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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복  /북한 민주화포럼 대표, 전 국회의원

    <중앙일보>의 김영희 ‘대기자’는 필자의 <한국일보> 견습 8기 동기다.
    그와 나는 1958년11월 14명의 ‘견습기자’에 섞여서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일보> 영문 자매지 를 거쳐서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였던 필자는 1971년 박정희 정부가,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주도 하에, 남북대화를 시작할때 정부측의 요청으로 13년간의 언론인 생활을 접고 남북대화 일선에 뛰어들었다. 이제는 14명의 <한국일보> 입사 동기들 가운데 태반이 유명(幽明)을 달리 했지만 유독 김영희 동기는 유일하게 지금도 현역 언론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부러운 일이다.

      근년에 김영희 동기가 남북관계와 한반도 안보에 관한 글을 꽤 많이 쓴다.
    그런데, 필자는 유감스럽게도 김영희 동기가 한반도 안보와 남북관계에 관하여 쓰는 글에서 ‘몽유병자(夢遊病者)’의 환영(幻影)을 보게 되는 일이 많다. 너무나도 현실에서 괴리된, 좋게 말해서는 이상론으로 치부해 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유계(幽界)’에서나 있음직한 환상의 유희(遊戱)를 볼 때가 많아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는 이미 비현실성이 입증되고 당사자 자신도 그것을 시인한 브루스 커밍스(Bruce Cummings)나 이제는 고인(故人)이 된 리영희(李泳禧) 류의 현실도착적인 사관(史觀)을 지금도 여전히 따르면서 그 도착된 프리즘을 통하여 오늘의 한반도 주변을 관조하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한 그가 <중앙일보> 4월21∼22일자 29면 “대동강변 트럼프 타워를 상상하며”라는 기괴한 제목 아래 또 하나의 글을 올렸다.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金正恩)은 소위 ‘혁명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고금동서의 역사를 통하여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전근대적인 권력 세습을 3대 째 계속하면서 망부(亡父)의 유훈으로 그를 위한 섭정(攝政)의 역을 수행하는 자신의 고모부를 기관총으로 사살하는 것은 물론 해외에 유랑 중인 자신의 이복형(異腹兄)를 객지에서 독살하는 등 조카인 단종(端宗)을 시해한 수양대군(首陽大君)의 고사(故事)를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비인간적 처사를 서슴치 않는 희대(稀代)의 망나니이다. 그러한 김정은을 상대로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오는 4월27일 소위 ‘남북정상회담’을 갖게 되어 있는 것을 두고 김영희 동기가 이 글에서 엉뚱하게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라”고 했던 서독인(西獨人) 에곤 바르(Egon Bahr)의 어록(語錄)까지 차용하면서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운운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그의 정신이 과연 정상 상태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영어에 “Enough is enough"라는 숙어(熟語)가 있다.
    김영희 동기의 몽상(夢想)도 이제 그만 할 때가 지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