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前공사 “김정은, 과거와 미래 핵 포기해도 현재 핵무기 포기안할 것”
  • ▲ 태영호 前공사는 김정은의 목표가 핵무기 보유라고 지적했다. ⓒRFA 인터뷰 영상캡쳐.
    ▲ 태영호 前공사는 김정은의 목표가 핵무기 보유라고 지적했다. ⓒRFA 인터뷰 영상캡쳐.
    김정은이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즉각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를 수용할 가능성이 낮으며,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성사 자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태영호 前영국 대사관 공사가 주장했다. 그는 또한 중국의 목표가 북한 핵무기를 사용해 미국 핵전력을 동북아시아에서 몰아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2일 태영호 前공사와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태영호 前공사는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과거와 미래의 핵무기는 폐기할지 몰라도 이미 완성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 때문에 美北정상회담에서의 한반도 비핵화 합의는 1991년 12월 ‘한반도 비핵화 남북공동선언’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태영호 前공사는 “김정은이 이번에 남한 판문점까지 직접 내려왔다는 것은 한국이 체제·이념 대결을 통해 북한 체제에 큰 타격을 줬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남북정상회담은 지난 몇 년 동안 한국과 미국, 국제사회가 가한 대북제재와 압박의 결과이며,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큰 성과이자 승리”라고 평가했다.

    태영호 前공사는 또한 “김정은은 스스로를 핵보유국의 지도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비핵화 문제는 한국이 아닌 핵보유국 미국과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면서 “ 때문에 한국과 비핵화를 논의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美北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은 미국이 ‘악마’라고 간주한 자신이 트럼프 美대통령과 만난다는 점 자체가 북한을 정상국가라고 전 세계에 보여주는 동시에 이를 외교적 승리로 간주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단 한 번이라도 만나서 악수하는 장면을 연출해보려고 했던 美대통령과의 만남을 이뤄내는 것이므로 국내 선전용으로 크게 활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태영호 前공사는 또한 김정은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할 때 해외 전문가와 언론을 초청할 것이라고 밝힌 점에 대해서도 “그에게 과거와 미래는 중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태영호 前공사는 “김정은은 핵무기만 갖고 있다면 나머지는 다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김정은은 지금까지 개발해 놓은 핵무기를 끝까지 보유할 방법을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즉 김정은에게 풍계리 핵실험장은 ‘과거’이며 美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은 ‘미래’라는 것이다. 김정은은 최근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제재 때문에 예정대로 ICBM 개발을 완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고 ‘과거’와 ‘미래’는 대담하게 포기하는 대신 이미 만들어 놓은 핵무기는 어떻게 해서라도 보유하려 할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장면을 공개해 세계의 이목을 돌린다는 것이 이미 계획한 전략의 하나라는 지적이었다.
  • ▲ 남북정상회담 만찬에서 건배하는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 태영호 前공사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을 트럼프 美대통령 앞에까지 이끌어 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남북정상회담 만찬에서 건배하는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 태영호 前공사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을 트럼프 美대통령 앞에까지 이끌어 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태영호 前공사는 이어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즉각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CVID) 핵포기’도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태영호 前공사는 “남북정상회담의 판문점 선언에서 핵관련 합의가 상당히 모호하게 이뤄졌다”면서 판문점 선언 가운데 남북이 핵 없는 한반도를 만든다는 부분, 비핵화가 남북 공동의 책임이라는 부분은 북한이 노리고 있는 목표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 정권이 노리는 점은 세 가지로, 첫째 한반도에서 美핵무기를 철수시키는 것으로 1991년 이미 실현된 목표, 둘째 미국이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 핵무기와 전략자산을 전개하거나 반입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 셋째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선언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한다.

    태영호 前공사는 “미국은 그 어떤 지역이나 국가에 대해서도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나 담보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트럼프 美대통령이 김정은과의 협상에서 이런 북한의 요구를 수용할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태영호 前공사는 “미국이 요구하는 CVID 핵폐기는 국가 주권에 대한 난폭한 유린으로 간주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북한에는 핵시설과 탄도미사일 시설 외에도 정치범 수용소와 같이 외부세계에 공개할 수 없는 예민한 지역이 많아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주장했다. 정치범 수용소와 같은 곳이 전 세계에 공개되면 북한 체제 자체가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태영호 前공사는 “미국은 북한에게 CVID 핵폐기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의 핵심은 강제 사찰과 무작위 사찰, 즉 사찰을 하는 측에서 보고 싶은 곳에, 원하는 시기에 사전 통지 없이 마음대로 들어간다는 개념”이라며 “그런데 역사적으로 CVID 핵폐기를 이행한 선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태영호 前공사는 美北정상회담에서 나올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1991년 남북이 채택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수준의 합의만 도출해 내며 회담이 끝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당시 남북한이 상호 합의 하에 비핵화 사찰 대상을 정하기로 했는데 북한이 수용하지 않아 사찰이 수포로 돌아갔던 선례를 언급하며 “과연 미국이 이런 방식에 동의할지는 회담을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영호 前공사는 또한 “美北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스스로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로 보이도록 연출할 것”이며 “김정은은 핵무기 보유만 가능하다면 많은 부분에서 양보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렇게 해서 김정은이 이미 만들어 놓은 핵무기 보유를 성사시키면 표면적으로 볼 때는 트럼프 美대통령이 대단히 큰 외교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 ▲ 2017년 7월 탄도미사일 '화성-14형' 발사를 지켜보는 김정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7년 7월 탄도미사일 '화성-14형' 발사를 지켜보는 김정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태영호 前공사는 트럼프 美대통령이 비핵화를 합의하지 못하고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는 것마저도 김정은의 선전 소재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북한은 이를 두고 “우리는 진정으로 핵무기 폐기를 위해 노력했고 미국의 요구 조건도 다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는데 미국이 너무 무리한 요구 조건을 내세웠다”고 주장하며 국제사회의 지지와 동정을 이끌어 내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태영호 前공사는 또한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美北정상회담까지 성사된 뒤에는 중국이 대규모 대북지원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은 단기간 내에 핵무기를 폐기하라는 미국과 달리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도 자신들의 통제권에만 들어오면 용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7년 중국이 대북제재를 가한 것도 북한이 통제권을 벗어났기 때문에 시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김정은이 중국을 찾아가 “말 잘 들을 테니 도와 달라”고 찾아갔으니 앞으로는 북한의 입장을 수용하고 대규모 대북지원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태영호 前공사는 김정은 정권이 최근 ‘비사회주의 검열’을 강화하며 주민들을 옥죄는 것도 중국으로부터의 대규모 지원에 대비해 체제를 정비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내부 통제를 강화하지 않은 채 외부 투자를 받아들이면 과거 동유럽처럼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다.

    태영호 前공사는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이기는 하나 즉각적인 비핵화는 아니다”라며 “중국은 북한 핵무기를 이용해서 동북아시아 전략을 실현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를 사용해 미국의 핵전력을 중국에서 최대한 멀리 밀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태영호 前공사가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들은 북한 정권과 중국의 속성을 따지자면 대부분 맞아 떨어지는 내용이다. 특히 김정은이 美北정상회담이 열리는 것 자체와 이미 생산한 핵무기의 보유를 목표로 한다는 지적이나 중국이 북한 핵무기를 앞세워 미국을 동북아시아에서 몰아내려 한다는 지적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