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지키는 보수 우파로는 더 이상 나라를 구할 수 없다.
  • 더 늦기 전에 진보 우파가 일어서야 한다.

    이동욱 / 객원 논설위원

    모두 알다시피 만 4년이 지난 세월호의 비극은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다. 사회는 그로인해 사분오열된 채 회복될 줄 모른다. 각종 조사와 수사, 재판도 모자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1년 반 이상을 활동했다는 데도 진실 규명을 위해 또다시 특조위 2기가 출범했다. 

    생존자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화물이나 시신을 인양하는 ‘구난(Salvage)’도 아닌 ‘잠수수색구조(Rescue)’를 장장 210일 동안 해낸 나라였다. 그 와중에 불쌍한 5명의 소방공무원과 2명의 민간 잠수사가 그야말로 ‘희생’됐다. 

    그 후에는 침몰한 선체를 1300억 원 가까이 퍼부어 인양했다. 하지만 우리는 해양교통사고의 원인을 지금껏 알아내지 못한 ‘멍청한 국민’이 된 채 지구상에 남게 됐다. 그러는 사이 세월호의 피해자 편에 선 세력은 권력을 잡았다. 새로운 권력자는 2017년 3월10일 팽목항 분향소를 찾아가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

    “얘들아. 너희들의 촛불광장이 별빛이었다. 너희들의 혼이 천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

    피해자를 희생자로 부풀리고 권력 투쟁 전선에 내몰았던 자의 고백이었다.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 좌파들의 주특기였다.

    1946년 10월1일, 대구 폭동의 시발은 9월23일 소련군 정치장교 스티코프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의 총파업에서 출발한다. 철도노동자의 파업으로 열차수송이 중단된 대구시내는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10월1일, 남로당은 “도청에서 쌀 배급을 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부녀자들이 그릇을 들고 모여들면서 시위대에 뒤섞였다. 도청앞에서 “쌀 배급 소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자 군중은 분노에 휩싸였다. 

    분노한 이들을 부축이며 밤늦게 까지 관공서를 위협하던 중 경찰의 발포로 한 노동자가 사망했다.
    10월 2일 날이 밝자 시위대들은 준비한 수십 개의 만장을 세워들고 시체를 수레에 싣고서 대규모 장례행렬을 만들었다. 해방 직후 혼란기에 거대한 장례식 이벤트가 대구 시내를 휘젓는 동안 시위대는 수십만 명으로 늘어났다. 결국, 그날 저녁 대구 경찰서는 습격당하고 무기고는 탈취 당했으며 경찰관들과 그 가족들은 목숨을 잃었다. 그 여파는 3개월간 73개 시·군을 해방구로 만들다 사그러졌다.
     
    제주 4.3의 시발이라고 알려진 1947년 3.1 사태 역시 피해자를 희생자로 둔갑시킨 사례다.

    시위 군중을 진압하던 기마경찰관의 말발굽에 어린 소년이 채였다. 그 소년의 행방은 필자의 취재결과 오리무중이다. 주변 목격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길 아래 도랑으로 굴렀지만 큰 부상이 아니어서 현장을 빠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만약 사망했더라면 좌익들은 오늘날까지 그 소년의 신상명세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의 ‘아프고 슬픈 역사’를 반복해서 우려먹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당시 좌익들은 소년을 사망한 희생자로 간주한 채 사람들을 선동했다. 제주의 비극은 좌익의 선동으로 공동체를 분열과 반목으로 몰아넣으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오늘의 대한민국에서도 좌익들은 여전히 피해자를 희생자로 둔갑시킨 채 선동의 도구로 삼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그 집요한 선동에 국가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난 70년 동안 무엇을 반복해 온 것일까. 좌익들은 원래 그렇다 치면 우익들은 그 70년 동안 무엇을 학습해 온 것일까.

    한 손에 사과를 든 소년과 아무것도 들지 않은 굶주린 소년이 마주섰다. 굶주린 소년이 사과를 빼앗으려 덤빌 때, 두 소년의 힘과 싸움의 기량이 같다고 가정하면, 누가 이길까? 

    <정답 : 굶주린 소년이 이긴다.>

    힘과 싸움의 기량이 같은데 어째서 굶주린 소년이 이기냐고? 사과를 들지 않은 나머지 한 손으로만 싸우는 소년은 양 손으로 달려드는 소년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먹을 것, 기득권을 놓치는 게 두려운 세력은 절대로 맹렬한 도전자로부터 승리할 수 없다. 이것이 한국 보수 우익의 자화상이다. 그들은 치열하게 진실을 규명하려 싸운 적이 없었다. 해 봐야 법정의 승리로 만족하곤 돌아선다. 그러는 사이, 저쪽은 전과기록을 훈장으로 여기며 끊임없이 도전해 왔다.

    필자가 세월호의 선체까지 잠수해 내려가서 취재를 하고 침몰의 원인을 밝혀내고 책으로도 펴 냈다.
    독지가 한 분이 이 책을 대량 구매해 국회의원들에게 한 권씩 배포한 때가 2015년 5월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한 사람, 세월호의 진실을 가지고 좌파들과 싸우기를 거부했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의 행태는 대통령의 언설이 곧 성리(性理)였다. 대통령이 ‘구조실패’를 단언하고 해경을 해체시켰으므로 누구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 필자는 봉건시대가 도래했다고 느꼈다.   

