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란 석유 수입금지" 요청... '연 1억 배럴 수입' 한국 "미국에 예외 요청할 것"
  • ▲ 2011년과 2016년의 주요 이란 원유 수입국. ⓒ美중동연구소 관련보고서 캡쳐.
    ▲ 2011년과 2016년의 주요 이란 원유 수입국. ⓒ美중동연구소 관련보고서 캡쳐.
    미국 정부가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의 일환으로 전 세계에 오는 11월 4일부터 이란産 석유 수입을 전면 금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日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지난 26일 보도했다.

    美국무부 “이란 석유 수입금지 예외 없다”

    日니혼게이자이 신문은 “美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예외는 없다’고 일본 정부에도 이란 석유 수입 금지를 요청했다”면서 “일본 정부는 이란과 오랜 기간 우호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수입 금지에서 예외를 적용해 달라고 설명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일본을 비롯한 동맹국들에게 “이란 석유수입 금지를 요청하는 것과 함께 다른 산유국들과 협력해 석유 공급량을 조절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이란 석유 금수조치에 따른 유가 급등 가능성을 낮추겠다는 의도라고 한다.

    日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일본은 원유 수입의 90%를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일본은 오바마 정부가 제재를 해제하기 전부터 이란으로부터 석유를 수입하는 등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석유 수입 내역을 보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40%,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24%의 석유를 수급하고 있으며, 러시아 등에 이어 이란은 일본의 6번째 석유 수입국이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이란 핵합의 체제의 유지를 원하는 EU는 미국 측에 이란과의 달러 거래를 차단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이란과 거래하는 EU 기업들을 보호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EU마저 이란 석유 수입을 금지할 경우 이란 핵합의 체제가 사실상 붕괴될 것으로 우려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베 신조 日총리 또한 이란 핵합의 체제 유지에 찬성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란 석유 수입을 중단하라”는 美국무부의 경고는 일본보다 한국에 더욱 위협적이다. 한국석유공사가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한국의 원유 수입량은 10억 7,812만 배럴이다. 이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입하는 양이 3억 2,444만 배럴로 가장 많고, 이어 쿠웨이트 1억 5,927만 배럴, 이라크 1억 3,832만 배럴로 뒤를 잇고 있다.
  • ▲ 2016년 1월 이란 투자지원을 기획재정부에서 넘겨 받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이란 투자·교역지원센터 개소식을 갖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6년 1월 이란 투자지원을 기획재정부에서 넘겨 받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이란 투자·교역지원센터 개소식을 갖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 이란 석유 수입국 4위… 1억 배럴 넘어

    이란은 1억 1,194만 배럴로 원유 수입국 가운데 4위였다.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이 취임한 뒤 이란 핵합의 파기 가능성이 커지자 2017년부터 한국도 이란으로부터 수입하는 원유를 줄였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실제로는 연간 1억 배럴 이상을 수입 중이라고 한다.

    26일자 두바이유 가격(배럴 당 73.45달러) 기준으로 계산하면 한국이 이란에서 수입하는 석유 대금은 82억 2,199만 달러(한화 약 9조 2,050억 원)에 달한다. 물론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콘덴세이트(경질유)여서 실제 대금은 이보다 적다. 그러나 이 정도 양의 석유를 다른 곳에서 조달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 또한 석유 공급처를 찾아 헤맬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란에 수출을 하고 있거나 공사 계약을 따낸 기업들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 2017년 한국 기업들의 이란 수출액은 40억 2,100만 달러(한화 약 4조 5,100억 원)이었다. 그러나 이는 이란 핵합의 이후 급증하는 상황이어서 한국 수출기업에 줄 타격은 더 클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구가 알려지자 “제재 예외국 계속 인정을 협의할 것”이라는 답을 내놨다고 한다. 27일 오후 5시 현재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 홈페이지에는 미국의 이란 석유 수입 금지 요구와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이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이날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이 미국의 제재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하려는 협상을 미국과 개시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아직 미국으로부터 이란산 석유수입 전면 중단을 요구받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이란 제재가 현실화되기 전에 조치를 취해 석유수입이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EU를 비롯해 다른 나라들도 미국에게 ‘제재 예외’를 요청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한국이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 ▲ 美인덱스 먼디가 제공한 이란 원유의 배럴 당 달러 기준 가격. 이에 따르면, 이란 원유 가격은 제재가 해제됐을 때는 두바이유보다 낮은 가격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오르고 있다고 한다. ⓒ美인덱스 먼디 화면캡쳐.
    ▲ 美인덱스 먼디가 제공한 이란 원유의 배럴 당 달러 기준 가격. 이에 따르면, 이란 원유 가격은 제재가 해제됐을 때는 두바이유보다 낮은 가격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오르고 있다고 한다. ⓒ美인덱스 먼디 화면캡쳐.
    이란産 원유 대부분이 콘덴세이트…미국産 도입 고려해야

    산업통상자원부가 자신하는 것과 달리 美정부와의 예외 인정 협상이 잘 안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이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데 따르면 한국이 이란에서 수입하는 석유의 70% 가량이 콘덴세이트라고 한다. 셰일 가스와 셰일 오일 소식을 통해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콘덴세이트는 액상탄화수소, 경질유라고도 한다. 이를 정제하면 나프타, 경유, 등유 등 다양한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석유화학업체들은 그동안 카타르産 콘덴세이트를 도입하다가 이란 제재가 풀린 뒤 배럴 당 2달러 가량 저렴한 이란산을 수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매년 이란산 콘덴세이트 수입량이 늘어 최근에는 전체 콘덴세이트 수입량의 54%가 이란산이라고 한다.

    콘덴세이트라면 미국에서도 수출하는데 한국 업체들은 왜 굳이 이란에서 수입하는 걸까. 미국이 수출 중인 콘덴세이트는 황 성분이 적고 배럴 당 운송비가 이란산보다 비싸다. 대신 관세는 0%다. 이란산은 황 성분이 많은 대신 배럴당 운송비가 1.5달러에 불과하다. 대신 관세가 3% 가량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러시아 플랫츠 닷컴, 美인덱스 먼디 등에 따르면 2018년 들어 이란의 석유 가격이 다른 중동 국가보다 더 비싸졌다고 한다).

    한국 업체들은 이 가운데 이란산에 황 성분이 많다는 점에 주목한다. 황 성분이 많은 콘덴세이트에서는 나프타 생산량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반면 미국산은 나프타 생산량은 적어도 경유와 등유를 이란산보다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 한국 업체들은 원유를 수입해 와서 국내 공장에서 정제를 거쳐 해외에 석유제품을 수출하는 형태이다보니 설비가 주로 중동산 콘덴세이트에 맞춰져 있다고 한다.한국 정부는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뒤 업체들에게 미국산 콘덴세이트 수입을 권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소량에 불과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산 콘덴세이트 수급이 줄어든다면 다른 중동 국가와 함께 미국산 콘덴세이트를 수입하는 것도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경유, 등유 가격 인하도 가능해 정부와 업체에게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끝까지 이란산 콘덴세이트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최악의 경우에는 이란으로부터 원유 수입도 못하고 미국으로의 수출길도 좁아져 석유화학제품 수출이 급감하는 것과 동시에 국내 유가까지도 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