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이 먼저 회담 요청” 北 “美가 먼저 청탁”... 文 중재과정 도마에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건배하는 모습. ⓒ뉴시스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건배하는 모습. ⓒ뉴시스

    미·북 정상회담은 취소됐지만 미(美), 한(韓), 북(北) 득실 계산은 명확히 엇갈린다.

    기싸움과 협상전은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도적으로 정상회담을 취소하면서 어설픈 협상안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대외적으로 알렸다. 무사히 인질을 돌려받았고 표면적이지만 풍계리 핵실험장도 폭파됐다. 또한 중국과 북한이 아직 끈끈한 관계라는 점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김정은 회동 이후 흔들렸던 '북한 비핵화 이슈' 주도권을 움켜쥐면서 재협상 테이블에서 전략적 우위에 서게 됐다.   

    북한 김정은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에게 신경전에선 밀렸지만 이번 기회를 빌어 중국으로부터 경제·군사적 지원 약속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만큼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평가가 많다. 비록 결론이 나진 않았지만 전세계 국가 경쟁력 1위인 미국과 테이블에서 직접 협상 카드를 주고 받은 것은 김정은으로서는 흡족할만한 성과다.

    결과적으로 청와대만 손해본 장사를 한 셈이 됐다.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다.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다. 김정은의 말장난에 뒤뚱뒤뚱 흔들린 것도 모자라 운전대까지 빼앗겼다. 김칫국 외교는 국제적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한·미 정상회담 이틀만에 날아온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은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가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F학점 성적표였다.

    청와대는 벌컥벌컥 김칫국을 들이키다가 사래가 들린 모습이다.

    충격에 휩싸인 청와대는 하루가 지났지만 여전히 그로기(Groggy) 상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하다.

    전문가들은 "부글부글 끓는 기름에 생각 없이 손을 넣었다가 결국 크게 데였다"고 입을 모은다. 야권에선 "문재인 정부의 아마추어 외교가 바닥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미·북 정상회담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접한 24일 밤 청와대는 쇼크에 빠졌다. 관계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진의(眞意)를 파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밤 11시 30분 임종석 비서실장, 정의용 안보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서훈 국정원장,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을 청와대 관저로 불러 심야 긴급회의를 했다. 김의겸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뜻이 무엇인지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고 시도 중"이라는 짧은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는 다음날인 25일도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미·북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은 99.9%"라고 호언장담까지 했던 핵심 관계자들의 체면은 이미 구겨질대로 구겨진 터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북 정상회담 취소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상황이 어려운 만큼 두 정상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서 긴밀하게 대화를 해나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만 했다.

    쏟아지는 다른 질문에는 대부분 모른다며 말을 아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핵(核) 폐기가 아닌 대북 보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대해 미국이 지나치게 앞서간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서도 청와대 관계자는 굳게 입을 닫았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미·북 회담과 관련한 이상 기류는 지난 22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때부터 감지됐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6월 12일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 직후 싱가포르에서 '3자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과 대북 지원책을 제안했지만, 미국 측은 불편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미·북 회담 장소로 최종 결정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싱가포르로 가서 '3자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미국 측은 즉답을 하지 않았다. 이후 워싱턴에서는 "한·미 정상회담 후 백악관은 껄끄러운(strained) 분위기"라는 얘기가 나왔다.

    북한이 김정은의 두 차례에 걸친 방중(訪中) 이후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서자 백악관에서는 '정상회담을 해야 하냐'는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런 백악관의 기류와 달리 한국 측이 지나치게 앞서가는 얘기만 했다는 것이다.

    야권에서는 즉각 "문재인 대통령은 운전대에 앉아서 뭐했나"라는 비판이 나왔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25일 열린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와 진정한 평화가 금세라도 올 것 같았지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어안이 벙벙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 채 덤비기만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자의 오만에 불과하다는 점을 문재인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정상회담 취소는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김칫국 외교와 안보의식도 주된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북 정상회담 취소는 사실상 문재인 정부에 대한 경고"라고 분석하고 있다.

    국정원 대북실장을 지낸 김정봉 한중대 석좌교수는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미국은 북한과 마주 앉아 결론을 내려고 하는데 자꾸 문재인 대통령이 끼어드는 모습이 연출되지 않았나? 특히 북측의 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엇갈린 메시지가 나오는 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 측은 상당한 불만이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봉 석좌교수는 "한·미 정상회담 직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통역하지 말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제스쳐는 단지 외교적 결례가 아니라 연일 북한을 감싸는 한국 정부에 대한 경고로, 만약 문재인 정부가 대북접근법을 수정하지 않는 이상 미국과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합참차장을 지낸 신원식 고려대 연구교수는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북한은 비핵화 의지를 보인 게 하나도 없는데 문재인 정부가 김칫국을 마시지 않았나? 기초 지식도 없는 청와대 측에서 핵동결을 언급할 때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신원식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성과를 내겠다는 조바심이 지나친 나머지 과거 북한에 대한 경험까지도 외면하려는 확증편향에 빠져 망신을 당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망신 주고 이틀 만에 미·북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했는데 이는 청와대의 거짓말을 공식적으로 알리려고 한 의도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거짓말 논란은 이제 시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북 양측에 끼어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앞서 북한 외무성 최선희 부상은 24일 펜스 미국 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으면서 "저들(미국)이 먼저 대화를 청탁하고도 마치 우리가 마주 앉자고 청한 듯이 여론을 오도하고 있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라고 했다.

    최선희는 또 "우리는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으며 미국이 우리와 마주 앉지 않겠다면 구태여 붙잡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앞으로 쓴 공개서한에서 "우리는 이번 회담을 북한이 요청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상호 배치되는 발언들이다.

    시선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쏠린다. 양측을 중재한 이는 다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이다.  

    조셉 윤 전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미국과 북한이 대화를 하기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가 큰 역할을 했지만 한국이 양쪽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과장이 있었고 이로 인한 오해가 불거졌다"고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