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38노스 “취재진 전망대 서쪽 갱도 위쪽 산에”…방사능 오염 여부도 확인 어려울 듯
  • ▲ 美38노스가 지적한 풍계리 핵실험장 외신취재 전망대 시설. ⓒ美38노스 관련보고 화면캡쳐.
    ▲ 美38노스가 지적한 풍계리 핵실험장 외신취재 전망대 시설. ⓒ美38노스 관련보고 화면캡쳐.
    美스팀슨 센터 산하 북한전문연구매체 ‘38노스’는 지난 18일(현지시간) “5월 15일 풍계리 핵실험장 일대를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서쪽 갱도와 인접한 산등성이에 관측용 전망대로 추정되는 시설물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북한은 지난 16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취재 등에 대한 실무를 논의하려던 남북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뒤 연일 한국과 미국을 비난했다.

    지난 18일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취재하려는 미국 언론들에게는 “22일 오전 11시까지 中베이징 소재 북한 대사관에 와서 입국 비자를 받으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한국 언론들의 취재진 명단 접수는 21일 현재까지 거부하고 있다.

    과연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비핵화의 첫 단추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2008년 6월 27일 미국 등 해외 7개 언론사를 불러 멀찍이서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던 ‘쇼’를 재현하려는 걸까. 지금까지 북한의 태도를 보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는 비핵화의 시작일 수도 있지만 ‘마지막’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의 의문점

    북한은 지난 4월 21일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라며 “함경북도 길주군 북부 핵실험장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핵무력의 완성에 따라 그 임무를 다한 핵실험장을 폐쇄한다”면서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 해외 전문가와 기자들을 부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미국, 한국, 일본 등 한반도 당사국뿐만 아니라 유엔 산하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IAEA),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 등 북핵을 지켜보던 국제기구들도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에 기대를 품었다.

    북한은 그러나 지난 5월 12일 외무성 공보를 통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일정을 발표하면서 해외 언론의 취재는 허용했지만 전문가 초청은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의 소리’ 등 해외 언론에 따르면, IAEA나 CTBTO 측 모두 북한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 ▲ 21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中베이징으로 떠나는 한국 공동취재단. 이들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취재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1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中베이징으로 떠나는 한국 공동취재단. 이들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취재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한은 외신 취재에 대해서도 제한을 뒀다. 한국과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의 언론들만 취재가 가능토록 했다. 이후 남북한 간의 연락 과정에서 밝혀진 것이지만 한국 언론은 통신사 1곳과 방송사 1곳만 취재가 가능하다고 통보했다. 2개 언론사는 각 4명씩 모두 8명의 취재진만 보낼 수 있게 했다.

    북한은 그러나 지난 16일 남북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뒤 한국 취재진 명단 접수마저 거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21일 오전 한국 공동취재단이 中베이징으로 출발할 때 정부가 북측에 취재진 명단을 보내려 했으나 또 거부당했다고 한다. 즉 북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로부터 가장 큰 위협을 받고 있는 한국과 일본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취재에서 배제당한 것이다.

    방사능 측정 여부는? 실시간 중계 불허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美38노스의 위성사진 분석 결과를 보면서도 궁금증이 생겼다. 미국과 영국, 중국, 러시아 취재진이 풍계리 핵실험장에 가서 동서남북의 갱도를 폭파하는 모습을 촬영할 예정이다. 그런데 취재진이 위치할 것으로 추정되는 전망대와 갱도 사이의 거리가 적어도 몇 백 미터는 돼 보인다. 갱도가 제대로 붕괴되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를 떠올리게 한다.

    美38노스는 “해당 전망대에서 보면 핵실험장이 위치한 만탑산의 일부분만 보인다”고 지적했다. ‘구글 어스’를 통해 해당 지역의 3D 지도를 찾아보면 북한이 건설 중인 전망대의 시야는 북쪽, 서쪽, 남쪽 갱도와 주변 일부로 제한돼 있다는 美38노스의 말을 확인할 수 있다.

    외신 취재진들이 방사능을 측정하는 가이거 계수기 등을 지참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만약 북한 당국이 이런 장비를 압수한다면, 또는 가이거 계수기로 주변을 측정했을 때 오염된 정황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에도 논란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외신 취재진들이 ‘드론’ 사용을 요청할 때 북한이 어떻게 대응하는가도 관심사다. 美38노스의 지적처럼 해발 2,204미터에 달하는 만탑산 8부 능선에서 주변 능선 아래에 있는 갱도 폭파를 지켜보는 것이어서 높은 고도에서의 촬영도 필요하다. 외신들은 이럴 때를 대비해 ‘드론’을 활용한다. 북한이 만약 외신 취재진의 ‘드론’ 사용을 불허한다면, 이 또한 의심을 살 수 있다.

