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문가들 "'헬싱키 협정' , '레이캬비크 회담'에서 교훈 얻어야"
  • 통일연구원에서 발행한 2017 북한인권백서.ⓒ교보문고 캡쳐
    ▲ 통일연구원에서 발행한 2017 북한인권백서.ⓒ교보문고 캡쳐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에서 명시된 바와 같이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동등하다. 이 선언의 정신에 따라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가 북한 주민들에게도 주어지기를 촉구하고, 북한 정권에 의해서 인권을 침해당하고 억류되어 있는 모든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의 생사가 확인되고 이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지난 3월 23일 유엔 인권이사회(UNHRC)가 북한 인권 문제를 규탄하고,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한 가운데, 전직 대한민국 인권대사, 탈북인권활동가 등 국내 인권전문가들은 남북, 미북정상회담 전제조건으로 북핵 문제 해결 뿐만 아니라 북한 인권문제 해결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북한 인권 문제’는 열악한 북한 주민 인권 문제 뿐만 아니라 6·25전쟁민간인납북자, 국군포로, 전후 민간인 납북자 문제까지 포함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헬싱키 협정’과 ‘레이캬비크(Reykjavik) 미·소 정상회담’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975년 ‘헬싱키 협정’은 자유권 국가들이 공산권 국가들의 인권 탄압을 정식으로 문제 제기하면서 ‘사상, 종교, 신앙 등 기본적 자유와 인권 존중’ 사항을 채택해 합의한 협정이다. 훗날 이 협정은 공산 국가들의 인권 개선 뿐만 아니라 냉전 종식과 동구권 민주화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헬싱키 협정’ 정신을 계승한 1986년 ‘레이캬비크 미·소 정상회담’은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의 인권문제를 중요 의제로 상정한 회담이다. 이 회담을 통해 공산권 국가 내의 인권문제 해결과 냉전 종식의 결정적 계기가 마련됐다.

    ‘헬싱키 협정’과 ‘레이캬비크 미·소 정상회담’을 모델로 삼아 이번 남북, 미북정상회담에서도 북핵과 인권문제를 동시에 다뤄지고, 인권문제가 회담 의제로 채택돼야 한다는 공감대를 조성하기 위한 대국민토론회가 지난 1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남북, 미북 정상회담과 북한인권문제'를 주제로 열린 이번 토론회는 한국자유회의와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공동주최했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 이미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김정애 국제PEN북한망명작가센터 이사장,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이희문 북한자유인권 글로벌 네트워크 대표, 조성환 경기대 교수 등이 토론 및 발제자로 참석했고, 사회는 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가 맡았다.

    김태우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는 환영사에서 "지금이야말로 북한 인권을 되돌아보고 이 문제가 반드시 다루어져야 할 중요한 의제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시점"이라며 "북한문제에 대한 인권적 접근은 북한의 체제변화, 핵문제 해결, 통일을 위한 시작이자 끝이고 목표"라고 강조했다.
  • 지난 1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남북, 미북 정상회담과 북한인권문제 대국민토론회가 열렸다.ⓒ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지난 1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남북, 미북 정상회담과 북한인권문제 대국민토론회가 열렸다.ⓒ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첫 발제자로 나선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과거 4차례에 걸친 동·서독 간 정상회담에서 서독의 콜 총리가 동독의 인권문제를 제기했던 역사적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양독 정상회담에서 서독의 콜 총리는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에게 "동독의 인권상황이 개선되어야 한다"면서 "베를린장벽에서 무력을 사용해선 안된다"고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는 말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 교수는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인권 문제를 원론적 수준에서만 동의한 점에 대해 비판하면서 "이번 남북정상회담 및 미북정상회담에서는 북핵 문제와 함께 인권문제를 적극 제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문제, 납북자(전시 및 전후)와 국군포로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유엔의 인권 개선 권고를 북한이 수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미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은 6.25전쟁 당시 북한이 정권수립에 부족한 인재를 불법적으로 남한에서 납치해 충원했던 사례를 들어, 전쟁납북자 문제는 전시에 북한이 민간인에게 자행했던 전쟁범죄로써 남북정상회담 공식의제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6.25전쟁부터 현재까지 한국 민간인 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 등 전 세계 12개국 민간인들을 불법적으로 납치해 억류하고 있다. 이 이사장에 따르면, 당시 정부의 공식 기록 추산으로 북한은 약 10만명의 남한 민간인을 납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이사장은 "공식 기록에서 확인되는 납북문제를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대북화해정책으로 소홀히 했고, 오히려 종전선언으로 전쟁범죄 가해국인 북한에 면죄를 주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세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정애 국제PEN북한망명작가센터 이사장은 사상 최악의 인권유린의 불모지인 북한을 그대로 놔둔다면 국제사회의 평화가 보장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주민 강제동원과 자금탈취, 재판 없는 고문과 처형, 살인적인 13년 의무 군복무제 등 대표적인 북한 내 인권 침해 사례를 소개한 뒤 "북한 인권 실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북한의 인권상황이 개선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첫 번째 토론자로 나선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는 이번 회담이 1990년 초 북핵 위기 시, 미국과 북한 간 실패한 결과를 초래한 ‘제네바 협정’을 답습(踏襲)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동맹국 미국에 힘을 보태어 북한을 압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낭만적 민족주의’에 빠져 미북간 중재자로 나서면서 오히려 북핵 문제를 어렵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번 미북회담은 실패한 ‘제네바 협정 모델’이 아닌 다른 대안을 제시해야 하며, 그 대안으로 ‘레이캬비크 회담 모델’을 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레이캬비크 회담’당시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수백명의 소련 반(反)체제 인사들의 인권 개선과 해외 이주를 원하는 유태인들의 명단을 소련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 직접 제시하면서 그 해결을 촉구한 바 있다. 인권문제는 반드시 김정은 면전에서 직접 다루어져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두 번째 토론자로 나선 이희문 북한자유인권 글로벌 네트워크 대표는 미국과 UN의 적극적 도움을 통한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 예로 2004년 미국 의회에서 북한인권법이 제정되고 대북인권특사가 임명된 것을 바탕으로 미국에도 탈북난민들이 정착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세 번째 토론자로 나선 조성환 경기대 교수는 "인권문제는 ‘자유민주주의적 통일’이라는 대한민국의 헌법적·정치적 정당성을 근거로 문제가 설정되고 실행돼야 하고, 국내정치적 정파(政派)주의에 의해 그 본질이 왜곡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정파적 차원의 은폐기도는 엄정하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