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이 核 가진 게 무슨 문제냐' 의식 만연하는 날 올 수도 있어 우려스럽다"
  • 태영호 전 주영북한공사가 14일 오후 의원회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 도중, 북한 서기국의 위상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파워포인트 자료를 통해 북한 권력구조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태영호 전 주영북한공사가 14일 오후 의원회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 도중, 북한 서기국의 위상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파워포인트 자료를 통해 북한 권력구조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태영호 전 주영북한공사가 북핵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경제제재와 군사적 압박이 필요하지만, 이것은 우리 정부와 국민, 미국까지도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북핵은 완전한 핵폐기가 아닌 비핵화로 포장된 핵감축 선에서 정리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북한 김정은은 중국·베트남식 개혁·개방 모델이 아닌, 개성공단식 경제특구를 늘리는 방식으로 경제 재건을 시도할텐데, 이에 선행해서 관광산업을 대규모로 일으켜 북한 투자에 대한 경계감을 희석시키려 할 것으로 예상했다.

    태영호 전 공사는 14일 오후 의원회관에서 증언록 〈3층 서기실의 암호〉 출판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어, 북한의 비핵화 이행과 향후 북한 사회의 변화와 관련한 자신의 견해를 설명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태영호 전 공사는 "CVID(검증가능한 비가역적 핵폐기) 원칙은 강제사찰과 무제한접근이 핵심인데, 김정은이 보장을 요구한 북한 체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며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하고 완전한 핵폐기,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이어 "북한 핵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바란다면 지속적인 경제 제재와 군사적 압박을 통해서 끝까지 밀고나가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면서도 "평화를 깨면서까지 북핵을 해결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지지하지 않고, 정부나 미국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그러므로 "완전한 핵폐기가 아니라 비핵화로 포장된 핵보유국이 종착역이 아니겠는가"라며 "북핵의 위협을 감축하고 감소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처럼 일단 핵무력을 완성하고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미북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의 외피를 쓰고 이를 인정받으려 하는 김정은의 다음 수순은 '선관광 후경제특구 방식'의 경제 개발 정책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태영호 전 공사는 "북한은 개성공단을 10여 년간 운영하면서 북한 시스템의 근간에 딱 맞는다고 확신했다"며 △자유로운 이동 금지 △외부 정보 접근 차단 △조직적 감시·통제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5만 명의 근로자가 아침에 들어갔다가 저녁에 나오면 바로 보상이 이뤄지기 때문에, 북한의 정치조직에서 활동하지 않으면 (개성공단에) 들어가서 일할 수가 없다"며 "북한에서 개성시만큼 질서가 정연하고 치안이 유지되며 모든 정치조직의 기능이 살아서 움직이는 곳이 없다"고 증언했다.

    따라서 북한은 주민에 대한 감시·통제가 어렵고 외부 정부에 노출되는 중국·베트남식 개혁·개방모델보다는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특구를 늘리려 하겠지만, 이에 앞서 관광산업을 먼저 활성화하는 '선관광 후경제특구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았다.

    그 이유에 대해 태영호 전 공사는 "지난 10년간 개성공단이 중단과 폐쇄를 거쳤기 때문에 기업가 입장에서는 (북한에 투자하기가) 불안하다"며 "김정은이 '오세요 오세요' 해도 투자할 사람이 없다"고 짚었다.

  • 태영호 전 주영북한공사가 14일 오후 의원회관에서 열린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날 출간된 자신의 증언록 〈3층 서기실의 암호〉를 소개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태영호 전 주영북한공사가 14일 오후 의원회관에서 열린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날 출간된 자신의 증언록 〈3층 서기실의 암호〉를 소개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그렇기 때문에 "명사십리와 갈마반도 등 갈마지구 관광과 금강산 관광을 결합시켜서 한 2~3년 관광객들이 마음대로 오가게 하면, 신뢰를 얻어서 한국 기업들도 점차 투자를 할 것"이라며 "선관광 후경제특구 방식은 치밀한 계산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관광대국 스위스에서 유학 시절을 보낸 김정은은 부친 김정일과는 달리 집권 첫날부터 관광산업에 호의적이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태영호 전 공사는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공부하면서 보니, 스위스는 산과 눈밖에 없는 나라지만 남들에게는 돌밖에 안 보이는 절벽에다가 케이블을 놓고 외국 사람들을 올라가게 만들면서 큰 돈을 벌더라"며 "관광을 하는 길이 빠른 시일 안에 돈을 버는 방법"이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김정은의 지시를 받자 "북한은 지난 시기(에 했던 것처럼) 체제 선전을 위주로 했지만, 김정은은 '그렇게 해서는 돈을 벌 수 없다'고 했다"며 "최근에는 낡은 소련 비행기와 직승기(헬리콥터)를 가지고 돈을 번다"고 밝혔다.

    실제로 북한은 최근 안토노프와 투폴레프, 일류신 등 구 소련 시절에 개발돼 현재 세계 다른 나라에서는 모두 퇴역한 낡은 항공기를 가지고 관광상품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김정은의 아이디어라는 것을 태영호 전 공사는 밝힌 것이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태영호 전 공사는 "저런 낡은 비행기를 가진 나라는 북한 밖에 없으니 에어쇼도 하고 하면 사람들이 올 것"이라고 김정은이 지시했다며 "반신반의하면서 해봤는데 정말 오더라"고 전했다.

    아울러 "북한은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스탈린주의 국가인데, 언제 망할지 모르니 지금 가지 않으면 다시는 평생 스탈린주의 국가를 볼 수 없다"는 관광문구로 호객하고 있는 베이징 고려투어를 예로 들며 "옛날 같으면 큰일날 소리인데, 돈만 번다면 그 방향으로 간다"고 설명했다.

    다만 태영호 전 공사는 이러한 '선관광 후경제특구 방식'이 진행되는 와중에 우리 국민의 북한 왕래가 늘어날텐데, 그 과정에서 북한이 진정한 핵폐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안보 의식이 흐려지는 상황이 올 것을 우려했다.

    태영호 전 공사는 최근의 남북 유화 국면과 관련해 "분단된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으니 북한 지도부와 대화도 하고 때로는 손도 잡아야 한다"면서도 "(유화 국면에서) 우리 기저에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김정은이 아주 쿨하고 결단력 있고 핵을 폐기할 것 같은 과감한 모습을 보이니 북한이 달라질 것이라는 의식이 만연하게 된다면 '핵 있는 공존'의 방향으로 한걸음 한걸음 가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며 "북한 체제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어지면서, 중국도 러시아도 핵을 가지고 있는데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 게 무슨 문제냐는 의식이 만연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간담회 내내 태영호 전 공사는 가급적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려 노력했지만, 이처럼 우리 국민이 북의 핵보유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를 잊어버릴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는 "이것을 내가 제일 우려하고 있다"고 이례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