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확인도 못해주겠다는 북한, 끌려다니는 정부… 매달 100명씩 만나도 50년 걸려
  • ▲ 지난 22일 금강산 호텔에서 진행된 남북적십자회담. 이 회담에서 오는 8월에 제2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통일부 제공
    ▲ 지난 22일 금강산 호텔에서 진행된 남북적십자회담. 이 회담에서 오는 8월에 제2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통일부 제공
    고작 100명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 남북관계가 '위기'라던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에 추진된 이산가족 상봉 규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 등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남북 평화시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지난 22일 금강산 호텔에서 개최된 남북적십자회담은 오는 8월 20일부터 26일까지 제2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갖기로 합의했다.

    2년 10개월여 만에 재개된 이번 상봉은 최근 남북 관계가 급변하는 가운데 개최되는 행사인 만큼 그 규모나 방식 등에 있어 수많은 이산가족들의 기대감을 모았다.

    ◆ 또다시 시작된 '희망고문'…정례화도 불발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리 남북한이 합의한 상봉 규모는 남북한 각각 100명씩이다. 대한민국에 등록된 이산가족만 5만 7천여 명에 달하는 현실을 감안했을 때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숫자다.

    지난 25일 대한적십자사(한적)는 1차 후보자 500명을 선정하기 위한 추첨을 실시했다. 건강 상태와 상봉 의사 등을 확인해 2차에서 250명을 추려내고, 북한과의 생사확인 절차를 거친 뒤 최종 100명을 선정하게 된다.

    경쟁률만 570대 1에 달하는 이번 추첨은 이산가족들 입장에서 잔인한 '희망 고문'일 수밖에 없다. 2차, 3차에서 탈락하게 될 이산가족들이 느낄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번 상봉 규모는 지난 20차례에 걸쳐 실시된 대면상봉의 평균 규모인 647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매달 100명씩 이산가족이 만나더라도 50년이 걸릴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이산가족 생존자의 85% 이상이 70세 이상의 고령이고 지난 2004년부터 매해 평균 3800여 명의 이산가족이 세상을 떠나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번에 합의한 상봉 규모가 매우 실망스럽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제는 앞으로 희망을 품을 여지조차 남겨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북한 당국은 이번 상봉 개최에는 합의했지만 후속 일정에 대해서는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이른바 '정례화'는 불발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추첨에서 떨어진 대다수의 이산가족들은 기약 없이 다음 합의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다. 

    ◆ 생사확인조차 안 된다는 北, 질질 끌려다니는 南

    한편 대면상봉까지는 아니더라도 화상상봉이나 서신교환 또는 최소한 생사확인이라도 추진해달라는 것이 이산가족의 절실한 목소리다.

    이번 회담에 참석한 우리측 수석대표인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이산가족 근본 문제 해결을 위해 생사확인부터 시작해서 정례적으로 만나고 심지어 성묘까지 가고 화상상봉을 하든지 고향방문단을 만든다는 것까지 쭉 내가 (북측에) 얘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대면상봉을 제외한 다른 방안들은 이번 합의에 담기지 못했다. 북한이 '퇴짜'를 놓은 것이다.

    철저하게 전체 주민을 통제하는 북한의 체제 특성상 서신 교환이나 생사확인은 전혀 어려울 것이 없다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결국 북한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남한 쪽 가족들과의 접촉이 자칫 체제 와해와 북한 주민들의 이탈 가속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북한은 다른 남북한 교류 현안과 달리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지난 1월 문재인 정부에서 처음 열린 남북고위급회담 당시에도 우리측이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의제로 올리려고 했지만, 북한은 '여종업원 탈북' 문제를 거론하면서 난색을 표한 바 있다. 최근에도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개최 시 해당 여종업원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라며 남한 쪽 당국을 압박하기도 했다.

    이처럼 일방적으로 우리 쪽 요구를 거절하면서 생색내기 수준에 그치는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한 북한에 우리 당국이 끌려다니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최근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평화가 무르익고 있다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 달리 이산가족이 처한 현실은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다.

    우리 당국은 앞으로 추가 실무 접촉과 협상을 통해 이산가족 문제를 다룰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현재로서는 그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