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란핵협정 탈퇴 ②] 이란 유예 기간 후 제재하기로…중국 등 투자국 손실 불가피
  • ▲ 지난 8일(현지시간) 美씽크탱크 '내셔널 인터레스트'가 게재한 이란핵협정 탈퇴 시 전쟁 가능성 분석기사. ⓒ美내셔널 인터레스트 관련기사 캡쳐.
    ▲ 지난 8일(현지시간) 美씽크탱크 '내셔널 인터레스트'가 게재한 이란핵협정 탈퇴 시 전쟁 가능성 분석기사. ⓒ美내셔널 인터레스트 관련기사 캡쳐.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이 지난 8일 오후 2시(현지시간) “이란핵협정에서 탈퇴한다”고 밝힌 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미국의 이란 침공 가능성 등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란핵협정 탈퇴 선언 이후 세계 금융시장이나 원자재 시장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전쟁’ 가능성은 없는 걸까. 지금까지 나타난 사실만으로 본다면 전쟁 가능성은 오히려 줄었다.

    “트럼프가 이란핵협정 탈퇴하면 세계대전”

    미국에서는 트럼프 美대통령이 ‘이란핵협정 탈퇴’의 뜻을 밝힌 뒤부터 “트럼프가 마음대로 행동하면 이란과의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이 퍼지기 시작했다. 미국이 이란핵협정을 탈퇴한 뒤 이란 핵무기를 제거한다며 침공하고, 이란이 반격하면서 중동 전체가 전쟁에 휩싸일 것이며, 결국 세계대전으로까지 번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미국이 이란을 침공할 가능성은 오히려 적게 보는 시각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금융시장과 원자재 시장, 각국 증시 반응 등이 그렇다.

    트럼프 美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이란핵협정 탈퇴를 선언하던 시간을 전후로 美다우존스 지수와 나스닥은 잠깐 출렁인 뒤 약보합세로 마감했다. 같은 날 독일 DAX 지수와 프랑스 CAC 지수, 일본 니케이 지수는 하락세를 보였다. 9일 현재 한국 코스피는 하락세, 코스닥은 상승세로 전환했다.

    중동 정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석유시세도 큰 변화가 없었다. 서부텍사스중질유(WTI)와 두바이유, 북해 브랜트유 가격은 소폭 하락했고, 금 시세는 약보합세를 보였다. 달러 인덱스는 소폭 상승했다.

    왜 이런 상황이 나타났을까.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증시가 약세를 보인 것은 미국의 이란핵협정 탈퇴에 부정적인 세력들이 풋옵션을 사용했다가 이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매물을 내놓으면서 일어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즉 트럼프 美대통령이 이란핵협정에서 탈퇴하면 전쟁 위기로 치달으면서 달러 표기 자산의 가치가 폭락하고, 원유 가격이 급등하며, 세계 증시가 폭락할 것이라는 주장을 머쓱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란을 둘러싼 전쟁이 일어나려면 어떤 상황이 되어야 할까. 일단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이란이 핵협정을 체결한 뒤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IAEA)의 사찰을 받으면서도 몰래 핵무기를 완성하고, 러시아 등이 이란에 병력을 보내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이 군사적으로 열세이며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어야 한다. 또한 걸프협력회의 회원국 사이에서 이란 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분열과 갈등이 일어난 상태여야 한다.

    즉 주변에 이란을 막을 세력이 없고, 이란 정부가 핵무기를 탄도미사일에 장착하는데 성공했음을 밝힌 뒤 ‘이슬람 맹주’임을 선포하고 주변 침략에 나설 조짐을 보일 정도가 아니라면, 트럼프 정부가 이들을 공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美‘내셔널 인터레스트’가 지난 8일(현지시간) 이란핵협정 탈퇴와 전쟁 가능성을 설명한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란과의 전쟁설’은 2015년 협상 당시 존 볼튼 前대사가 “이란이 핵포기 협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이스라엘이 1981년 이라크 오시리크 원자로와 2007년 시리아 원자로를 파괴한 것처럼 군사적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기정사실처럼 퍼진 것이었다.
  • ▲ 1979년 11월 이후 미국이 이란에 가한 주요 제재 목록. 미국 對 이란 분쟁에서 승자는 미국이다. ⓒ美'이란계 미국인 협의회(NIAC) 홈페이지 캡쳐.
    ▲ 1979년 11월 이후 미국이 이란에 가한 주요 제재 목록. 미국 對 이란 분쟁에서 승자는 미국이다. ⓒ美'이란계 미국인 협의회(NIAC) 홈페이지 캡쳐.
    이란핵협정 탈퇴 이후 미국과 이란, 누가 이길까?

