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없는 지구는 필요 없다" 김정일 때부터 '남조선 씨 말리기' 전략 세워
  • ▲ 2017년 12월 11일 '올해의 인권상'을 수상하는 태영호 前공사. ⓒ뉴데일리 DB.
    ▲ 2017년 12월 11일 '올해의 인권상'을 수상하는 태영호 前공사. ⓒ뉴데일리 DB.
    美北정상회담이 다가오면서 태영호 前영국 주재 北대사관 공사의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태영호 前공사가 최근에 펴낸 책 ‘3층 서기실의 암호’ 또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러나 이 책의 중요 대목 일부는 의외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북한 김씨 일가가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북한이 가진 핵무기를 한국에 사용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다.

    태영호 “내가 대학 신입생 때 일어난 5.18은 인민봉기”

    태영호 前공사가 쓴 책 ‘3층 서기실의 암호’ 곳곳에는 김일성~김정은에 이르기까지 북한 집권자가 핵무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북한의 대외전략 논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그중 하나가 태영호 前공사가 대학생 시절을 회상하는 대목이다. 이 부분에서 태 전 공사는 공산주의자들의 적화 전술인 ‘통일전선전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가 노동당 산하 국제관계대학에 입학하던 해, 한국에서는 5.18이 터졌다. 이 사태는 당시 북한 TV에서도 연일 보도했다고 한다. 태 前공사는 “총을 든 광주 시민들이 트럭을 타고 시내를 질주하는 장면은 북한 대학생들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며 “그때 우리들은 ‘아, 이제 통일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썼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5.18을 ‘광주 인민봉기’, 즉 통일전략전술의 초기 단계에 속하는 상황으로 봤다고 한다. 참고로 ‘통일전략전술’은 보통 인민봉기→ 독재정권 타도→ 친북정권 수립→ 남북통일의 단계로 구분한다. 당시 북한에서는 전두환을 제거하면 남한에 ‘친북정권’이 들어설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1998년 김대중 정권이 출범했을 때 북한은 이를 ‘친북정권’으로 간주했다 한다. "그러나 故김대중 前대통령이 집권 이후에도 북한에 나라를 갖다 바치지 않자, 당시 김정일은 큰 혼란을 겪었다"고 태 전 공사는 썼다.

    "그 결과 북한은 김정일 때부터 통일전략전술을 통한 대남 적화전략을 포기했다"는 것이 태 前공사의 설명이다. "21세기 들어서는 주체사상 추종자나 반체제 세력을 동원해 인민봉기(민중봉기)를 일으켜, 친북정권을 수립하고 적화통일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에게도 더 이상 대남적화전략을 선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태 前공사의 설명은 충격적이다. "김정일은 집권 말기부터 ‘남한 민중’ 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를 없애야 북한 체제가 영원히 생존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노동당에게 ‘남한 민중’은 더 이상 아우르고 가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로 쓸어버려야 할 존재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김정은 정권에게 핵무기는 통일전략 그 자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그의 주장은 “김정은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시위를 보고 ‘남조선 주민도 타도 대상’이라고 말했다”는 2017년 9월 ‘자유아시아방송(RFA)’ 보도 내용과도 상통한다.
  • ▲ 한국 사회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라고 평가하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또한 김정은이 사전에 세운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사진공동취재단-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 사회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라고 평가하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또한 김정은이 사전에 세운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사진공동취재단-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北 핵실험·ICBM 발사·유화 제스처... 모두 계획적

