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치고 文대통령 어르고, 민주당은 발맞춰 세미나 개최… 착착 진행되는 '우리민족끼리'
  •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 지난 2일 문정인 외교안보특보 글에 관한 브리핑을 했다. ⓒ뉴시스 DB
    ▲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 지난 2일 문정인 외교안보특보 글에 관한 브리핑을 했다. ⓒ뉴시스 DB
    청와대가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의 '주한미군 철수' 언급에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 그동안 '문정인 말하면 이뤄진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외교안보 분야에서 문 특보의 역할이 작지 않음을 고려하면,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사안을 확대시킨데에는 또다른 속내가 있는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문정인 특보가 주한미군을 이슈를 끌어내고, 문 대통령이 이를 무마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를 통해 4.27남북정상합의문에 서두에 나오는 '우리민족끼리' 즉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국정 화제 맨 앞에 올리는 효과를 얻었다. 사실상 문 특보와 문 대통령이 이슈를 주고 받는 '핑퐁 게임'을 벌인 셈이다.

    앞서 문정인 특보는 지난달 30일 미 외교전문지에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켰다. 문 특보는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와 관련해 보수층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지난 2일 이례적으로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라며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는 임종석 실장을 통해 문 특보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야권의 문 특보 경질 요구에는 고개를 돌렸다. 핑퐁게임을 통해 이슈를 끌어올리는 전략이라는 분석에 힘을 싣는 대목이다.

    그간 문 특보는 문재인 정부에서 사실상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맡아왔다. 청와대가 "학자로서 자유로운 분"이라고 규정한 것 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기 어려운 부분을 대신 언급, 여론을 떠보는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외교·안보에서 민감한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왔고, 처음에는 논란이 됐지만 이내 논란이 가라앉은 이후에는 상당수가 문 특보의 말대로 됐다.

    지난 정부부터 정치권에 예민한 현안이었던 사드배치에 대해 문 특보는 지난해 5월 기존 진보진영의 주장인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반복했고, 이후 문재인 정부는 사드 진상조사와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때까지만해도 사드에 대해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며 '전략적 모호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9월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참수부대 운영 계획'등에 대한 발언 역시 문 특보가 말한대로 '참수부대'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으로 정부의 방침이 정해졌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문 특보의 독특한 역할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여론 확인' 외에 또 다른 이점도 가져다준다고 보고 있다. 바로 '강경한 이미지'를 지워주는 효과다.

    문정인 특보는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은 핵·미사일 활동을 중지하고 한·미는 군사 훈련의 축소·중단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고, 3개월 뒤인 같은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NBC〉와의 방송 인터뷰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중 한·미 합동군사훈련 연기'를 언급했다. 이는 축소·중단에 비해 완화된 표현으로, 당시 부정적 여론이 적지 않았던 것을 감안한 결정으로 해석됐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주한미군 철수 역시 청와대가 단계적 해법을 구상하고 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문정인 특보가 실제 문재인 정부에서 구상하고 있는 것 보다 강한 이슈를 내밀면 문재인 대통령이 논란을 거둬들이는 자세를 취하면서 당초 계획했던 방안을 내밀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청와대 안팎에서 주한미군 이슈가 전면에 나온 상황에서 앞선 단계인 전시작전권 이양 문제를 거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공약하지 않았지만 전작권 환수는 자주국방 차원에서 공약사항으로 제시한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싱가포르 채널뉴스아시아(CNA)인터뷰에서 "그동안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고 남북 간의 평화를 지속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데 있어서 우리 자체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미국이 전시작전권을 행사하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스스로 역량을 갖춘다면 우리가 전시작전권을 행사하는 것은 자주국가로서 당연한 일"이라 말했다.

    여당도 발맞추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을 낸 지난 2일, 의원회관에서 '전지작전통제권 전환, 추진 전략과 방향' 세미나를 개최했다. 전문가들은 전작권 전환과 함께 충분한 전력 구축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자리에서는 지휘구조 개편 등 전작권 환수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에 대해서도 토론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미군 철수라는 커다란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이, 전작권 환수를 위한 논의는 이미 다시 시작된 셈이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전작권 환수에 대해 꾸준히 우려를 표명해왔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지난해 9월 28일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가 전작권을 가져야 북한이 우리를 더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후에도 사드배치에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전술핵 재배치와 핵무장도 전부 안 한다고 부정하는 등 독자적 방위력 구축에 대한 불확실성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며 "자주국방의 핵심은 말 그대로 우리 스스로 나라를 지킬 힘을 기르는 것이고, 동맹은 그 힘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자주국방의 핵심인 완벽한 북핵 대응체제를 갖추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부터 모색하고, 흔들리는 한미동맹부터 굳건하게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