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인권-국군포로-납북자 외면한 '평화'

'페인트 칠한 평화' '입술위의 평화'...무엇을 위해서?

류근일 칼럼 | 최종편집 2018.05.16 11:15:43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왜 자기 희곡 '존 왕(王)'에 등장하는 콘스탄스의 입을 빌려 '페인트칠한 평화'란 말을 만들어 썼는지는 문외한으로선 알 수 없다. 

평화엔 진짜 평화와 가짜 평화가 있다는 뜻이었을까? 


마하트마 간디도 윌슨 미국 대통령의 파리 평화 회의를 위선적 평화로 보았다. 군비 확장에 몰두하는 서양 강대국들의 '입술 위 평화'가 무슨 평화냐는 것이었다.

2016년 9월,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카불의 도살자'로 알려진 탈레반 학살자 굴부딘 헤크마티아르와 그 무장 단체 헤즈브이 이슬라미를 사면했다. 평화를 위해 평화의 도살자를 합법화한 것이다. 그들의 행적은 끔찍했다.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포격, 지식인 암살, 반대자 무자비 제거, 여성에 대한 염산 테러, 비밀 고문실 운영 등.

여론은 둘로 갈렸다. "이제는 동물도 평화를 원한다"는 불가피론, 그리고 "그는 정직하지 않다. 그는 자살 특공대를 계속 길러낼 것"이란 회의론도 있었다. 가짜 평화를 우려한 것이었다.

한반도에서도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평화를 위해' 김정은을 일약 스타 연예인으로 띄워 주었으니 말이다. 김정은은 누군가? 그는 연평도를 무차별 포격했다. 자기 고모부를 포살(砲殺)하고 이복형을 독살했다. 국제 인권 단체 휴먼라이트 워치의 2016년 북한 인권보고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북한은 반(反)국가 사범으로 몰린 사람들과, 어린이를 포함하는 그 가족을 수용소로 보낸다. 경비병은 수감자에게 성적 폭력, 구타, 고문을 자행한다. 아사(餓死), 척추가 휘는 강제 노역, 공개 처형이 일상화돼 있다. 의료 시책은 전무(全無)하다. 유엔 당국자는 8만~12만명이 정치범 수용소에 있다고 했다."

 이쯤 되었으면 김정은과 '카불의 도살자'는 난형난제(難兄難弟)인 셈이다. 이럼에도 여론조사 응답자 83%가 판문점 선언 등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지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동물도 평화를 원한다"는 불가피론과 희망 사항이었을까?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17%는 "김정은은 정직하지 않다. 그는 북한 주민에 대한 폭정과 '남조선 혁명'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불신할 수 있다. 정부는 그런 소수 의견도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 판문점 선언이 참된 평화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17%는 83%에 비하면 소수다. 그러나 자유민주 정치에선 소수도 그들만의 고유하고 막중한 역할이 있다. 성찰하고 숙고(熟考)하고 일깨우는 일이다. 이를 위해 17%의 양심은 '판문점 시국'의 83%가 외면하고 파묻어버린 것을 예리하게 집어내 쟁점화해야 한다.

'판문점 시국'이 외면하고 있는 것, 그것은 북한의 처참한 인권 상황이다. 동요 계층과 적대 계층으로 찍힌 '북한의 유대인'들, 두만강 건너다 총 맞아 죽고 성경(聖經) 읽었다고 짓이겨져 죽고 한류 동영상 보다가 관리소로 끌려가는 북한 동포들, 그리고 중국에서 인신매매 당하는 북한 여성들. '판문점 시국'의 그 어느 '진보' 운동가가 이들을 위해 종을 울렸나?

아오지 탄광에서 평생을 산 국군 포로들, 납북자들과 그 가족들, 연평해전·천안함 전몰장병과 그 유족들, 이런 우리 쪽 희생자들도 오늘의 '판문점 시국'에선 아예 투명인간이다. 통일부는 유경식당 종업원들의 북송 여부를 '면밀히 검토' 했다. 가면 죽는데, 대한민국 당국 맞나?

북한의 목소리 없는 사람들과 남한의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의 참담함을 이렇듯 묵살한 채 추구하는 평화, 북한판 마셜 플랜, 신(新)북방정책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아우슈비츠에 축복을? 빅 브러더(大兄)에게 월계관을? 이래도 괜찮은가?

'판문점 시국'이 파묻어버린 것, 그것은 평화가 요구하는 북한 변혁의 당위성이다. 평화를 위해 남한의 '적폐 세력' '보수 패당'을 궤멸해야 한다는 소리는 요란하다. 그러나 평화를 위해 북한의 오웰리안 체제(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그린 24시간 감시·통제 체제)를 변혁해야 한다는 소리는 없다.

영국의 체임벌린은 히틀러에게 평화를 기대했다. 우리도 수용소 군도(群島) 총책임자에게 평화를 기대하고 있다. 이게 만약 김정은과 남한 운동권이 합세해 북쪽의 동요 계층과 적대 계층을 계속 소외시키고 남쪽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어내려는 평화라면, 그것은 셰익스피어가 말한 '페인트칠한 평화'가 될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달라야 한다.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 /2018/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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