    외신들의 실시간 중계를 불허한 이유도 의문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언론은 분쟁 지역 취재 등을 이유로 휴대용 위성 전송장비를 갖추고 있다. 이를 사용하면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쇄하는 장면을 전 세계에 송출할 수 있고 김정은 정권의 대외 선전에 매우 유리한 데 왜 불허했을까. 북한은 왜 외신 기자들에게 취재 후 특별열차를 타고 원산으로 돌아가서 그곳의 프레스센터를 이용해 송고하라고 강요할까.
  • ▲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서쪽 갱도 윗부분에 만든 전망대의 시야와 사각. 녹색 부분만 시야에 들어온다고 한다. ⓒ美38노스 관련보고 화면캡쳐.
    ▲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서쪽 갱도 윗부분에 만든 전망대의 시야와 사각. 녹색 부분만 시야에 들어온다고 한다. ⓒ美38노스 관련보고 화면캡쳐.
    트럼프 “We'll have to see”와 예사롭지 않은 주장들

    북한이 외신들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취재가 며칠 남지 않은 지난 16일 이후 연일 한국과 미국을 비난하며, 특히 미국을 향해 “리비아식 비핵화 운운할 경우 美北정상회담을 재고할 수 있다”고 협박하자 한국 언론들은 “북한이 트럼프를 압박했다” “북한의 거센 반발에 미국이 긴장했다”는 식의 보도를 내놨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이 실제 기자들 앞에서 한 말은 북한은 물론 한국과 중국을 달래는 듯한 내용이었다. 트럼프 美대통령은 또한 말끝에 계속 “한 번 두고 보자(We’ll have to see!)”는 표현을 붙였다.

    ‘두고 보자’는 단어는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뒤 매일 들을 수 있는, 애매모호한 뜻의 단어여서 해석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美대통령의 측근 또는 공화당 내 우군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북한은 물론 한국까지 긴장케 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가장 최근에는 美공화당 중진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美폭스뉴스 선데이에 출연한 린지 그레이엄 美상원의원(공화, 사우스 캐롤라이나)은 “美北정상회담이 취소되면 결국 충돌의 길로 가게 될 것”이라며 “주한미군 가족들을 한국에서 대피시켜야 할 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21일 보도한 데 따르면, 린지 그레이엄 美상원의원은 이날 “며칠 전에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다”면서 “북한이 시간을 끌려고 하거나 김정은이 회담장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또는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을 갖고 놀려고 한다면 유일하게 남는 것은 군사적 충돌뿐”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그레이엄 의원은 “북한은 과거에도 핵포기를 약속해 놓고 실제로는 핵무기를 만들었던 전례가 있다”면서 “지난 30년 동안 계속된 북한의 행태는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인) 2020년 이전에 어떤 식으로든 끝날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 ▲ 지난 14일 출판 간담회에서 북한 실태를 설명하는 태영호 前공사. ⓒ뉴데일리 DB.
    ▲ 지난 14일 출판 간담회에서 북한 실태를 설명하는 태영호 前공사. ⓒ뉴데일리 DB.
    그레이엄 의원은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윈-윈 방식’을 선호하며, 김정은 정권을 교체하려는 것도, 한반도를 통일하거나 북한에 자유민주주의를 퍼뜨리려고 시도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한 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와는 다르며 (미국을 갖고 놀려는) 그런 상황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경고했다고 한다.

    태영호 前공사 “비핵화 관련 북한의 전략은 시간끌기”

    지난 14일 국회에서는 태영호 前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책 ‘3층 서기실의 암호’ 출간 기념 간담회가 있었다. 562쪽 9개장으로 구성된 책의 초반에는 그가 직접 겪은 북한의 외교전술이 나온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김정일과 김정은, 북한 외교정책의 수뇌부들이 25년 전부터 ‘비핵화’를 시간 끌기 명분으로 악용해 왔다는 점이었다. 1991년 남북 비핵화 선언 때도, 한반도 평화협정 제안 때도,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도, 2000년부터 시작된 ‘햇볕정책’ 시절과 참여정부 시절, 2006년 9월 1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와의 갈등 속에서도 북한은 계속 ‘비핵화’라는 단어로 시간을 끌어 왔다고 주장했다.

    태영호 前공사는 김일성 시절인 1956년 핵 관련 기술을 배우겠다고 나서고 1962년에 영변 핵시설을 만든 북한이 이처럼 쉽게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정은은 자신의 체제 유지를 위해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CVID)’ 비핵화는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했다. CVID 비핵화의 핵심은 무작위 사찰인데 이 경우 정치범 수용소, 아동 학대 등이 드러날 가능성 때문에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태영호 前공사가 귀순한 뒤 김정은이 대외전략과 핵전략을 모두 뒤집었을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렇다면 김정일 때부터 김정은까지 이어졌던 핵관련 행태들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와 그 이후의 모습을 예측하는 거울이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