는 일을 하는가 하고. 밝은 미래가 있다시면서 환하게 웃으셨다지 않니. 그러시면서 이 애들 속에서 과학자도, 체육인도, 영웅도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대. 은정아. 바로 너희들의 그 꿈을 아버지 원수님께서 지켜주고 계셔. 그런데 넌 나를 이해한다고 그 꿈을 포기하고 여기 와 있으면 어떡하니?"

    "~하셨대" 식으로 긴 호흡의 문장을 마치 누군가에게 들은 내용을 전달하듯이 읊는다. 동생의 모진 행동에도 고운 마음씨를 갖고 희생을 감수하는 정아의 '김정은 찬양사'를 듣고 있자면 마치 김정은이 최고의 지도자이며, 북한이라는 나라가 지상낙원인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장면 둘. 정아의 선행은 김송학 노동당 책임비서에게까지 닿는다. 김송학은 집행위원들을 소집해 리정아를 칭찬하면서 동시에 김정은과 노동당을 찬양한다.

    "그 처녀가 나이는 어리지만 가슴 속엔 아주 소중한 꿈이 있다고 생각되오. 그 소중한 꿈은 무엇이겠소. 부모 없는 아이들의 마음에 그늘이 질세라, 늘 마음 쓰시는 우리 원수님 어깨에 실려 있는 짐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 마음이 아니겠소. 우리 당이  이룩한 가장 큰 업적 중 하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이 땅에 청년 강국의 시대를 열어놓은 것이오. 이 중에 리정아와 같은 순결하고 아름다운 한 송이 꽃도 있소."

    김송학은 목수로 가장하는 등 정아와 삼남매를 직접적으로 돕기도 한다. 그는 "청년들과 관계된 문제는 소홀한 게 없다"면서 고아들을 물심양면 돕는 '휴머니스트' 노동당 간부로 등장한다.

    장면 셋. '우리집'에서 정아가 붉은 넥타이를 다림질하며 은향과 은철에게 말한다. 

    "넥타이 주름살을 펴면서 자기 마음도 반듯하게 가다듬는다고 생각해봐. 아버지 원수님께서 소년단 대회에서 하신 말씀, 너도 잊지 않았지? '사랑하는 온 나라 소년단원 동무들'이라고 불러주실 때,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울었단다. 은향아, 명심해. 이 붉은 넥타이는 우리 당 깃발의 한 부분이란다."

    그밖에 삼남매와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정아가 차에서 내리자 은철이 "우리 왜 차 안 타고 가요?"라고 묻자 정아가 "이 길은 나라가 어려울 때 수령님께서 찾으셨던 길"이라며 "오늘도 내일도 이 길을 무심히 걷지 말자"고 하는 장면.

    김정은이 정아에게 '처녀 어머니'라는 칭호를 내리자, 정아의 어머니가 김송학 비서에게 "책임비서동지, 세상에 이런 일도 있습니까. 스무살 안 처녀가 우리 시대 어머니로, 노동당의 딸로 떠받들리우는 이런 세상, 이런 품을 말입니다"라며 울먹인다.

    이에 김송학이 "우리 원수님의 위대한 은덕이 강선 땅에 또 하나의 '새로운 전설'을 낳았다"며 떠받들고, 은정은 "우리 아버지 원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세상에 없는 처녀 어머니를 보내주셨다"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자 어린 학생들이 리정아에게 한 목소리로 "어머니"라고 외치는 장면 등이 있다.

    김정은 찬양 및 체제 선전은 마지막 장면, 리정아와 김은정의 대화에서도 여과없이 드러난다. 그야말로 북한 영화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다. 리정아 역을 연기한 배우 백설미는 2016년 평양영화축전에서 여배우연기상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새 단장을 마친 '우리집'에 안착한 정아와 가족들은 집과 가족이 그려져 있는 그림을 책상 위에 놓고 둘러 앉는다. 은철이 "누나야, 여기다 뭘 써야 하지 않니?"라고 하자, 은정이 "우리집 이야기를, 이제부터 어머니(리정아)가 써 줘요"라고 거든다.

    정아가 "뭐라고 쓸까?"라고 묻자, 은정은 '어머니 마음 속에 꽉 차 있는 것'을 쓰라고 한다. 정아가 그림에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자 삼남매가 또박또박 따라 읽는다. "우, 리, 의, 아, 버, 지, 김, 정, 은, 원, 수, 님. 우, 리, 집, 은, 당, 의, 품."

    '우리집 이야기' 관객들 반응은? "낯설지만 재미있었다"

    1시간 40여분에 달하는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은 대체로 "만족스럽다"고 평하면서도 '북한 체제 선전' 장면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40대 여성 안세미(가명)씨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북한의 일상적 모습을 보기 위해 왔다"며 "우리 시골마을과 같은 모습을 봐서 좋기도 했지만, 정아라는 주인공이 아이들(삼남매)에게 쏟는 애정이 마치 (노동)당과 원수(김정은)를 위한 것으로 비쳐지는 것이 낯설었다"고 말했다.

