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최연소 서울시의원 여명 "한국당, 기득권 지키려다 패배… 원인 모르고 좌클릭하면 미래 없어"
  • 19일 오후 서울도서관 야외옥상에서 여명 자유한국당 서울시의원 당선인이 지방선거 결과와 관련해 견해를 밝히고 있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19일 오후 서울도서관 야외옥상에서 여명 자유한국당 서울시의원 당선인이 지방선거 결과와 관련해 견해를 밝히고 있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희미하게 밝아 오는 무렵이라는 의미를 가진 제 이름 '여명'처럼, 우파 진영의 여명이 되고 싶습니다."

    13일 치러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고개를 떨궜다. 시도지사 선거는 물론이고, 지방권력의 핵심인 시도의원 선거에서도 사실상 전멸했다. 서울시의회의  경우, 전체 110석 가운데 자유한국당은 6석을 건지는데 그쳤다. 그러나 충격적인 참패 속에서도 정치 신인은 탄생했다.

    여명(28·呂明) 자유한국당 서울시의원 당선인. 1991년생인 그는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회 소속 이동현 당선인과 동갑으로 전국광역시도의원 당선인 중 최연소다.

    청년 우파 단체인 한국대학생포럼 6기 회장 출신으로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 위원, 한국당 1기 혁신위원을 지냈다. 이력에서 알 수 있듯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젊은 우파'다. 여명 당선인은 19일 뉴데일리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정치권에 발을 내딛게 된 심경과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밝혔다.

    ◆ 또래와 다른 20대...우파 운동에 청춘 바친 이유는

    아버지가 직접 지어주셨다는 그녀의 이름은 한글 고유명사로 '동트는 새벽'이라는 뜻을 지녔다. 이름보다 더욱 눈길이 가는 것은 그의 이력이다.

    그가 입당한 자유한국당은 2년 전 총선 패배를 거쳐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사상 유례없는 시련을 겪었다. 탄핵 이후에도 한국당은 민심을 등졌다. 계속되는 내부분열 속에서 그들이 내놓은 정책도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가 한국당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여명 당선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유일하게 우파 정체성이 확고한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탄핵 이후 계속되는 내부 분열로 많은 지지자들이 한국당에 등 돌린 것을 안다"면서도 "그럼에도 자유민주주의ㆍ시장경제 가치를 포기하지 않은 유일한 곳이 한국당"이라고 했다.

    여 당선인은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이던 2013년, 한국대학생포럼(이하 한대포) 활동을 시작하며 '자유통일에 기여하는 일'을 자신의 미래 직업으로 택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정치를 전공하다보니, 이념에 기울어진 대학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승만ㆍ박정희 대통령을 근거 없이 비난하고 모욕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울어진 판을 중간으로 돌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각에서는 여 당선인의 배경을 궁금해 하는 목소리도 있다. 소위 '기득권 집안의 자제가 아니냐'는 것. 이와 관련해 그는 "진짜 기득권 집안이라면 굳이 대자보를 작성하고, 1인 시위를 해서  또래들로부터 '새누리(現한국당) 알바냐'고 욕 먹는 일을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 91년생인 여명 당선인. 그는 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역의원 최연소 당선인이 됐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91년생인 여명 당선인. 그는 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역의원 최연소 당선인이 됐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폐허가 된 당...처참했지만, 좌절할 시간도 없어

    내달 1일부터 출범하는 제10대 서울시의회는 한마디로 '민주당 천하'다.

    지방선거 결과 총 110석의 서울시의회 의석 중 민주당은 102석을 싹쓸이했다. 제1야당이라는 한국당은  지역구 3석에 비례 3석, 총 6석이 전부다. 지방자치제 실시 후 특정 정당이 시의회를 이처럼 장악한 경우도, 제1야당이 한 자리 수 의석을 얻은 경우도 유례가 없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은 29석을 얻어 명목상 서울시의회 제2당의 위치를 지켰으나 이제는 교섭단체도 구성할 수 없는 신세가 됐다. 당장 안건 상정 등의 권한도 행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소수정당의 한계 속에서 정치신인인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우파의 가치가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9대 서울시의회에서도 한국당 의석은 민주당의 3분 1 수준에 불과했다. 그래서 민주당발 조례를 막아내지 못했다. 지금은 더 열악한 환경이지만 시정질문을 통해 박원순 시장ㆍ조희연 교육감의 정책을 검증하고 문제점을 공론화하겠다."

    13일 밤 개표결과를 전하던 방송카메라는 눈물을 흘리는 여명 당선인의 모습을 담았다. 이 때문에 그는 선거가 끝나기 전부터 유명세를 치렀다. 그는 당시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처참했다. 우파 이념이 당분간은 당 내부에서도 사형 선고를 받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정말 말할 수 없이 허탈한 마음이 밀려왔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순간에도 "기쁘기보다는 이 폐허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앞섰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민들께서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으로 투표를 하셨고, 그 결과 만들어진 값진 자리라고 생각한다. 정말 뭐라도 해보겠다"고 덧붙였다.


    ◆ "어려도 무엇이 잘못인지는 압니다"

    여명 당선인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SNS를 통해 박원순표 재건축·재개발 정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꼬집었다. 

    그는 최근 용산 상가 붕괴로 불거진 서울시 도시 재생 정책과 관련해 "박원순 시장의 도시를 바라보는 철학이 일천만 인구가 살아가는 수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박원순 시장의 도시재생은 '고장나지 않으면 고치지 않는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박 시장은 개발과 건축을 '죄악'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서울로 7017'과 같은, 만들어지지 말아야 할 다리가 만들어졌다. 앞으로 제 2의 용산 상가 사고가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평양과의 교류'를 말하는 박원순 시장의 행태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지방자치제도가 없는 공산사회주의 북한에서 웬 시장을 찾나. 평양에 시장이 어디 있나. 박원순 시장의 공약에는 평양의 도시 정비 사업을 도와주는 복지 공약이 있는데 아무리 남북간 평화무드라고 해도 당장 서울이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무슨 평양 복지를 논하는지 모르겠다."

    서울시장 3선에 성공한 박원순 시장의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했지만, 그에게도 고민은 있다. '어린 나이에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의심의 눈길 때문이다. 그도 이런 점을 인정했다. 그는 "제도권 안에서 정책을 만들어 유권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폐허가 된 우파 진영의 밑거름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 여명 당선인이 서울시의회 의사당 건물을 배경으로 미소를 짓고 있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여명 당선인이 서울시의회 의사당 건물을 배경으로 미소를 짓고 있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한국당 패배 원인은 3선 이상 중진의 기득권"

    여명 당선인은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한 원인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할 말이 너무 많은데..."라며 잠시 말끝을 흐리던 여 당선인은 "패배 원인을 우파 이념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국당 자체가 구태이고, 3~4선 기득권으로 가득 차 있기기 때문"이라며 "진짜 원인을 놔두고 이유 없이 좌클릭하게 된다면 정말 다음을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히려 그는 "지방선거 참패를 우파 이념의 패배로 인식해서 안 된다. 탄핵정국을 거쳐 우파가 다시 일어서는 과정으로 봐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