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열흘 뒤에 뒤늦게 주목…김정은 암살 명령·‘위조 달러 동판’ 지참설도 나와
  • 中센양 소재 '중푸국제호텔'. 과거에는 '칠보산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北해외공작 거점 역할을 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中센양 소재 '중푸국제호텔'. 과거에는 '칠보산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北해외공작 거점 역할을 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7일부터 국내 언론에서는 “북한 국가보위성 대좌가 거액의 외화를 갖고 도피, 김정은이 암살 명령을 내렸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확인 결과 해당 내용은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가 지난 4월 25일 보도한 내용을 英텔레그라프가 지난 5월 3일(현지시간) 인용 보도한 것이었다.

    英텔레그라프의 보도 내용은 거의 ‘데일리NK’를 인용한 것이었다. 당시 ‘데일리NK’ 보도에 따르면, 도피한 인물은 北국가보위성 해외반탐국(제2국) 중국 동부 담당(제4과) 소속 강 모 대좌로 ‘凡백두혈통’에 속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나이는 50대 후반으로, 김일성의 외조부 ‘강돈욱’의 후손으로 북한 내 핵심 인물로 여겨졌다고 한다.

    당시 ‘데일리NK’는 “지난 2월 25일 돌연 사라진 강 대좌는 北해외공작거점인 中센양 소재 칠보산 호텔(現중푸국제호텔)에 주둔하면서 중국, 러시아, 동남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반탐국(방첩국)’ 요원들을 총괄 지휘했다”면서 “강 대좌는 도주하면서 달러를 찍는 활자판과 상당량의 외화를 소지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대북 소식통의 말을 전했다.

    ‘데일리NK’가 말한 ‘달러를 찍는 활자판’이란 美달러를 위조할 때 사용하는 동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는 북한에서 위조달러를 찍는 기관이 조폐국이고, 이를 관리 감독하는 곳은 노동당이라는 기존의 정보와 달라 혼선을 빚기도 했다.

    ‘데일리NK’는 “강 대좌의 도주 동기는 비리 발각이 거론되고 있다”면서 “북한에서 지내던 강 대좌의 아들이 한국과 미국 영화를 보다가 ‘109상무(자본주의 영상물 단속반)’에 걸려 가택 수색을 당할 때 강 대좌의 비리 자료가 나왔다”고 전했다.

    당시 ‘109상무’는 해외에서 번 비자금 내역과 활동 상황을 상세히 적은 강 대좌의 장부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에 북한 당국은 강 대좌에게 소환장을 발부했고, 이상한 낌새를 느낀 그가 도주했다는 것이 ‘데일리NK’ 소식통의 설명이었다고 한다.

    ‘데일리NK’는 “강 대좌는 北국가보위성 해외반탐국의 삼두마차로 불리는 인물”이라며 “중국과 러시아에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검토하고 현지 확인 작업을 지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고 전했다. 강 대좌는 뿐만 아니라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 과학자들을 북한에 소개하는 비밀 공작도 맡았다고 한다.

    ‘데일리NK’ 소식통은 “북한에서는 강 대좌가 엄청난 기밀을 들고 도주했다고 보고 있다”면서 그가 중국에 머물면서 동아시아 일대의 방첩 업무 책임자였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고 한다.
  • 김형직과 강반석의 칠골혁명사적지의 동상과 만경대 묘지. 도피한 강 대좌는 강반석의 부친이자 김일성의 외조부 '강돈욱'의 후손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형직과 강반석의 칠골혁명사적지의 동상과 만경대 묘지. 도피한 강 대좌는 강반석의 부친이자 김일성의 외조부 '강돈욱'의 후손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데일리NK’의 소식통은 “이 때문에 김정은은 강 대좌 도주 사실을 보고받은 뒤 즉시 제거 명령을 내렸다”며 “사건 발생 직후 암살요원 7명을 급파했고 이들이 추적에 실패하자 3명을 추가로 보냈다”고 전했다.

    ‘데일리NK’의 소식통은 “현재 북한 당국이 강 대좌의 행적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계속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현재 영국이나 프랑스에 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英‘텔레그라프’의 지난 5월 3일(현지시간) 보도는 ‘데일리NK’의 보도 내용과 거의 같았다. 다만 英‘텔레그라프’는 中칠보산 호텔에 대해 “북한과 중국 정부가 공동 작전을 수행하는 곳이자 중국 내 북한 해커들의 공작 거점”이라고 설명했다.

    강 대좌가 ‘데일리NK’ 소식통의 말처럼 영국이나 프랑스까지 도주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英‘텔레그라프’가 관련 소식을 보도한 뒤인 지난 5일 초대 駐북한 대사를 지낸 ‘제임스 에드워드 호어’ 씨가 英‘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외교적 마찰 가능성을 우려해 영국에서 강 대좌를 찾아내고 암살하지 못할 것”이라고 추측하면서 강 대좌 사건은 영국에서부터 먼저 화제가 된 것이다.

    태영호 前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귀순 이후 국내외에서는 한동안 북한 고위층의 귀순 소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실제 귀순한 사람의 안전을 위해 정부는 관련 내용을 확인해주지 않았다. 태영호 前공사의 한국 귀순에 美중앙정보국(CIA)과 英비밀첩보국(SIS; MI6)이 중요한 역할을 한 사실도 몇 달 뒤에서야 알려졌다.

    만약 한국, 미국, 영국 정보기관이 강 대좌의 도피 사건을 파악하고 있다면 이미 동아시아나 유럽에서 치열한 첩보전이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