    일단 지금 상황에서는 이란과의 전쟁 가능성은 매우 낮다. 대신 과거와 같은 對이란 제재를 재개할 것이다. 세계금융시장과 원자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므로 이란과 미국 간의 경제 분쟁에서 승자는 당연히 미국이다. 다만 미국의 對이란 제재로 큰 피해를 입을 나라들의 반발을 막는 조치가 필요하다.

    2015년 7월 31일 이란핵협정 체결과 제재 해제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이란에 투자한 나라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에도 해당 지역에 엄청난 돈을 투자했다가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이번에도 비슷한 꼴을 당하게 되자 반발한 것이다.

    시진핑 中국가주석의 핵심 사업인 ‘일대일로’를 위해 막대한 돈을 해외에 투자하고 있는 중국 또한 이란 제재로 피해를 입을 나라다. 2018년 1월 이란 국영 IRNA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이란에 투자한 금액은 23억 달러, 2016년 대비 2017년 양국 간 교역액 증가는 22배에 달했다고 한다. ‘일대일로’ 개발에서 핵심 지역인 이란에 상당한 공을 들인 중국 또한 미국의 對이란 제재로 적지 않은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있는 러시아도 이란 제재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는 알 아사드 정권뿐만 아니라 이란의 아라비아 반도 진출도 지원하고 있다. 게다가 이란이 후원하고 있는 레바논 헤즈볼라에도 다양한 지원을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란 스스로도 미국의 제재를 받으면 곤란한 점이 적지 않다. 우선 노후화된 사회기반시설 개선과 교통 및 유통망 개선, 전력망 개선 등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이란은 1979년 11월 테헤란 주재 美대사관을 불법 점거한 뒤부터 미국의 제재를 받았다. 2005년에는 아흐마디네자드 당시 이란 대통령이 핵무기 개발을 선언하면서 제재 강도가 대폭 강화됐다. 그리고 2015년 7월 31일 협정을 통해 가까스로 미국의 제재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이처럼 30년이 넘는 제재로 이란 군 전력에서부터 차량, 열차, 선박, 항공기 등 교통망과 도로, 전력망, 상·하수도망까지도 제대로 유지보수를 하지 못했다. 때문에 이란 정부는 제재가 풀리자마자 해외 건설업체, 항공기 제조업체, 조선업체 등에 대규모 발주를 넣었다. 그러나 미국의 협정 탈퇴로 다시 제재가 시작되면 주문한 물품들을 받을 수가 없게 된다. 이런 여러 가지 점으로 볼 때 미국과 이란의 대결에서 승자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란핵협정 체결 이후 이란과 전략적 무역관계를 맺고 가스관까지 함께 건설 중인 파키스탄 또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지만 파키스탄이 미국으로부터 거액의 원조를 받고 있으므로 별다른 문제는 안 될 것이다.
  • ▲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상공을 비행하는 사우디 왕립공군 F-15 편대. ⓒ러시아 스푸트니크 뉴스 화면캡쳐.
    ▲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상공을 비행하는 사우디 왕립공군 F-15 편대. ⓒ러시아 스푸트니크 뉴스 화면캡쳐.
    만약의 경우 이란 전쟁 일어난다면 아군과 적군은?

    만약의 상황을 가정해 미국 내부와 해외 일각의 주장처럼 이란을 둘러싼 전쟁이 일어난다면 한국은 어느 편에 서야 할까. 지금까지 이란 핵문제를 대하는 태도와 정책을 보면 쉽게 구분이 된다.

    일단 이란의 편에 설 나라는 북한과 시리아다. 북한은 지난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이란과 시리아의 ‘자주적 투쟁’을 열렬히 칭송할 정도로 이란에 우호적이다. 지금도 이란과 자주 교류를 갖고 있다. 같은 시아파인 레바논 헤즈볼라 또한 이란 편에 설 것이다. 예멘 내전을 일으킨 후티 반군 또한 시아파여서 이란을 지지할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란을 돕기는 하겠지만 미국과 정면충돌은 피하려 할 것이다. 미국의 제재로 경제적 피해를 입을 프랑스의 경우 이란의 편을 들기는 어렵다. 대신 미국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다.

    같은 시기 미국의 편에 설 나라들은 적지 않다. 우선 수니파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제거에 적극적인 이스라엘, 걸프협력회의 회원국이면서 수니파 주요 국가인 요르단 등이 이란에 맞설 것이다. 이어 미국의 영원한 동맹인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가 가담할 것이고, 폴란드 등과 같은 동유럽 국가들 또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에 맞서 反이란 동맹에 가담할 가능성이 높다.

    전쟁 규모가 커지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인도, 일본까지도 미국의 편을 들 가능성이 커진다. 즉 이란을 둘러싼 전쟁의 승패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