    거의 死語가 됐다고 믿었던 봉건(封建)주의는 오늘날 버젓이 되살아났다. 임명권자가 곧 하늘이다. 그가 틀린 말을 해도 맹목적 충성을 해야만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영웅적인 구조를 해 놓고도 침몰선에서 나오지 못한 304명을 구조하지 못해 ‘구조실패’라고 단정한 높은 분의 말씀에 따라 해양경찰은 오늘도 구조 훈련에 집중한다. 세월호 같은 대형 선박의 침몰 상황에서 지금 하는 구조훈련이 무용지물이란 사실을 모든 해양경찰이, 전 세계 해양경찰이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지시하니 따라야 산다. 덕분에 연간 해상범죄 검거 건수가 5만여 건이던 것이 세월호 사건 이후 2만5천여 건으로 반토막이 났다. 연간 마약 사범 건수는 100여 건이던 것이 지난 한 해 동안 38건을 기록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 해상범죄가 줄어들거나 마약사용자들이 개과천선을 한 게 아니라면 이 모든 범죄와 마약들은 계속 우리 사회로 스며드는 중이다. 나라가 병들어 간다는 얘기다.   

    세월호 사건 이후 필자는 국회의원들, 특히 보수 우익을 자청하는 지도자급 인사들을 다르게 보게 됐다.

    그들은 한 손에 들고 있는 기득권을 위해 적과 타협하며 연명하는 듯이 보인다. 반란을 항쟁으로 인정해주고, 폭동을 민주화 항쟁으로 합의를 보고, 공산주의자들을 독립운동가로 대접해 주고, 대한민국의 건국에 반대한 사람들의 동상과 기념관을 세워주고, 세월호 조차 진실과 싸우는 대신 피해자를 희생자로 격상시키며 8억 원 안팎의 보상금을 주면서 기득권을 유지해 오지 않았나.

    역사 교과서가 거짓말로 물들어가는 동안에도 마땅한 저항조차 제대로 못하다가 어느새 북한 역사책의 남한 버전까지 나오게 되지 않았나.

    작금의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댓글 조작사건이 이처럼 크게 발견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싸울 줄 모르는 보수 우파집단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도 잘 모를 것이다. 기껏 제도권의 루트를 따라 특검과 재판으로 가기 십상이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이슈로 정치판은 흘러갈 것이다.

    가치를 지키면서 천천히 개혁해 나가는 세력이 보수라고? 이제는 바른 말 하자. 그게 아니라 싸우기를 두려워 하고 기득권을 지키려 상대의 요구를 조금씩 들어주는 세력이 보수라고 말이다. 그러다 이제 나라 전체를 넘겨줘야 하는 상황에 몰려 더 이상 보수적 노선으로는 이 나라를 지킬 수 없음을 솔직히 고백하자. 기실, 보수나 진보는 이념이 아니고 노선의 스타일 차이가 아니던가. 자유를 지향하는 우파와 평등을 지향하는 좌파가 이념의 두 축일 뿐이다.

    어느 날 좌익들이 자신을 진보라고 우기면서 우익들에게 보수 프레임을 씌우려 할 때, 우익들은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를 날름 들고 와 그 위에 올라타지 않았나. 버크는 진보적 좌파를 공격했지 진보적 우파를 공격한 것이 아니었는데, 불행히 우리 사회는 보수 우파가 등장한 이후로 좌파에 공격적인 진보 우파의 싹을 밟아버렸다.

    흔히 좌익들은 용어혼란 전술을 쓴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런 면에선 보수 우익도 만만찮다고 본다. 보수 우익은 우익적 철학과 가치를 지킨다고 말로는 그럴싸하게 하지만 실제로는 철학이나 가치보다 보수적 스타일에 더 치중해 온 듯하다. 점잖고 화합을 추종하고 싸움보다 말로 해결하려는 스타일을 줄곧 선호해 왔다. 북한이 핵개발을 해 오는 동안 보수 우익은 수많은 세미나와 성명서와 궐기대회를 열었지만 사정권 밖의 전략적 목표물 근처에도 못간 장난감 새총 쏘기에 불과했다. 보수 우익의 최대치의 힘은 오직 광장에 많이 모을 수 있는 인파가 전부였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엔 지도부나 지휘자도 없었다. 언제나 명망가들이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철학과 가치의 부재집단이요, 현대판 봉건지배층의 기회주의적 모습이었다.

    좌익들이 이런 인파를 모았다면 그들은 즉시 명단을 만들고 장차 활용할 조직으로 육성해 버린다. 하지만 보수 우파는 그런 조직 구축의 경험이 없다. 그러니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고서도 조직을 두려워하고 혐오하기까지 한다. 이 점잖고 신사적인 보수 우파들은 운동체의 조직원들을 사회적 낙오자같은 사람들의 집합체 정도로 여겨오지 않았을까. 북핵으로 긴장이 고조되자 보수 우파는 장롱속의 군복을 꺼내 입기는커녕 동쪽의 미국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11월 북폭설을 퍼뜨리다가 12월설, 1월설, 2월설, 3월설...이제는 6월설로 연기하는 중이다. 미국이 나서려 해도 우리가 우리 손으로 해결할 테니 기다리라고 했어야 하지 않았나?
     
