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를 가진 군대와 그렇지 않은 군대‘남북 군사회담’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 과연 ‘국민의 군대’의 갈 길과 믿을 구석은?

    李 竹 / 時事論評家

      “정쩌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시진핑 국가 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2017년 11월 10일 언론 보도의 일부다. 이어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통화에서 북한의 불안정한 핵 계획을 우려하는 한편,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2017년 12월 27일 양키나라 국무부 대변인 성명 내용이다. 그때까지는 그랬다.
      이 나라와 ‘그때는 동맹국’이었던 양키나라, 심지어 뛔국과 로스께까지도 북녘이 핵보유국임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는 누구도 저 시절에 주워섬겼던 말들을 기억하거나 되씹으려하지 않는다. ‘북녘의 비핵화 사기극’이 무대에 오르면서, 그리고 그 무대의 막이 내리고 후속(後續) 사기극이 시작되는 현 시점에서는 어물어물 넘어간다.

      남북 간 두 번의 수뇌회담과 미-북 수뇌회담을 거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연스럽게 ‘핵보유국’ 반열에 오른다. 그 세 번의 회담에서 ‘북녘의 비핵화(非核化)’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로 둔갑하였다. ‘완전한’이 붙건 안 붙건, 그 무슨 CVID라는 문구가 들어갔던 아니던 간에 말이다. 또한 미-북 수뇌회담은 핵보유국임을 헌법에 명기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정상의 국가로 공인·등극시키는 ‘지상최대의 버라이어티 쑈’가 되었다. 그리고...

      갑(甲) : “다시는 이런 회담 하지 맙시다. 귀측 상황 이해는 하는데 앞으로 준비 잘해 이런 일 없게 하자!”
      을(乙) : “군사 현안을 토의하는 과정은 진지하고 어려운 문제다.”
      갑(甲) : “다음번에 또 이렇게 하자는 소리는 아니겠죠, 그만 합시다!”

      엊그제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렸던 제8차 장성급군사회담 마무리 대사였다고 언론은 전한다. 굳이 갑(甲)과 을(乙)이 어느 쪽이라고 밝힐 필요도 없다.
      지난 시절에도 남북 간의 군사회담에서 대표들 간에 얼굴을 붉히며 말다툼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들었다. 또한 남북 간의 각종 회담에서 남녘 대표나 회담 일꾼의 저자세(低姿勢)가 구설수에 오른 적도 꽤 있었다. 북녘 대표단의 삽질도 종종 가십(gossip) 거리가 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군사회담 보도를 접하면서 그저 가끔 있어왔던 돌발 상황이나 북녘의 회담 전술로만 받아들이기 힘든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건 왜일까? 드디어 북녘의 장령[성]들이 군사회담에 나와서 막무가내 똥배짱을 부려도 될 여건과 때가 된 건가? 이제부터 ‘공식·공개적으로’ 핵무기를 손아귀에 쥔, 또한 그걸 공인(公認)받은 두목 휘하의 똘마니들이 벌이는 협박 놀음이 시작되는가? 그저 섬뜩 할 뿐이다.

      요즈음 이 나라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여기저기에서, 시도 때도 없이 ‘평화’를 노래한다.
      핵을 손아귀에 쥔 무리와 ‘공존’(共存)할 수도, ‘상호 교류·협력’ 할 수도, ‘유무상통’(有無相通) 할 수도 있다. 그가 그걸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비릿하게’ 웃는다면, 또는 핵무기를 갖지 않은 측이 “지가 설마 그걸 쓰겠어?”라며 스스로 자위(自慰)하는 순간, 그건 ‘핵 인질’의 평화가 된다. ‘굴종’(屈從)의 평화라고도 한단다.
      핵미사일이 날아다니지 않고, 장사정포가 불을 뿜지 않으면 ‘평화’가 올지도 모른다. 불시에 포격을 하거나 은밀하게 어뢰로 상대방 군함을 침몰시키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 또한 ‘평화’라고 할 것이다. 이런저런 것들이 적(敵)의 선의(善意)에 의한 ‘약속 지키기’가 아니라, ‘전술적 선택’이라 할지라도 ‘평화’라고 부르는 순진이들이 널려있다. 그건 ‘가짜’ 또는 ‘위장된’ 평화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국내외(國內外)의 얼간이·얼치기들이 ‘닥치고 평화’만을 입에 올리면서 북녘 세습독재자에 대한 ‘믿음’으로 들떠있다지만, 그나마 현실을 직시하는 평범한 국민들은 이렇게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북녘 세습독재자가 중시하는 유일한 현실은 무력, 특히 ‘핵 무력’이란 사실을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북녘이 완전한 준비가 되기 전에는 군사적 압박이나 경제 제재로써 그들을 항복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기는 이미 지나고 있지 않는가.”

      이런 가운데...

      딱 부러지게 ‘주적’(主敵)을 적(敵)이라 부르지 못하는, 핵무기는 가질 엄두도 내지 못하는 불운한 ‘군대’... 그 앞날은 어찌 될 것인가.
      더군다나 ‘한때는’ 함께 훈련했던 양키군대마저도 곁을 떠날지 모르는데... 과연 그들이 믿을 구석은 어디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 인질’과 ‘굴종’(屈從)과 ‘위장’(僞裝)의 평화를 거부할 수 있는 이 나라의 마지노선은 ‘국민의 군대’뿐 아니겠는가. 공산전체주의의 침략을 온몸으로 막아낸 전통도 생생하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꽤 많은 ‘국민’들이 아직은 저 가슴 깊숙이에 무한한 믿음과 연민의 정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라도 과감히 비굴한 ‘을’(乙)의 처지를 걷어차라! 사즉생(死卽生)의 결기로 뭉치라! 그것만이 ‘국민의 군대’가 살아나고, 이 나라와 국민이 기(氣)를 펴고 사는 길이 될 것이다.

      “생존의 길은 존재하지도 않는 평화를 요행으로 바라는 그런 따위가 아닙니다... 이 세계에서 나약하다는 것은 노예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난날 공산전체주의의 침략에 맞서 국난(國難)을 극복했던 노(老) ‘국군통수권자’ 이승만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가.

    <이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