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정’ 논의한다는 남북정상, 김일성 숙원까지 풀어주나?

이종석 前통일부 장관, 관훈클럽 간담회서 “남북 상호 대표부 설치, DMZ 병력 철수” 주장

전경웅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04.20 12:42:17
▲ 지난 18일 청와대가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힌 뒤 나온 사진.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재인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을 논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원로자문위원은 한술 더 떠 “남북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고 서울과 평양에 각각 대표부를 설치하고, DMZ에서 병력을 철수시키자”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美-北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통일 등 김일성의 유훈을 풀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18일 청와대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전직 통일부 장관은 “남북 간에 상호 대표부를 설치하고 DMZ 내 병력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4월 초 한 대북 소식통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상호 대표부 설치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한 적이 있어 심상치 않게 들린다.

지난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는 관훈클럽 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에는 남북정상회담 원로자문위원인 이종석 前통일부 장관이 나왔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뉴시스’ 등에 따르면, 이종석 前통일부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기존의 관점을 넘어서는 상상력을 발휘해 창조적이되 실현 가능성이 있는 대담한 발상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라며 “남북이 서울과 평양에 서로 대표부를 설치하는 문제를 북측에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종석 前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정상국가를 추구한다면 남북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고 협력해야 한다”며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이종석 前통일부 장관은 또한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비핵화 문제이기는 하나 그에 못지 않게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합의도 중요하다”면서 남북이 비무장 지대(DMZ) 내의 전방감시초소(GP)와 중화기를 함께 철수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래야 북한이 위협을 느끼지 않을 것이므로 남북 모두 손해될 게 없다는 것이 이종석 前통일부 장관의 주장이었다.

이종석 前통일부 장관은 “정전 협정이 평화 협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 완화”라면서 “남북 정상이 최소한의 군사적 대결 종식 선언을 이번에 못할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 2016년 10월 이종석 前통일부 장관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종석 前통일부 장관은 또한 “미국의 ‘비핵화 일괄 타결’과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해결’은 상충되는 개념이 아니다”라며 “미국과 북한 간의 비핵화 논의가 정상회담에서 당장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비핵화 이행 로드맵’을 만드는 등의 준비와 절차가 필요하므로 비핵화는 사실상 단계적·동시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4월 8일 한 대북 소식통도 이종석 前통일부 장관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는 “오는 4월 말에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양측이 외교 관계 수립에 해당하는 ‘관계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남북 실무진이 협상 중”이라며 “현재 남북정상회담 준비 실무진은 국제법 준수 및 상호 국내법 존중을 골자로 하는 조약 체결을 조율 중”이라고 전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할 때부터 이미 ‘종전 선언’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서 ‘남북정상회담에서의 종전 선언’을 우려하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일’을, 그것도 북한 김씨 왕조가 수십 년 동안 주장해 온 ‘느슨한 연방제’를 염두에 든 행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6.25전쟁 휴전 협정 당시 서명한 세력은 북한과 중국, 그리고 미국이다. 때문에 김일성 때부터 북한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 당사자가 아닌 한국은 빠지라”며 ‘통미봉남’을 외쳤다. 그러나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이 “한국도 종전 협정의 당사자”라고 주장하면서 이후 ‘종전 선언’에는 한국과 미국, 중국과 북한이 함께 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됐다.

북한은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남북 간의 ‘종전 선언’을 시작으로 미국과 북한 간의 ‘평화 협정(불가침 조약)’을 맺고, 이후 남북한과 미국이 상호 군축 협상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 왔다.

이를 두고 한국 사회는 “북한은 종전 선언-美北평화협정(불가침 조약)-주한미군 철수-한미동맹 해체의 수순을 통해 한반도를 적화통일하려는 속셈”이라고 지적하며 비판해 왔다.
▲ 2016년 5월 제7차 노동당 대회 당시 김정은의 발언 가운데는 "연방제 통일 기조를 계속 밀고 나가겠다"는 내용도 있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러나 이 같은 분위기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정확히는 2018년 1월 김정은의 신년사 이후로 확 바뀌었다.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참가하고, 남북 상호 예술단 공연을 성사시킨 뒤 남북정상회담과 美北정상회담까지 추진하는 과정에서 김정은이 “주한미군의 주둔 필요성은 공감한다”거나 “한미연합훈련의 실시 필요성을 이해한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 안팎에서는 “종전 선언과 평화 협정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로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 측의 제안을 대부분 수용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김정은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대한 사건과 관련해서는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지킨 적이 없는데다 “선대로부의 유훈”을 늘 앞세우는 김정은이 “한미동맹 해체를 통한 연방제 통일”이라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숙원을 포기할 리가 없다는 지적이다.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과 5월 말 또는 6월 초에 열릴 美北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은 우연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북한의 ‘단계적 연방제 통일’ 수순과 닮아 한국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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