    “경제에서나 국방에서나 굳건히 서서 두 번 다시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 이것이 내가 우리 국민에게 주는 유언이다”라고 했던 이승만의 뜻을 알고나 있는지 참으로 부끄럽다.

    2014년 12월 초,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특혜 입학 시비가 불거졌을 때, 그리고 며칠 뒤 그 아이가 올린 카톡 메시지가 우리 사회의 불만 계층을 강하게 타격했을 때, 보수 우익들이 그토록 존경해 마지않는 이승만, 박정희의 정신으로 이 망아지 같은 아이의 행위에 회초리를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하지만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모두 알 것이다. 그것은 곧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不忠이 된다는 것을. 그렇게 수직적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유교주의, 충효의 수직질서를 따르다 보니 그 아이가 올린 카톡 메시지를 보수 우익들은 절대 비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말로는 자유민주주의를 해 왔지만 실제는 왕조시대의 봉건주의를 다시 불러들인 것이다. 보다 정확한 기억을 돕기 위해 전문을 개재하면 다음과 같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놔라 배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불만이면 종목을 갈아타야지. 남의 욕하기 바쁘니 아무리 다른 거 한들 어디 성공하겠니?”

    이런 아이가 자라도록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을 위해 이승만 박사가 애를 썼을까. 이런 나라를 만들고자 박정희 장군이 목숨 걸고 한강다리를 건너 이 땅에 산업화를 이뤄냈단 말인가. 그 박정희 장군이 혁명을 생각하며 썼던 詩 한 수를 대비해서 읽어보자.

    “2층 객차에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야 나는 고운 네 손이 밉더라. 우리는 일을 하여야 한다. 고운 손으로는 살 수가 없다. 고운 손아, 너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만큼 못 살게 되었고 빼앗기고 살아왔다. 
    고운 손은 우리의 적이다.”
      

    정유라의 잡설에 보수 우파는 어떤 철학과 가치관으로 대응하고 평가했나? 필자는 그 어떤 기억도 없다. 정유라의 주장에 강하게 비판하지 못하는 이런 보수 우파의 가치관이야 말로 실상 약삭빠른 기회주의나 다름 아니지 않는가.

    필자는 여론조사밥을 10년 가까이 먹어 봤다. 필자가 본 우리 시대의 절대 다수 중도세력들은 표현은 하지 않더라도 김정은 같은 공산주의자들과는 싸워야 된다고 내심 믿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지키며 이 나라의 애국운동을 몇 십 년 동안 이끌어 왔다는 보수 우익들, 선수(選數)가 6선, 7선, 8선이나 되는 보수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정유라의 저런 주장에 침묵했을 때 중도세력들은 의심하고 절망했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냐? 뭣하는 사람들이냐?”고 말이다. 

    보수 우파의 정치인과 지도자들은 대한민국의 기둥인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의 신봉자임을 자처해 왔다. 모든 기념식장에서 몇 십년 간 상석을 차지하면서. 하지만, 과문의 소치인지 모르나 내가 아는 이승만 박정희 두 분은 진보 우파이긴 했어도 보수 우파인 적은 없었다. 박정희의 詩에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지가 보였던가? 노동 않는 지배계급의 자식을 敵으로 상정하는 투철함이 날카롭게 빛나지 않던가. 그런데 어째서 자유(自由)라는 가치보다 봉건 유교적 가치, 충효(忠孝)와 군신유의(君臣有義)와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더 중시 여기는 보수 우파들이 이 두 분의 후예라고 자처하는가? 후진 양성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말이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침몰선 아래로 잠수해 들어가 목숨 걸고 취재해 진실을 찾아 올려도 권력을 가진 보수 우파들은 거들 떠 보지도 않는 병든 나라다. 그 모든 것이 기득권을 지키려는 눈물겨운 노력인걸 알고 나면 화가 난다.

    재작년에 이승만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하와이에 가서 홀로 열흘을 머물렀다. 그 분이 어떤 생각으로 독립운동을 했으며 어떤 마음으로 추방자가 되어 수구초심 고향을 그리다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되었는지 느껴볼 수 있었다. 그 분의 유언이 매일 내 귓가에 맴돌았다.

    “한번 나라를 잃으면 다시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우리 국민들은 잘 알아야 하며...”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있었지만 이 문장만큼은 평생 독재자로 욕을 먹으면서도 독립운동을 포기하지 않았고 비로소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6.25 남침을 맞아 이 나라를 구해내어 우리 민족에게 종의 멍에를 벗겨낸 이승만이 아니고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문장이다. 필자는 ‘다시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라는 표현에 전율이 엄습하곤 한다. 이제 우리는 봉건적 보수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자유를 향한 진보 우파로 다시 일어나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이동욱 <전 조선일보 기자, 작가·프리랜서>