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검증 없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쇼인가 진심인가?

美백악관·국무부 “전문가 사찰 필요”…전문가·정보기관 “단순 폐쇄, 北에 속을 수 있어”

전경웅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05.16 14:04:40
▲ 2008년 6월 27일 실시했던 영변 냉각탑 폭파. 그러나 이는 곧 사기로 밝혀졌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한이 오는 23일부터 실시할 예정인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와 관련해 전문가는 초청하지 않고, 현장 취재도 자신들이 지정한 매체에만 허용하겠다고 밝히자 한국과 미국에서는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가 쇼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美정부는 “전문가의 현장 사찰과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풍계리에 전문가들이 직접 갈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지난 15일(현지시간) “美국무부가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 계획을 환영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미국의 소리’ 방송에 따르면, 캐티나 애덤스 美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전화 통화에서 “전문가들이 풍계리 핵실험장 현장을 사찰할 수 있고, 완전히 확인할 수 있고 영구적이며 되돌릴 수 없는 폐쇄 조치를 취했다고 확인하는 것이 북한 비핵화의 중요한 단계”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캐티나 애덤스 美국무부 동아태 담당 대변인은 또한 “이전의 비핵화 협상은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이어서 모두 실패했다”면서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같은 날 ‘미국의 소리’ 방송은 “백악관은 北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외부 전문가들의 참관이 필요하며 구체적인 검증 절차가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계획은 환영하지만, 국제 핵전문가들에 의한 사찰이 이뤄지고, 완전한 확인 절차가 가능해야 하며, 이것이 북한 비핵화의 주요 절차”라는 美백악관 관계자의 이야기를 전했다.

美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15일(현지시간) “북한 당국이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하는 조치가 의미는 있지만 되돌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美정보기관 관계자의 지적을 전했다.

美‘디플로맷’에 따르면, 첩보위성과 비밀 드론을 사용해 전 세계에서 이미지첩보(IMINT)를 수집하는 美‘국가지형정보국(NGA)’과 인간첩보(HUMINT) 역량이 강한 美국방정보국(DIA)이 북한 핵개발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이들이 내놓은 보고서 내용을 인용했다.

이 가운데 美NGA는 “북한은 오는 23일부터 25일까지는 갱도 안에 폭발물을 설치해 붕괴시키는 방식으로 불능화 작업을 할 예정인데 외국 취재진이 오기 전에 미리 관측소와 관련 시설 일부를 철거했다”면서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의 시설을 철거하고 갱도를 폭파한다고 해도 사용가능한 상태로 되돌리는데 시간은 걸리겠지만 몇 주 또는 몇 달이면 복구가 가능하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美ISIS 소장은 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숨기는 것이 없도록 반드시 국제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증단이 현장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디플로맷’은 “김정은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와 같은 국제 핵에너지 감시기구에게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CTBTO에 따르면 아직도 초청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면서 “21세기에도 공개적인 핵무기 실험을 하는 유일한 나라인 북한은 아직 핵실험 금지조약에 가입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美‘디플로맷’은 또한 “북한은 핵무기 연구소에서 주도하는 ‘임계 전 핵실험(Subcritical nuclear test)’과 관련해서는 어떤 양보도 하지 않고 있다”면서 “북한은 이 연구소에서 핵무기 관련 실험을 계속함으로써 핵전력을 더욱 고도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美‘디플로맷’이 지적한 ‘임계 전 핵실험’은 플루토늄을 핵분열 연쇄 반응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초고온·초고압을 가해 무기화 정보를 얻는 실험을 의미한다. 세계 주요 핵보유국들은 20세기 말부터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함께 ‘임계 전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해외 핵무기 전문가들 또한 美정부나 정보기관, ‘디플로맷’과 거의 같은 의견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지난 15일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美‘과학국제안보연구소’ 소장과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올브라이트 ISIS 소장은 “북한이 2006년부터 6차례나 핵실험을 실시한 풍계리 핵실험장은 북한의 핵프로그램 규모, 자원, 기록 등을 살필 수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하다”면서 “핵 전문가 팀이 풍계리에 가서 핵실험 장소를 시추해 시료를 채취해야만 북한이 사용한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HEU)의 규모를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브라이트 ISIS 소장은 “북한이 핵무기용 우라늄을 실제로는 20kg 생산해서 10kg만 썼다고 신고할 경우 국제사회는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서 “따라서 북한이 숨기는 것이 없도록 반드시 국제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증단이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브라이트 ISIS 소장은 “특히 핵실험에 사용된 물질의 양을 알아내 북한이 신고한 핵물질 제조 총량과 비교해야 제대로 된 비핵화 검증이 가능하다”면서 “핵 전문가가 없을 경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는 검증 없는 폐쇄에 그치고 북한이 거짓 신고를 해도 속수무책”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 2007년 IAEA 대표단으로 방북했을 당시의 올리 하이노넨 前IAEA 사무차장.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때 전문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에는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IAEA)  전직 고위 관계자도 동의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15일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때 IAEA나 CTBTO 관계자들이 초청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핵화 조치의 검증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됐다”면서 올리 하이노넨 前IAEA 사무차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인터뷰에서 하이노넨 前IAEA 사무차장은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조치에 대해 “북한이 정치적 선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제대로 된 핵실험장 폐쇄 검증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하이노넨 前IAEA 사무차장은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핵폐기는 단순히 핵실험장의 갱도를 폭파하고 빌딩을 폐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작업을 필요로 한다”면서 “美北정상회담이 열리면 북한이 이행하려는 비핵화가 무엇인지, 어느 지역에서 핵폐기가 이뤄질 것인지 등을 결정하고,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해 많은 기술적 정보를 제공받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이노넨 前IAEA 사무차장은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때 CTBTO 관계자를 초청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관대하게도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면서도 “이번 일에서 중요한 점은 핵실험장 갱도 폭파와 폐쇄이고 IAEA 등은 나중에 검증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하이노넨 前IAEA 사무차장은 그러나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해야 한다”며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를 콘크리트로 막고, 현장의 모든 시설까지 제거하는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실험을 통해 얻은 자료도 모두 제공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핵실험장 폐쇄 이후에도 오랜 기간 감시하고 기술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와 관련해 IAEA나 CTBTO를 초청했다는 소식은 16일 현재까지 들리지 않고 있다. CTBTO의 엘리자베스 베히터 수석 대변인은 지난 14일 ‘자유아시아방송’ 측에 “북한 측의 요청을 아직 못 받았다”고 답변했고, IAEA 측 또한 “다른 정보가 논평을 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하이노넨 前IAEA 사무차장의 지적처럼 풍계리 핵실험장의 갱도 파괴는 핵실험장 폐쇄의 첫 단계여서 핵 전문가가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김정은의 비핵화 조치는 그 다음 조치에서부터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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