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공개념, 소득주도성장, 판문점 선언 등도 정강정책에 담을 듯… 한국당은 정체성 잃고 우왕좌왕
  • ▲ 2017년 2월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2017년 2월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어느새부터인가 슬그머니 '혁명'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 촛불이 이제는 집권여당의 '헌법'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현 정권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정치 집회'의 비공식적 공감대가, 집권당의 정강(政綱) 정신으로 새겨지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다음 달 개정하는 강령 및 정강 정책의 전문에 '촛불 정신'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8일 전해졌다. 전문에는 이 밖에도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토지 공개념, △판문점 선언에 따른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 현 정권의 국정과제 및 방향이 대거 담길 전망이다.

    ◆ '집권여당·좌파정당' 정체성 뚜렷하게 하겠다는 민주당

    '촛불'은 이미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과정에서 포함될 가능성이 언급됐었다. 하지만 당시 조국 민정수석이 "촛불혁명은 현재 진행 중이라는 측면에서 포함하지 않았다"며 촛불이 개헌안에서 빠진 경위를 설명했었다. 사실상 국민적 논란을 의식해 알아서 제외했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당시 개헌안에 끝내 포함되지 않았던 촛불 뿐 아니라, 현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여러 이념적 가치를 강령에 넣겠다는 것은 결국 민주당이 현 정부의 국정 동력을 책임지는 '집권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더 뚜렷하게 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20대 국회 하반기를 맞으면서 현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들이 당 강령에 포함되는 것은 그만큼 여러 입법적 사안에 있어서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시각이다. 최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강력하게 밀어 붙이고 있는 '평화와 개혁 연대' 아이디어 역시 최대한 많은 의석수를 확보해 입법적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이번 강령 개정 방향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또한 기존에 비해 더욱더 이념적으로 선명성을 드러내겠다는 의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각종 경제지표에서 적신호가 켜지는 상황에서 소득주도성장이나 토지공개념 등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민주의적' 색채가 강한 여러 이념적 개념들을 강령에 넣는 것은 민주당의 '좌클릭'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 한국당은… "평와와 안보" 동시에 추구하며 '우왕좌왕'

    한편 지난 6월 지방선거 이후 좀처럼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당의 이념 및 가치에 있어서 여전히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당 내 이념을 둘러싼 논쟁이 촉발된 것은 지난 지방선거 참패 직후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의 발언 때문이었다. 김 권한대행은 당시 "수구적 보수, 냉전적 보수 다 버리고 합리성에 기반한 새로운 이념적 지표를 세우겠다"며 "냉전과 반공주의를 떠나 평화와 함께 가는 안보정당, 일자리를 추구하는 경제실용주의 경제중심정당, 서민과 함께하는 사회개혁정당으로서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김 권한대행의 발언은 사실상 한국당의 이념적 지표를 더 왼쪽으로 옮겨가겠다는 뜻이라는 것이 한국당 내 중론이다. 지난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걸었던 '경제민주화' 전략을 다시 한 번 쓰겠다는 의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발의 목소리도 거세다. 김진태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섣부른 좌클릭은 더 문제다. 우리가 여태 사회주의 개헌을 막은 게 잘못됐나? 부당한 입법을 막아온 게 잘못됐나? 국민들은 그게 잘못됐다고 이러는 게 아니다. 우리 당 "사람들이" 보기 싫은 거다. 중도를 표방한 정당이 우리보다 더 망가진 걸 생각해 보라"며 김 권한대행에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김 권한대행의 소위 '좌클릭'이 결코 해답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한국당이 이념적 방향성을 두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양상이, 한 쪽 방향으로 결집돼 나아가고 있는 민주당과 대조된다는 진단이 나온다. 그만큼 민주당은 '이념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반면, 여전히 한국당은 '이념 결사체'로서의 정당의 존재 이유를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비대위원장 인선과 관련해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 이국종 교수, 도올 김용옥 교수 등 전혀 정치권과 무관하거나 오히려 정파적으로 반대에 있는 인사들이 거론되는 점 역시 이 같은 한국당 내 정체성 실종을 반영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마저 안 세워진 상황에서, 그저 대중에게 줄 수 있는 가시적 효과에만 집착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최종 강령은 내달 25일 전당대회에서 확정될 예정이다. 강령 개정 작업에 있어 내부 노선 투쟁이나 갈등이 확산될 조짐은 현재로선 보이지 않고 있다. 한편 한국당의 경우 비대위 구성을 이번주에 마무리 지으면서 본격적인 방향성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촉발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