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서울 동자·후암동 쪽방촌… 땡볕 더위 속 폐지 줍는 서민들 "여름 대책 절실"
  • 낡고 오래된 건물 창문틀 사이로
    ▲ 낡고 오래된 건물 창문틀 사이로 "쪽방촌"을 암시하는 "월셋방 있습니다"라는 전단이 보인다.ⓒ뉴데일리 김태영 기자
    서울 도심 한복판에 섬 하나가 있다.

    서울역을 크게 둘러싼 용산구 동자동과 그 옆으로 바짝 붙은 후암동이 섬의 희미한 윤곽이다. 이 섬은 여름만 되면 더위에 달떠 밤낮 없이 게슴츠레한 표정을 짓는다. 극심한 피로를 호소한다. 롯데아울렛, 롯데마트 등 대형쇼핑몰이 즐비하고, 거대한 유동 인구가 밤낮으로 움직이는 곳. 화려한 서울 심장부에서 이방인으로 홀로 낯선 이 섬의 다른 이름은 '쪽방촌'이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고온으로 서울 전체가 달아올랐던 지난 7일 오후, 그곳 쪽방촌을 찾았다.

    “뭘 볼게 있다고 여기에 와?”

    서울역 11번 출구로 나와 어렵사리 찾아간 후암로 57길. 추레한 골목을 찾은 외지인의 눈길이 불편한 듯 지나가던 할머니가 물었다. 대낮인데도 골목길엔 인적이라곤 없다. 심드렁한 눈빛의 할머니 외엔 아무도 없다. 낡고 오래된 건물 창문틀 사이로 빼꼼한 “월셋방 있습니다” 전단만이 ‘쪽방촌’의 존재를 넌지시 알려주었다.

    여름은 이들에게 지옥이다. 참기 어려운 땡볕 더위가 몸을 따갑게 하고, 높은 습도와 비위생적인 환경은 마음을 어지럽힌다. 이들에게도 희망이 있을까. 쪽방촌에서 생활한지 10년이 됐다는 할머니는 희망나눔센터에서 영양제, 응급약 지원 등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인근 동자동 쪽방촌 골목길에서 만난 김 모(남, 65)씨도 희망나눔센터를 말했다.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나누어 주니 멀지만 이용해요. 부지런히 가서 생필품을 받아와요.”

    김 씨는 9년째 동자동 쪽방촌에서 생활하고 있다. 연신 담배를 태우는 그에게선 깊은 체념과 가느다란 희망이 동시에 읽혔다.

    서울의 중심부에는 그렇게 남다른 고통과 비애가 어지러운 실핏줄처럼, 골목 사이사이로 뻗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일상을 모른다. 서울역 부근 아울렛에서 쇼핑을 하고 있는 20대 청년들에게 ‘쪽방촌’에 대해 물어보았다.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 곳이 있어요?” 되물었다.
  • 아직 초여름이지만, 쪽방촌 건물 대문들은 대부분 개방돼 있었다.ⓒ뉴데일리 김태영 기자
    ▲ 아직 초여름이지만, 쪽방촌 건물 대문들은 대부분 개방돼 있었다.ⓒ뉴데일리 김태영 기자
    동자동 쪽방촌은 전국 최대 쪽방 밀집지역이다. 거주민 수가 1100여명에 달한다. 쪽방촌 주민들이 많이 찾고 도움을 받는 동자희망나눔센터는 골목 입구에서 2~3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다. 2014년 6월 문을 연 희망나눔센터는 서울시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센터는 주민들의 생활환경 개선과 소외계층의 자활을 지원하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담당자별로 복지·건강·주거 상담 등을 구분해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센터 안에는 카페베네에서 지원하는 희망나눔카페가 있어 커피를 비롯한 각종 음료를 시중가의 절반 가격으로 마실 수 있다. 기자가 찾아간 오후 시간대에도 한 자원봉사단체에서 주민들에게 식료품을 전달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아직 초여름이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쪽방촌 건물 대문들은 대부분 개방돼 있다. 그렇게 열린 문 사이로 지저분한 바닥과 갈라진 장판, 벽지가 보였다. 노출된 가난이다. 내보이는 이들도, 바라보는 이들도 모두 편치 않은 마음일 수 밖에 없다.

    개방된 문 사이로 이 모(남, 69)씨가 나왔다. 그는 쪽방촌에 온 지 2년이 됐다고 했다.

    “군 복무를 하며 눈을 다쳤습니다. 결국 실명까지 하게 되었죠. 다행히 국가유공자로 선정돼 월 160만원 정도를 받습니다. 월세가 20만원, 나머지 돈으로 생활합니다. 쪽방이 불편하긴 해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죠.”

    이 씨에겐 희망나눔센터가 그리 친근하지 않다. 이 씨의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희망나눔센터가 있다. 구불구불 미로처럼 복잡하고 통로가 좁은 골목길을 지나와야만 했다. 경사도 가팔랐다. 곳곳에 계단도 보였다. 특히 몸이 불편한 그에게 센터로 오는 길은 어렵고 험한 길이었을 것이다.
  • 구불구불 미로처럼 복잡하고, 통로가 좁은 쪽방촌 골목길의 모습.ⓒ뉴데일리 김태영 기자
    ▲ 구불구불 미로처럼 복잡하고, 통로가 좁은 쪽방촌 골목길의 모습.ⓒ뉴데일리 김태영 기자
    쪽방촌 주민 일부는 폐지를 수거해 수입을 얻기도 한다. 쪽방촌에서는 폐지가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주변 일대를 아주 멀리까지 돌아야 한다. 하지만 지난 1월 중국의 폐자원 금수(禁輸) 조치로 폐지값이 급락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폐지 10kg를 주우면 1만 2000원을 받았다. 올해는 3000원으로 확 줄었다. 서울역 일대에서 3년째 폐지를 수거한다는 신 모(남, 78)씨는 매일 해가 뜨기도 전인 새벽 5시에 집을 나선다.

    “센터에서 일자리를 주긴 하지만, 모든 주민들이 다 혜택을 받진 못하잖아요. 누군가는 폐휴지를 수거하면서 겨우 버티며 살아갈 수 밖에 없어요”

    그들에게 '희망'은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다. 한여름이 다가 오면 그 희망은 더욱 멀어지기도 한다.

    최근 서울시는 서울역 부근의 노숙인과 쪽방 주민들을 위해 ‘2018 여름철 특별 보호대책’ 가동한다고 밝혔다. 시는 특별대책반을 구성해 폭염 시간대 거리 순찰을 강화하고, 미세먼지 대비책으로 쉼터에 공기청정기도 설치할 계획이다. 희망나눔센터는 몸이 불편한 주민들을 위해 “찾아가는 나눔복지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김인철 서울시 복지본부장은 “민·관이 협력해 폭염으로 인한 건강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챙기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