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칼린 美CISAC 연구원 “중국·러시아 간섭 막는 수단으로 주한미군 활용할 수도”
  • ▲ 2015년 8월 15일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시위 모습. 북한 김정은 보다 이들이 주한미군 철수를 더욱 바라는 것 같다. ⓒ뉴데일리 DB.
    ▲ 2015년 8월 15일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시위 모습. 북한 김정은 보다 이들이 주한미군 철수를 더욱 바라는 것 같다. ⓒ뉴데일리 DB.
    마이크 폼페오 美중앙정보국(CIA) 국장의 비밀 방북, 한국 정부의 남북정상회담서 ‘종전’ 논의 발표 소식이 나온 뒤 한국 사회에서는 “북한이 더 이상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소위 ‘진보 진영’에서는 “보수의 종전 반대 논리가 깨졌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해외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른 듯하다.

    지난 20일(현지시간) 美존스홉킨스大의 북한전문매체 ‘38노스’에는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에 관해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 분석하는 글이 올라왔다.

    美국무부 정보조사국(INR)에서 동북아 담당 분석관을 지냈던 로버트 칼린 美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객원 연구원은 이 글에서 “김정은이 지금 당장에는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하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이를 요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칼린 연구원은 “최근 분위기에서 전문가 대부분이 북학 핵문제에 집중하고 있는데 자기 최면 분위기에 따라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비핵화’라는 단어를 되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칼린 연구원은 이어 “우리는 김정은이 다양한 ‘옵션’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다”면서 김정은이 남북정상회담과 美北정상회담을 통해 내놓을 수 있는 옵션을 요리에 비교하며 “김정은의 메뉴는 많고 다양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김정은의 ‘메뉴’ 가운데 하나가 주한미군 철수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칼린 연구원은 그러나 다르게 보고 있었다. 그는 “김정은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이라는 점은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김정은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이 없고, 다른 여러 가지의 부수적인 요구가 없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가능성도 없다”고 내다봤다.

    칼린 연구원은 김정은이 주한미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청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로 2000년 10월 발표한 ‘美北 공동 코뮤니케’를 꼽았다. 이때 미국은 북한 측에 “미국은 태평양 지역에 중차대한 안보·이해 관계를 가진 세력으로서 한국 및 일본과의 긴밀한 방위 동맹을 지속해 나갈 것이며 이 같은 관계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과 상충하지 않는다고 믿는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후 북한은 이 문서 내용을 언급하며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도 상관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칼린 연구원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누구도 미군이 한국에 영원히 주둔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핵심은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기대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미군 철수의 시기”라고 지적했다.

    칼린 연구원은 북한이 지난 수십 년 사이 어떨 때는 즉각적인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가 하면 다른 때에는 미군이 주둔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던 과거를 언급하며 그때 그때 전술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바꾸었던 태도를 지적했다.
  • ▲ 북한군 훈련 모습을 바라보는 김정은과 그 일당. 김정은 입장에서는 주한미군 철수가 급할 것이 없다고 한다. ⓒ北선전매체 화면캡쳐.
    ▲ 북한군 훈련 모습을 바라보는 김정은과 그 일당. 김정은 입장에서는 주한미군 철수가 급할 것이 없다고 한다. ⓒ北선전매체 화면캡쳐.
    칼린 연구원은 김정은이 남북정상회담과 美北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주장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2016년 김정은이 주장한 ‘핵보유국으로서의 전략적 지위’를 강조한 대목을 꼽았다.

    김정은은 이때 핵실험 성공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성공을 외치면서 “한반도는 더 이상 열강들의 놀이터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당시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모두에게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강대국’이 됐다고 주장했다는 지적이었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볼 때 김정은은 주한미군을 주변국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한 뒤에 시간이 지난 뒤 주둔 또는 철수를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칼린 연구원은 “북한 사람들은 냉정한 실리주의자인데 김정은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면서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김정은에게 주한미군 철수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 번 한국 대선에서 우파 정권이 들어설 경우 주한미군이 북한과의 갈등에 유용한 완충재가 될 수 있고, 김정은 입장에서는 신뢰할 수 없고 때로는 위협이 되는 동맹국 중국과 러시아를 막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칼린 연구원은 이런 한반도와 주변국 간의 역학 관계를 고려할 때 김정은이 남북정상회담과 美北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여지를 남기는 표현을 합의문에 넣으려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사례로는 북한이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주장했던 ‘美-北 관계 정상화’나 1987년 남북한 군축을 통한 한반도 긴장완화를 주장하며 주한미군 철수를 외쳤던 일, 1994년 8월 ‘제네바 합의’ 초안에다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및 3년 이내 주한미군 철수를 넣으려고 주장한 일 등이 있다고 지적했다.

    칼린 연구원은 “북한은 주한미군 주둔을 전격 수용하겠다고 밝히는 것이 반미 선전에 길들여진 북한 주민들에게 너무 큰 충격일 수 있어 별로 좋은 전술이 아니라고 결론 내릴 수도 있다”며 “그 결과 북한은 ‘달콤한 작별인사’라는 접근법을 취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단계적인 주한미군 철수라는 과거의 제안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칼린 연구원은 이처럼 북한이 선대에서부터 주한미군 문제조차도 협상 카드로 사용해 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김정은이 이번에 무엇을 제안할지 모르지만 놀랄 만한 것임은 확신할 수 있다”고 글을 맺었다.

    칼린 연구원의 주장은 현재 김정은의 발언을 두고 글자 하나하나에 일희일비 하는 한국 정부와 언론이 새겨들어야 할 내용으로 보인다. 단어 하나, 글자 하나를 곧이곧대로 믿을 경우 북한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놓치고, 그 결과 한반도 정세는 북한 김정은 정권이 원하는 대로 굴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