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트럼프 독트린' 시험장 되나①/ 미국-북한 모두 이익보는 '윈윈 구도'… 한국에는 치명타
  • ▲ 19일 中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에서 내려 영빈관 댜오위타이로 들어가는 김정은 전용차량. ⓒ연합뉴스-로이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9일 中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에서 내려 영빈관 댜오위타이로 들어가는 김정은 전용차량. ⓒ연합뉴스-로이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정은이 탄 北고려항공 특별기가 19일 오전 9시 30분경 中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에 내렸다. 한국 언론들은 “김정은이 美北정상회담 내용을 시진핑 中국가주석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방중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정상회담에서 나눈 이야기와 공동 합의문은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이 이미 다 공개했는데, 김정은이 굳이 중국을 찾아간 이유는 뭘까. 트럼프 美대통령이 국내 정치권으로부터 무차별 비난을 받으면서도, 공동 합의문을 자랑하고 김정은을 치켜세우는 이유는 뭘까. 이런 점을 놓고 국내외에서는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의 이면 합의가 존재할 것”이라는 추론이 나오고 있다. 이런 시각은 얼마나 타당한 것일까? 美北간 이면 합의가 존재한다면 그 내용은 대체 뭘까. 트럼프 美대통령과 김정은은 귀국한 뒤 각자 큰 만족감을 표시하며 국민들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 이면을 살펴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그림이 그려진다. 

    트럼프와 김정은, 북한 체제 자체를 놓고 '빅딜'?

    14일 JTBC ‘썰전’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는 美北정상회담 공동 선언을 지적하며 "양측 간의 이면합의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난 4월 12일 KBS 집중토론에 출연한 조한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남북 간의 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이 美北정상회담에서도 물밑으로 이면 합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美北간 ‘이면 합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에 대해서는 각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여러 가지 가설을 내놓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눈길을 끄는 것이, 트럼프와 김정은이 ‘북한 체제’ 자체를 협상 대상으로 삼아서 거래를 했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의 핵심은 트럼프 美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너희를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면서 ‘베트남 모델’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즉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해체, 인권 개선 등은 일단 미루고, 우선 ‘친미 국가’가 되라고 제안했다는 추론이다. 이같은 추정의 근거는 베트남 현대사다. 

    베트남은 1986년 공산당 제6차 대회에서 ‘도이모이(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한 뒤 세계 경제에 편입되기 위해 노력했다. 1993년부터는 미국과의 국교를 복원하려 노력하고,  2년 뒤인 1995년 1월 국교 정상화에 성공한다. 이후 베트남은 미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전 세계 다국적 기업의 공장 역할을 수행하며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뤄냈다. 

    2018년 현재 베트남은 한국에게도 매우 중요한 산업기지가 됐다. 특히 삼성전자는 베트남 국민과의 공생 관계로 유명하다. 베트남 정권 입장에서는 여전히 공산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실용주의로 국민들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키는데 성공했다. 오늘날 베트남은 동남아에서 가장 뚜렷한 '친미국가'로 꼽힌다.

  • ▲ 지난 11일 美北정상회담 전날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인근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김정은. 북한 경제발전은 김씨 3대가 이루지 못했던 꿈이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11일 美北정상회담 전날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인근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김정은. 북한 경제발전은 김씨 3대가 이루지 못했던 꿈이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정은에게 "권력과 체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잘 살게 만들어 주겠다"는 제안은 말 그대로 꿈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사례는 베트남 뿐이 아니다. 중국, 폴란드, 舊유고슬라비아 연방 등 여러 곳에서 같은 사례가 있었음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기에 거짓말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북한에는 김일성 때부터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에 이르는 유훈이 있다. “중국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은 밥 한 숟가락 떠먹여주고 곳간을 털어가려는 강도와 다름 없다. 미국을 등지고 중국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간 나라들이 어떻게 쪼그라드는지를 북한은 봤다. 필리핀, 티베트, 대만이 그랬다. 핵무기 문제는 조금 뒤로 미루면서 ‘친미 국가’가 돼라, 그리고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라? 북한에게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어떨까. 북한이 만약 ‘친미 국가’가 된다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해체는 별 일 아닌 것이 된다. 이는 현재 핵보유국인 파키스탄이나 인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인권 문제는 북한이  ‘친미 국가’가 돼서 해이해지면, 추후에 이를 빌미삼아 뒤엎을 수도 있는 이슈다. 과거 그레나다, 파나마, 엘살바도르, 푸에르토리코 등에서 미국은 그렇게 했다. 미국이 참전하는 분쟁이 일어나면 북한군을 활용할 수도 있다. 여러모로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셈이다.

