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정치 할 수도 있었지만 정치 바꾸겠다는 생각에 원점부터 시작할 뿐"
  • 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며 보수 개혁을 외쳤던 원조 쇄신파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1년 만에 뿔뿔이 흩어졌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자유한국당에 복당했고,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있다. 현재로선 남·원·정 가운데 정병국 전 대표만이 유일하게 초심을 지키며 개혁보수의 길을 걷고 있다.

    개혁보수의 길을 포기한 사람들은 남경필·원희룡 지사뿐만이 아니다. 개혁보수 기치를 들고 함께 했던 33명의 바른정당 의원 중 남아있는 의원은 고작 8명이 전부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이 통합해 바른미래당을 창당했지만, 지지율은 미미하다.

    누군가는 개혁 보수의 길은 실패했다고 말한다. 당장 눈에 잡히는 게 없을 때 사람들은 불안하고 조급해진다. 좀처럼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혹시라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지금이라도 샛문이 있다면 못 이기는 척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아닐까.

    17일 의원회관에서 본지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가진 정병국 전 바른정당 초대 당대표는 "당을 나올 때는 자신의 정치 생명이 끝날 수 있다는 각오는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반문으로 답을 대신했다.

  • ▲ 정병국 전 바른정당 대표가 18일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정병국 전 바른정당 대표가 18일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한국당 보수개혁 불가능… 패거리 정치가 문제

    처음부터 꽃길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새누리당을 탈당한 의원들도 이 길이 녹록지 않을 길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개혁보수'라는 당찬 포부는 엄동설한(嚴冬雪寒)을 이기지 못한 채 급격히 사그라졌다.

    정병국 전 대표는 "내게 붙어있는 소장파와 개혁파라는 닉네임에 자부심을 느꼈는데 요즘은 오히려 창피하다"며 "나름대로 정치를 개혁하고 성과를 냈다고 생각해왔는데, 근본적인 정치 변화는 이루지 못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복당파를 향해 정병국 전 대표는 "그분들 나름대로 현실적인 고충이 있다는 걸 이해한다"면서도 "탄핵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반성하게 되고, 왜 이 정도밖에 못했는지 자괴감이 든다"고 자책했다.

    그러면서도 "보수가 기득권만 계속 유지하려 하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계속 비판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며, 126명의 거대 정당이라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나온 이유도 "새누리당에선 반성하는 모습도 책임지는 모습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보수가 왜 이렇게까지 망가지고 분열하게 됐다고 생각할까.

    정병국 전 대표는 '패거리 정치'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YS) 비서 출신으로 '상도동계 막내'로 불리던 그는 YS의 부정적 유산으로도 패거리 정치를 꼽았다.

    정 전 대표는 "그때의 패거리 정치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당시에는 그래도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한다는 명분이 있었다"며 "그러나 오늘날의 패거리 정치는 개인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홍준표 대표가 원칙 없이 좌충우돌하는 것도 자신에게 유리한지 여부로 기준을 정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며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사당화 논란을 겨냥했다.

    그는 "나는 국회의원이 되면 꼭 패거리 정치를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내가 5선인데도 내 사람을 한 명도 심지 않았던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부정할 수 없는 보수의 큰집이다. 바른정당을 거쳐간 다른 의원들처럼,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해 당내 패거리 정치를 청산하고 보수개혁을 실현할 수는 없는 걸까.

    정병국 전 대표는 "그게 가능했다면 처음부터 나오지도 않았다"며 "(한국당은) 그게 불가능한 집단"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자유한국당에는 개혁을 아무리 외쳐도 함께해 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 전 대표는 "자유한국당 초·재선 의원이 85명인데 개개인으로는 훌륭하다"면서도 "그러나 그들은 범생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금의 한국당 초·재선 의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공천을 전단했던 2012년 총선과, 이한구 전 공천관리위원장을 통해 '친박 공천'이 이뤄진 2016년 총선을 통해 국회에 진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말 잘 듣고 순응하는 사람들만 뽑았기 때문"이라는 게 정 전 대표의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중진의원 몇 명이 홍준표 대표에 맞섰지만 결국 백기를 들지 않았느냐"며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한 의원들은 지금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느냐"고 비판했다.

    정병국 전 대표는 개혁보수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끊임없이 시도하는 과정이 축적된다면, 내가 조금 희생된다 하더라도 정치 변화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며 "당장은 힘들고 성과를 내지 못하겠지만, 그것이 내가 충실하게 원칙을 지키며 남아있는 이유"라고 했다.

    ◆바른미래당,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장의 성과 바라는 것은…

    정치권 안팎에선 이번 6·13 지방선거에 바른미래당의 명운이 걸려 있다는 관측이 많다. 지방선거 성적이 나쁘면 당이 또다시 분당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바른미래당도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정병국 전 대표는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경계했다. 오히려 "창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선거에 임하면서 성과를 내겠다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라고 본다"고 했다.

