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친기업, 경제라인은 소득주도 고집… 비핵화 불확실한데도 종전선언 추진 '엇박자'
  • ▲ 지난 9일 삼성전자의 인도 노이다 공장 준공식 모습. ⓒ청와대 제공
    ▲ 지난 9일 삼성전자의 인도 노이다 공장 준공식 모습. ⓒ청와대 제공
    경제와 안보는 어느 정부에서든 국정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정책 분야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적 색깔 역시 이 두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판문점 선언과 대북 화해무드로 대표되는 안보정책과, 소득주도성장과 경제민주화로 대표되는 경제정책이 문재인 정부를 끌고 나가는 주요 동력이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문재인 정부의 안보와 경제 정책이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인다. 한미연합훈련 및 을지훈련 취소, DMZ 98개 군부대 철수 검토, 그리고 최근 독립수사단을 구성해 본격화 되는 '기무사 흔들기'는 안보정책의 '좌향좌'를 가속화하고 있다. 반면 고용시장 악화와 먹구름 가득한 경제지표 앞에서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은 혁신성장, 규제완화 등을 내세우며 '우향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제만 우향우?… 엉거주춤한 '친기업' 행보

    소득주도성장과 경제민주화를 들고 정권을 쟁취한 현 정부가 각종 경제지표의 악화로 최근 노선을 '급선회'하고 있다. 일단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친기업 코드'는 두드러진다. 

    인도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직접 만나는 '파격'을 연출한 문 대통령은 지난 2월에는 충북 진천의 한화큐셀 공장을 찾았는가 하면, 4월에는 서울 마곡지구 LG사이언스파크 개장식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과 함께 '적폐'로 몰리는 대기업과 다소 거리를 두던 문 대통령이 최근 기업과의 '스킨십'을 대폭 늘리고 있다. 문 대통령이 재계와의 소통을 늘리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린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청와대 경제참모진을 전격 교체했다. 장하성 정책실장을 제외한 경제수석, 일자리수석을 모두 관료와 정책통으로 교체한 것이다. 이를 놓고 문 대통령이 더 이상 '소득주도성장' 모델에만 기댈 수 없음을 체감하고 전통적 방식의 경제활성화를 주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가시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재인 정부의 기존 경제정책 노선의 전면적 재검토는 요원한 실정이다. 

    문 대통령의 인도-싱가포르 순방에 동행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11일 논란이 되는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서민의 지갑을 '빵빵하게'해서 돈이 돌게 하겠다는 것"이라며 여전히 기대감을 드러냈다. 

    또 "지금은 '속도'가 맞지 않아서 돈이 돌기 전에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 됐고, 원래 생각하던 것보다 부작용이 먼저 드러나고 있다"며 "정부의 정책은 계속 서민경제에 돈이 돌게 하는 정책을 끊임없이 추진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득주도성장 노선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다. 

    11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이 참고 기다려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지금 너무 초조하다"고 밝히기도 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역시 스텝이 꼬이기는 마찬가지다. 

    김 위원장은 12일 국회에서 열린 '공정한 사회를 위한 재벌개혁의 법적과제' 학술대회에서 "한국 경제 성장의 상징이었던 낙수효과가 더는 작동하지 않는 환경에 직면했다"며 "대기업 성장이 분배되지 않고 오히려 대기업은 결실을 얻기 위해 경쟁을 제한하고 독점적인 지배 체제를 구축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생존기반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이 이미 공고히 차지하고 있는 그 자리와 불공정 관행을 더는 건드리지 않는 정치권력의 부작위(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 행위)가 기업에 대한 특혜가 될 수 있다"며 여전히 '경제민주화'에 기반한 기업관을 내비췄다. 경제 성과가 없어 초조하다던 그가 정작 기업정책의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검찰이 삼성전자 이상훈 사장실과 미래전략실 등을 전격 압수수색한 것은 7월 10일. 이 날은 문재인 대통령에 인도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한국에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한 다음날이었다. 대통령으로부터 투자와 고용을 당부 받은 기업이, 이튿날 검찰 압수수색을 당하는 이 '웃픈' 장면은 어쩌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의 현주소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인지 모른다. 

    안보는 좌향좌 '무장해제' 이야기마저 나와

    한편 대북·안보 분야에서의 문재인 정부의 행보는 그야말로 '거침없는' 질주다. 4월 27일과 5월 26일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현 정부의 대북유화정책이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지난 4월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을 강행한 데 이어 문재인 정부는 비무장지대 군 부대 신축공사를 전면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또 DMZ에 주둔 중인 98개 부대를 철수하는 안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결국 지난달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연합훈련이 잠정 중단되었다. 또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실시하는 을지훈련 역시 잠정 유예하기로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기무사령부의 소위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과 관련해 '독립수사단'을 구성하라고 지시해 정치적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기무사 특검'을 지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현 정부가 초기부터 야심차게 밀어 붙인 '적폐청산'에 계속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에 군(軍)의 정치개입 여부나 불법적 문건 작성 등에 대한 시정은 필요하지만, 대간첩·대테러 방첩 활동과 군사보안을 책임지는 기무사를 지나치게 '무력화'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당 등 보수진영에서는 현 정부의 대북·안보 정책이 사실상 '무장해제' 수순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 12일 나온 문 대통령의 '연내 종전선언 추진' 역시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최초 미북고위급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지만 결국 북한으로부터 "일방적이고 강도 같은 비핵화 요구만 들고 나왔다"는 비난을 듣는 등, 비핵화를 둘러싼 미북 간 이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처럼 비핵화 가능성이 여전히 불투명한 가운데 먼저 종전선언을 들고 나오게 되면 미국의 주한미군철수 또는 축소 추진의 명분만 제공하고 실익은 얻지 못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가 '경제는 우클릭, 안보는 좌클릭'에 나서는 것은, 결국 현 정부가 지지층 결집을 위한 태생적인 정체성은 최대한 지키되 경제 위기에 따른 정치적 부담은 피해가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집권 중후반기에 접어 든 문재인 정부가 다음 총선 전에 실질적인 경제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국민들에게 상당한 피로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재인 정부가 과연 소득주도성장이나 경제민주화 등 실요성 논란이 있는 기존의 경제 정책 노선을 얼마나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제기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