    안씨는 "우리가 그 사회를 모르니, 영화에서 비쳐진 그들의 삶이 전반적으로 그런 것인지, 의도적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는 시간이 맞으면 다른 북한 영화도 보겠다고 했다.

    50대 남성 한진우(가명)씨는 "기존에 봤던 영화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고, 주제가 명쾌해 전달하려는 게 뭔지 알 수 있었다"며 "체제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영화적 기법으로 풀어낸 것 같다"고 했다. 한씨는 "미국 영화도 매번 애국심과 성조기를 드러내지 않느냐"며 "우린 거기 익숙해져 있는 거고, 북한은 익숙하지 않다는 차이일 뿐, 큰 거부감은 없었다"고 했다.

    여자친구와 같이 관람한 20대 남성 박지훈(가명)씨는 "예비군이기 때문에, 이런 영화를 여기서 틀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친구(여자친구)는 '그게 그 나라 문화'라고, 서로 그런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박씨는 "국가보안에 해를 끼친다는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체제 선전하는 부분에선 반감이 들기도 했다"며 "'판타스틱'이라는 영화제 취지와 맞느냐는 의문도 든다"고 부연했다. 
  • 2016년판 북한 사회주의 헌법 제52~53조. ⓒ뉴데일리 DB
    ▲ 2016년판 북한 사회주의 헌법 제52~53조. ⓒ뉴데일리 DB
    "부천 영화제는 시작에 불과… 향후 북한 영화 물밀듯 들어올 것"

    전문가들은 이번 BIFAN이 남북영화교류의 물꼬를 튼 현상으로 내다보며, 향후 한국에 북한 영화가 지속해서 들어오게 돼, 국민들이 북한 체제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최공재 감독은 "영화제는 기본적으로 '등급 심사를 제외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공산주의 영화를 들여와 상영해도 법적으로 하등 문제될 게 없다"며 "우리집 이야기' 한 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을 이용해서 북한 영화들을 계속해서 들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 감독은 "계속해서 북한 선전 영화를 일반에 노출시켜 국민들의 김정은에 대한 맹목적 호감도를 높여가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북한의 체제선전 영화를 보고도 시민들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10월로 예정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북한 영화가 상영될 것이란 이야기가 벌써 돌고 있다. 오거돈 부산시장이 내년 부산영화제를 남북 공동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올해 부산영화제에서도 북한 영화 상영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조희문 영화평론가 역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북문화교류를 확대하자면서 북한 영화를 음으로 양으로 확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인다"며 "부천영화제는 하나의 물꼬를 트는 것으로, 정식 조직에서 체계적으로 북한 영화 상영을 공식화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금은 우리 국민들이 북한 영화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이번 '우리집 이야기' 무료 상영회와 같은 과정을 통해 대(對)국민 북한 영화 접촉을 늘려간다면 향후 국민의 대북관이 맹목적인 호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도 그는 우려했다.

    조 평론가는 "북한은 수령, 왕조 체제가 당연하며, 인민으로서 수령에게 당연히 충성해야한다는 점을 세뇌시키기 위해 영화를 사상 교육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김정은 정권에게 영화는 체제 유지에 중요한 시청각 교재로, 주민들에게 의무적으로 영화를 보게 하거나 중요한 대사를 암기하게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북한 사회주의 헌법 제52조는 '국가는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은 주체적이며 혁명적인 문학예술을 발전시킨다. 국가는 창작가, 예술인들이 사상예술성이 높은 작품을 많이 창작하며 광범한 대중이 문예활동에 널리 참가하도록 한다',

    제53조는 '국가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끊임없이 발전하려는 사람들의 요구에 맞게 현대적인 문화시설들을 충분히 갖춰줘 모든 근로자들이 사회주의적 문화정서 생활을 마음껏 누리도록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 평론가는 "북한 영화가 한국에 유입되면서 국민들이 북한 영화를 인식하게 되면,  저희들끼리 상영회를 할 수도 있고 무차별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며 "특히 어린 학생들이 비판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북한 영화를 볼 경우 은연중에 호의적으로 받아들 일 수 있고, 그것은 북한의 전략전술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BIFAN의 북한 영화 상영을 시작으로 본격적 남북영화교류가 시작될 예정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 5일 남북영화교류특별위원회를 출범해 내년 6월 개최를 목표로 '평창남북평화영화제'를 추진하고 있다.

    BIFAN의 경우, 북한 영화는 전체 상영작 299편(북한 영화 9편 포함) 중 3% 수준에 불과하지만, 평창 영화제는 '남북평화'를 취지로 내세운 만큼 상당량의 북한 영화가 한국에 수입돼 일반에 공개될 수 있다. BIFAN이 성사시키지 못한 '북한 영화인 초청'도 평창 영화제에선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