    정 전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이 선거에서 패한 뒤 스스로 '폐족'이라 선언한 것과 비교하며 "그렇게 반성했던 민주당도 지난 7년 동안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나게 됐음에도 반성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그런데도 선거에서 이기겠다고 말하는 건 국민을 우롱하는 짓"이라고 규탄했다.

    정병국 전 대표는 역설적으로 "선거에서 당하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 죽을 때는 완전히 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처럼 극단적 대립 국면으로 가면 원칙을 고수하고 원론적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의 존재감은 상실될 수밖에 없다"면서도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원칙대로 가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은 어떤 컨셉으로 선거를 치를 것이며 어떤 정치문화를 새롭게 정립할지 고민해야 할 때"라며 "이기겠다고 달려들기보다는 원칙대로 뚜벅뚜벅 걸어가면 국민들도 알아주실 것"이라고 했다.

  • ▲ 정병국 전 바른정당 대표가 18일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진행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 정병국 전 바른정당 대표가 18일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진행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적폐청산이 야당과 과거 정권을 향했지만 그게 되돌아서 자기 발등을 찍고 있다"고 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댓글사건과 코드인사, 문재인·박근혜정부의 데칼코마니

    보수가 몰락과 분열의 길을 걷는 동안 이어졌던 정부·여당의 독주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셀프 후원' 논란에 이어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의 댓글 조작사건 연루 의혹이 연이어 터지면서다.

    정병국 전 대표는 정권 창출 이후 절대적 권력의 반작용에 따른 부메랑 현상이 집권 3년 차부터 나타나는데, 문재인 정부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정병국 전 대표는 "(이전 정권과 문재인정권은) 댓글 사건도 똑같고 코드 인사도 똑같다"며 "적폐청산이 야당과 과거 정권을 향했지만 그게 되돌아서 자기 발등을 찍고 있다"고 일침했다.

    정병국 전 대표는 "국민들도 처음에는 경제 정책 실정으로부터 불만이 생겼지만 최근에는 미투 사건, 김기식 사건, 댓글공작 사건 등을 보면서 이 정부가 더 조직적이고 악랄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김영삼정부 5년 내내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을 맡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주도면밀하게 '살림'을 챙겼던 정병국 전 대표는 최근 문재인정권 청와대가 국정 운영 전반을 좌지우지하고 내각과 여당은 위축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특히 민주당원 댓글조작과 관련해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을 비롯해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잘못 처리하게 되면 탄핵감"이라고 규탄했다. 그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속전속결로 해결하지 않으면 엄청난 국민적 저항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 전 대표는 청와대의 비서 정치와 관련해선 "그게 바로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가게 된 요인인데 문재인정부도 똑같이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문재인정부가 잘되고 잘못되고의 문제를 떠나 대한민국이 걱정스럽다"고 탄식했다.  

    ◆쉬운 정치만 한다면 정치는 누가 바꾸나…

    대통령조차 '쇼통(show)' 비판을 받는 게 오늘날 정치 현실이지만, 영원한 소장파로 불리며 패거리 정치를 멀리했던 정병국 전 대표가 한 지역구에서만 내리 5선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진정한 '소통'에 있었다.

    정병국 전 대표는 매일같이 지역 주민 20~30명과 전화 통화를 한다. 한 달이면 1000명이고 1년이면 1만2000명이다.

    그는 대화 기록도 일일이 기록한다. 지역구 당원이 생일이면 생일 축하 메시지도 보낸다. 지역주민에게 민원이 들어오면 보좌관에게 확인하도록 하고 어떻게 처리됐는지도 알려준다.

    정병국 전 대표는 "19년 전부터 통화한 게 다 기록돼 있다"며 "어떤 때는 지역 기초의원보다 지역 현안을 내가 더 많이 안다"고 자부했다. "골목과 동네마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들어오면 세세하게 시의원과 군의원에게 알려준다"고도 했다.

    그는 민원 내용을 묻는 질문에 "소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있다"며 "도로를 놔달라, 가로등이 없다, 길이 어둡다, 길이 어디가 패였다, 리모델링 해달라 등 많다"고 했다. "정치를 똑바로 하라는 요구도 있었다"며 웃어 보였다.

    그토록 지역주민과 소통을 중시하던 정병국 전 대표는 그러나 최근 1년 동안 잠시 '전화 정치'와 거리를 뒀었다. 왜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지 않느냐는 지역 주민들의 성토 때문이다.

    그는 "전화로 다 설명하기도 어렵고, 그렇게 되면 주민들과 척을 지게 된다"며 "당분간 전화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1년 동안 쉬다가 지난 설 이후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고 했다.

