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행 공소시효 8월 4일로 끝나... 과거사위 "실체 규명 위해 재수사" 권고
  • 고 장자연씨 영정 사진. ⓒ 사진 뉴시스
    ▲ 고 장자연씨 영정 사진. ⓒ 사진 뉴시스
    100명이 넘는 남성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들의 성매수 의혹으로 번진 '장자연 리스트' 사건 재수사가 사실상 결정됐다. 당장은 공소시효 만료가 임박한 강제추행 혐의에 한정된 결정이지만,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성매수 의혹' 전반으로 재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무부 과거사위원회의 처분은 형식상 '권고'지만,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09년 한 신인여배우의 자살로 촉발된 이 사건은 발생 당시부터 '봐주기 수사' 논란을 초래하며,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과거사위가 재수사 권고 결정을 내린 이상, '성매수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일부 남성의 소환조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사건 발생 이후 시간이 9년 가까이 지났고, 관계자의 진술을 제외하고 물증이 거의 없어, 수사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수사 개시 결정을 내린 주체가 법무부 과거사위원회이고, 별도로 구성된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 당시 수사기록에 대한 사전 검토를 거친 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사정을 참작한다면,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런 류의 사건 수사는 물증보다는, 사건 관계자들이 숨기거나 혹은 왜곡 하려고 하는 사실을 들춰내는, 정교한 수사기법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건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검찰에게 주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법무부 과거사위원회는 28일 오후 '장자연리스트' 사건 중 공소시효가 남은 강제추행 혐의에 대한 재수사를 권고했다. 이에 앞서 대검 진상조사단은 사전 검토 과정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성매수 남성들의 이름이 담긴 문건을 남기고 자살한 고 장자연씨 사건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유력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들의 성매수 혐의이고, 다른 하나는 고인이 2008년경 술자리에서 당했다는 강제 추행 의혹이다. 마지막 하나는 고인이 속한 기획사 대표 및 매니저의 폭행·협박 혐의다. 이 가운데 3번째 사안은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재판으로 실체가 상당 부분 규명됐다. 이 과정에서, 고인이 강요에 의해, 원치 않는 성매매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는 정황도 드러났다. 실제 고인의 유족이 소속사 대표를 상대로 낸 위자료 등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서 항소심 재판부는, “술자리 동석을 자유의사에 의한 것으로만 볼 수 없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남은 두 가지 혐의는 모두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나면서 사건은 종결됐다. 이 가운데 강제추행 혐의는 공소시효가 올해 8월4일로 만료된다.

    대검 진상조사단은 과거사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이 사건 강제추행 부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부실하게 이뤄졌음을 강하게 암시했다. 우선 진상조사단은 당시 적극적인 허위진술을 한 주체가 '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있었던 핵심 목격자의 증언을 허위라고 판단하는 우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진상조사단에 따르면, 특히 검찰은 핵심 목격자의 증언을 허위라고 판단하면서도 그 동기와 관련해 아무런 확인도 하지 않았다.

    진상조사단은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있는 핵심 목격자의 증언을 배척한 채, 신빙성이 부족한 술자리 동석자들의 진술을 근거로 불기소처분을 내렸다”며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짚었다. 진상조사단은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검찰은) 증거를 판단함에 있어 미흡한 점이 있었고, (이는 곧) 수사미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과거사위원회는 “진상조사단이 증거 관계와 진술을 면밀하게 비교·분석했으며, 수사과정에 대한 문제점 지적도 타당하다”고 부연했다.

    위원회가 꼽은 재수사 권고의 이유는 이렇다.
    “공소시효가 임박했으므로 검찰이 재수사를 통해 사안의 실체를 명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

    위 발언은 정부가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즉 장자연 리스트 중 강제추행 부분에 대한 재수사 결정은, 이 사건 전체의 실체 규명을 위한 첫 걸음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