    북한이 깡패국가로 남아야 유리한 중국·러시아·일본

    이 같은 트럼프 美대통령의 제안을 김정은이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면 어떻게 될까? 중국, 러시아, 일본이 앞다퉈 김정은과 만나겠다고 아우성 치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은 서방 세력을 막아주는 ‘완충 국가’였다. 이 완충국가가 친미 국가로 변하는 순간, 아시아 태평양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든다. 중국과 러시아에게는 북한이 계속 ‘깡패 국가’로 남아 있어야 좋다. 그래야만 미국을 움직이는 지렛대로 북한을 사용하면서, 아시아 태평양의 관리자를 자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친미 국가가 되면,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가 사라져 버린다.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보면 의미는 더 심대해진다. 중국과 북한은 해군과 연안 전투함대 기지를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는 푸틴 집권 후 북한 일부 항구를 해군이 사용하도록 계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나진항 일부 부두를 러시아에 50년 동안 빌려주기도 했다. 그런데 북한이 친미 국가가 되면, 이런 지정학적 이점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을 거치는 대륙횡단철도 TCR, 러시아 극동과 시베리아를 거치는 TSR, 중국과 한반도를 잇는 해저터널, 러시아의 미래 먹거리로 주목 받았던 가스 공급망 건설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본 입장에서 북한이 친미 국가가 되면, 지난 70년 동안 공짜로 향유해온 부와 평화를 잃을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일본이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6.25 전쟁 이후 “공산권을 막는 최전선의 후방 군수기지 역할을 맡아 달라”는 미국이 요청이 있었다. 이 역할이 사라지게 되면 일본은 다시 ‘패전국’이자 ‘미국의 경쟁국’이 돼 버린다. 일본에 가장 두려운 상황은 미국과 경쟁상대가 되는 것이다. 기존의 안보 체제는 물론 정치, 사회체제에까지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 ▲ 12일 싱가포르 美北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美대통령의 말을 듣고 활짝 웃는 김정은. 대체 어떤 제안을 받은 걸까.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2일 싱가포르 美北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美대통령의 말을 듣고 활짝 웃는 김정은. 대체 어떤 제안을 받은 걸까.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한이 친미국가 되면 한국은 친중국가로?

    만약 김정은이 트럼프의 제안을 받아들여 ‘베트남식 발전 모델’을 택하고, 친미 국가로 변신할 경우 가장 난감해지는 나라는 사실 한국이다. 한국 내 정치 상황의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에 반드시 ‘완충 국가’를 만들어 놓아야 하는 강대국들의 압력이 우리 한국을 뒤흔들 가능성이 커진다.

    북한이 ‘친미’로 선회하면, 중국은 군사적을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을 외치며 특별한 관계라고 했던 북한이 미국 편에 붙게 되면, 중국은 미국과 일본을 막는 '대타'를 내세우기 위해 한국을 더욱 친중국가화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중국이 북한 대신 한국을 ‘친중 완충 국가’로 만들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은 아직 미국, 일본과 직접 맞설 역량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최소한 2025년까지는 현재 수준의 경제성장을 견지하면서, 군사역량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 이때 방파제 역할을 하는 것이 한반도에 있는 완충 국가다. 중국에겐 이 완중 국가가 필요하다. 북한이 안 되면 한국이라도 상관없다. 

    한국을 친중국가로 만들기 위한 조건은 이미 갖춰져 있다. 중국 공산당에 우호적인 여당이 집권하고 있고,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서 중국을 가장 앞세우려는 행정부가 있다. 유사시 필요하다면 폭동을 일으킬 수 있는 중국인이 150만 명이나 한국에 살고 있다. 주한미군은 한국 내 친중 세력이 알아서 철수시킬 것이다. 

    여론 형성도 문제없다. 한국 여론 주도층에는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이들은 ‘푼돈’만 줘도 움직일 사람들이다. “한국은 친중으로 가야 한다”거나 “故노무현 前대통령께서 외쳤던 동북아 균형자론을 드디어 실현할 때가 됐다”거나 ‘기계적 중립’을 추진하도록 한국인들을 부추길 사람을 구하는 것은 매우 쉽다. 여기에 인기 연예인 몇 명이 끼어 있으면 더 좋다.

    한국의 사법기관, 행정기관, 언론, 학계, 기업에도 중국 편을 드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한국 미디어를 장악한 포털 사이트는 IP 필터링이나 실명확인을 하지 않기 때문에 ‘댓글 공작’으로 여론몰이를 하기도 쉽다. ‘밴드 웨건 효과’가 강한 한국에서 ,강성 여론이 ‘친중’을 주장하고 나서면, 이에 반대하는 저항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은 가능성이 크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한국이 친중국가로 변화하게 되면, 미국의 부담도 줄어들게 된다. 북한이 미국과의 약속을 어기고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을 경우, 상대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미국인과 미군이 빠진 한반도라면, 유사시 무력을 사용해서 미국이 떠안게 될 부담이 줄어든다. 이런 ‘큰 그림’을 일단 ‘트럼프 독트린’이라고 해 보자. 이런 거대한 그림이 트럼프의 장기 전략이라면, 이에 대해 깊이 숙고하는 것은 한국인과 한반도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② 트럼프의‘판’ 갈아엎기…각국 대응전략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