    정병국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주민 관리 목록을 가리켜 "하루 20~30명씩 통화하며 관리했던 당원만 2만7000명"이라며 "그러나 지금은 다 놓고 나와서 새로 시작해 이제 1400명이 됐다"고 했다.

    정 전 대표는 "국회의원 한번 더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그러나) 원점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모두가 쉬운 정치를 하면 정치는 누가 바꾸냐"며 "그런 과정을 보여주며 한 사람, 한 사람 공감대를 끌어내고 가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 ▲ 지난 2012년 경기 김포 해병대 2사단 1연대를 방문한 정병국 의원이 특강을 마치고 포스터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왼쪽)과 현역 복무 시절 훈련받는 모습.(오른쪽) ⓒ정병국 의원실 제공
    ▲ 지난 2012년 경기 김포 해병대 2사단 1연대를 방문한 정병국 의원이 특강을 마치고 포스터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왼쪽)과 현역 복무 시절 훈련받는 모습.(오른쪽) ⓒ정병국 의원실 제공

    [인터뷰 속의 인터뷰 : 해병대 헌병 416기 정병국은?]

    ◆30년 정치 일생 지탱해 온 해병대 정신, 아들과도 공유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해병대 출신 이들은 살아가면서 명예로움과 자부심을 안고 있다. 상륙 작전이 주 임무이듯 국가안보를 생각하는 자세가 남다르며 충성·명예·도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전역하고 나서도 저마다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랄 눈물 쏙 뺀 경험담이 하나씩은 꼭 있다.

    해병대 헌병 416기 정병국. 그의 삶 속에서, 젊은 날 고된 훈련을 극복했던 해병대 정신은 원칙주의 정치인인 지금도 여전히 마음 속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 11월에 입대해 10주를 훈련받았는데, 한겨울 진해에서 극기 훈련 때 되면 잠을 안 재운다. 그다음에 하는 게 '나무심기'. 머리를 뒷짐지고 바닥에 박는 거다. 팬티바람에 있는데 나무에 물주는 물조리로 뿌린다. 바늘로 찌르는 느낌이다. 물을 확 부으면 차라리 낫다. 그다음에 쫙 1열 횡대로 서라 그런다. 바다 보고 쭉 가라 그러고 서라고를 안 한다. 계속 가서 빠져서 차라리 물속에 들어가 있으면 안 춥다. 물 밖으로 나오면 적셔진 몸에 한기가 서려 난리가 나는 거다. 그렇게 훈련했다"

    "그리고 나선 내가 헌병이었는데 내무반 생활이 힘들지 않나. 파견대나 검문소 나와있고 그러면 건물마다 대여섯 명이 있으니까 우리가 밥도 다 해 먹고 그랬었다. 1년 정도는 밥하고 시다바리(보조원)하고 애먹다가 1년 지나 후임 들어오고부턴 조금 편해지는 거다. 그다음부터는 맨날 오토바이 타고 순찰을 다니고 그랬다"

    "힘들게 뭐가 있나, 어차피 군 생활 해야 되지 않는가. 나는 자원할 때 어차피 할 거라서 빡빡 기고 오겠다는 마음으로 갔다. 일부는 연수도 와서 기는데 왜 그런 걸 못하냐는 생각이다. 지나고 나면 재밌지 않나. 요즘은 극기훈련 돈 내고 가서 하던데 나 같은 경우엔 훈련받은 경험으로 복학해가지고 또 학생운동을 했는데 안기부 끌려가 갖고 남산에서 고문 받고 그럴 때에 그 훈련받고 빠따(몽둥이)맞고 그런 생각으로 그걸 견뎠다"

    정병국 전 대표의 해병대 사랑은 2대째 이어졌다. 그의 아들도 5년 전 해병대 2사단에 입대해 '빨간명찰'을 달고 군 복무를 마쳤다.

    "우리 아들은 자대 배치를 전방에 가서 추위 때문에 손에 전부 다 얼음이 배겨가지고 시뻘겋게 해서 오더라. 최전방에서 바로 NLL이 눈에 보이는데 저녁마다 x반도, 탄창 다 메고 경계근무를 섰다. 처음에는 아들이 '내가 왜 해병대 가나', '미쳤나'라고 하더니 방학 때 와 가지고는 해병대 가겠다고 하더라. 아빠가 가라고 해서 억지로 간 게 아니라 자기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한 결정이었다"

    "아들이 군대 있을땐 불만이 있었는데, 요즘 들어와가지곤 그때 너무 잘했다고 생각을 한다더라. 나중에 미국 유학 간 대학교를 복학했는데 친구들이 군대에서 완전무장한 사진을 보고 완전 '레전드'라고 그런다더라. 학교 갔다가 중간에 군대 다녀온다는 게 미국에서도 그런 거 보면 놀랍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