    태 前공사는 "2016년 초부터 시작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 심지어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까지 모두 사전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일 사망 후인 2012년 4월 14일,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를 열고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시했다. 이는 '김일성 탄생 100주년인 2012년을 핵보유 강성대국 진입 원년으로 선포한다'는 김정일의 계획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김정은은 집권 직후 “2015년을 조국통일의 대사변의 해로 만들자”고 주장했다. 이에 맞춰 노동당과 북한군 내부에서는 2015년까지 전쟁 준비를 끝내기로 했다. 김정은은 2013년 3월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을 당 공식 정책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같은 김정은의 계획은 현실적인 문제로 벽에 부딪혔다. 군부대를 시찰해 보니 장비는 낡았고 연료는 다 빼돌려 먹은 상태였다. 병사들은 굶주리고 있었다. 심각한 경제 문제로 120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김정은은 핵무기에 ‘올인’하기로 했다는 것이 태 전 공사의 설명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고모부 장성택이 북한 경제를 실질적으로 장악한 상태였던 것이다. "태 前공사는 김정은이 장성택을 제거한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라고 해석했다.

    태 前공사는 2016년 5월, 36년 만에 열린 제7차 노동당 대회 이후에 北외무성에서 나온 정책 내용도 소개했다. 그는 김정은의 위험한 핵질주가 이때부터 가속화됐다고 지적했다.

    제7차 노동당 대회 이후 北외무성에서는 제44차 대사 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당시 외무상으로 선출된 리용호의 사회로 열린 회의에서는 “핵무력 완성 기간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대북제재는 어느 정도까지 심화될 것인가” “핵보유국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를 두고 논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각국 대사들이 향후 한반도와 미국 정세 예측을 토대로 로드맵을 그렸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北외무성은 대북제재가 장기화되면 북한 경제가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이므로 핵무기 완성을 2016년 하반기부터 2017년 말 사이에 이루고, 그 이후에는 핵실험을 동결해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당시 北외무성은 2016년 11월 실시하는 美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고, 2017년 12월 한국 대선에서 ‘진보 진영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보고, 이 사이인 2016년 하반기부터 1년 6개월 동안에는 두 나라 모두 선거에 매몰돼 있어 미국과 한국 간의 정책 협의가 쉽지 않을 것이며 때문에 대북 군사력 사용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北외무성의 예측은 틀렸다. 美대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됐고, 한국에서는 박근혜 前대통령 탄핵 사태가 일어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에 당선된 것이다. 예측이 어긋나게 되자, 북한은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서두르게 됐다는 것이 태 前공사의 주장이다.
  • ▲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웃으며 악수하는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웃으며 악수하는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태 前공사는 이런 말도 했다. “北외무성 계획에 따르면 2018년은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 하기 위한 평화적 환경조성의 시기로 상정했기 때문에, 평창 동계 올림픽을 전후로 북한이 적극적으로 화해 제스처를 보인 것이다. 북한이 다른 것은 몰라도 핵문제 만큼은 결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절감했으면 좋겠다.”

    “전쟁에서 지면 지구를 깨버리겠다”는 김씨 일가

    태 前공사는 북한이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로 김일성 때부터 김정일에 이르기까지 북한 노동당 내부에서 통했던 사상을 들었다.

    소련이 해체된 해인 1991년 12월 25일 김일성은 북한군 간부들을 모아 놓고 “조국통일을 어떻게 실현 시킬 수 있는가"  "남조선과 미국이 공격해 오면 우리 힘만으로 싸워 이길 수 있겠는가”를 물었다고 한다. 이때 김정일이 벌떡 일어나 “수령님, 우리가 전쟁에서 지면 지구를 깨버리겠다”고 답하자 김일성이 반색을 하며 “우리가 없는 지구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태 前공사는 이밖에도 북한이 영국이나 EU와의 협상에서 '이중 플레이'를 하며 시간을 끈 사례를 소개한 뒤 “한국에 온 뒤 많은 사람들이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이 철수 안 해도 된다고 했던 김정일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에 매우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은 그의 주장은 2017년 11월 1일(현지시간), 그가 美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서 한 진술과 상통한다. 당시 태 前공사는 “김정은은 핵무기 개발을 완료하면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한다는 로드맵을 갖고 있다”면서 “남베트남이 몰락할 때처럼 미군이 철수한 뒤 외국인들이 투자를 철회하면 한국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